행간의 접속/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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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1] 코로나와 잠수복: 울림의 진폭이 잔잔해졌다행간의 접속/문학 2023. 6. 8. 21:49
책이름: 코로나와 잠수복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옮긴이: 김진아 펴낸곳: 북로드 펴낸때: 2022.06. 오랜만에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읽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버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은 기이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외도로 바닷가를 찾은 소설가는 곧 철거될 집에 단기 렌트로 들어가 있는데 그 곳에는 예전에 살던 아이의 영혼이 있으면서 그를 지켜보고, 따라다니고, 그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회사의 퇴직을 간접적으로 강요받은 중년 가장들이 공장의 한 구석에서 복싱을 하게 되는데 복싱을 가르쳐 주었던 코치도 알고 보니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인기 프로야구 선수의 프로포즈를 기다리던 프리랜서 아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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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 태평양 횡단 특급: 20년 전의 예언행간의 접속/문학 2023. 6. 1. 17:27
책이름: 태평양 횡단 특급 지은이: 듀나 펴낸곳: 문학과지성사 펴낸때: 2002.10. 듀나의 SF 단편 소설집이다. 무려 2002년에 나온 책이다. 한국 SF 소설계에서 SF 작가라고 이름 붙일 만한 작가가 얼마 없던 시기에 나왔던 책이다. SF 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일 수도 있지만 내용만 보면 2020년대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창의성을 보유하고 있다. 인상적인 작품이 몇 있는데, 먼저 「기생」이라는 작품이 있다. 기계문명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이 그 안에서 기생하면서 소모품이나 서로의 먹이감이 되지 않고 반란을 꿈꾸지만 서로의 밀고로 계속 기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 속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즘 우리에게 실현되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나는 종종 그녀가 나에게 넘겨주는 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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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9] 저 이승의 선지자: 신이 되어 보는 경험행간의 접속/문학 2023. 5. 31. 20:44
책이름: 저 이승의 선지자 지은이: 김보영 펴낸곳: 아작 펴낸때: 2017.06. 거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 이 우주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태초의 존재들인 선지자들이 천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다가 하계를 만들고, 자연을 만들고, 생물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삶과 죽음을 설정하고, 기억과 망각을 끊임 없이 거쳐서 문명을 만드는 과정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선지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선지자들은 태초의 존재에서 하나씩 분리된다. 독립적인 개체들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실상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너다.' 혹은 '너는 나다'라는 진술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분리된 존재들이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에너지가 큰 존재가 흡수할 수도 있고, 에너지가 비슷한 존재들이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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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7] 예술과 중력가속도: 무거움과 가벼움의 화학적 결합행간의 접속/문학 2023. 5. 18. 11:32
책이름: 예술과 중력가속도 지은이: 배명훈 펴낸곳: 북하우스 펴낸때: 2016.11. 배명훈의 단편소설집이다. SF 소설이라고 했을 때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서정적인 작품들도 있어서 신선했다. 그리고 배명훈의 초기작들도 들어 있어서 작가의 예전 성향도 알 수 있었다. 인상적인 작품들이 몇 개 있어서 뽑아보았다. 「예언자의 겨울」은 핵무기를 발사한 상태에서 바다 밑 핵잠수함의 상황과 바다의 고래들의 상황을 상호 교차한다. 핵잠수함에서는 핵전쟁으로 돌아갈 기지가 없는 상황에서 함장이 자살하고 승조원원들은 난감해 한다. 한편 고래들은 핵전쟁으로 먹이가 없어지게 되자 먹이를 찾으러 이동하는 도중에 혹등고래와 푸른 고래들이 협력하여 범고래와 맞서 싸우고, 그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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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9] 인어의 걸음마: 기획은 의미 있었지만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19. 16:14
책이름: 인어의 걸음마 지은이: 이종산, 이유리, 전삼혜, 이서영 펴낸곳: 서해문집 펴낸때: 2021.8 (전자책) 장애를 테마로 한 청소년 SF 소설집이다. SF 장르도 한정적인데, 청소년 대상도 그렇고, 거기다가 장애를 테마로 한 것으로 조건이 붙으니 작품집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지가 않다. 그런데 SF적인 요소들의 비중이 비대해서 소설로서의 인물의 욕망과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이 별로 없는 경우들이 좀 있다. 기획 의도는 좋았고 의미 있었지만 이를 충족시키는 작품을 찾기 힘들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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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7] 얼마나 닮았는가: AI에서 인간으로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13. 10:04
책이름: 얼마나 닮았는가 지은이: 김보영 펴낸곳: 아작 펴낸때: 2020.11. SF 작가 김보영의 소설집을 읽었다. 작품의 경향이 다양해서 어떠하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작가인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인공신경망으로 존재하던 AI가 사람 형태의 의체에 이식되어 사람처럼 인식하고 행동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AI가 서술자가 되어 자신 주변에 있는 인간을 관찰함으로써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려 하고, 이해는 못하다가 나중에는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작품이다. 간단히 말하면 기계 뇌는 직렬식이고 생물 뇌는 병렬식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기계는 정보를 빛의 속도록 처리하는 대신 순서대로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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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6] 떨리는 손: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7. 22:35
책이름: 떨리는 손 지은이: 김창규, 이명현, 이은희, 이종필, 정경숙 펴낸곳: 사계절출판사 펴낸때: 2020.02. 과학자와 과학 크리에이터, 과학 관련 작가가 쓴 SF소설집이다. 이은희의 「떨리는 손」은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부부 중 한쪽의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고충을 다른 한쪽도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졌고, 기술의 발달로 남자도 수유를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을 그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쪽보다 자신이 더 희생하고 있다고 갈등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런 인간들의 모습이 사실은 외계 생명체가 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한 뒤 외계인들이 인간의 DNA를 발견하고 이를 복원하려고 하는데, 무턱대고 복원하는 것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실험적으로 복원한 후에 복원할 가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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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 백만 광년의 고독: 우주적 상상력의 향연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5. 12:08
책이름: 백만 광년의 고독 곁이름: 2009 세계천문의 해 기념 작품집 지은이: 김보영 김창규 박성환 배명훈 유광수 정소연 고드 셀라 펴낸곳: 오멜리스 펴낸때: 2009.12. 2009년이 세계천문의 해였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최근 SF 소설들을 조금씩 접하다 보니 이 책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었고, 이미 절판된 책이라서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었지만 공공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길래 빌려 보았다. 세계천문의 해 기념 작품집이라서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상상의 범위가 무척 넓었고, 읽으면서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인상적인 작품이 몇 개 있는데 김창규의 「유랑악단」이라는 작품이 하나 있다.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가 신호를 보내온다. 자신들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지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