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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7] 얼마나 닮았는가: AI에서 인간으로
    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13. 10:04

    책이름: 얼마나 닮았는가

    지은이: 김보영

    펴낸곳: 아작

    펴낸때: 2020.11.

     

    SF 작가 김보영의 소설집을 읽었다. 작품의 경향이 다양해서 어떠하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작가인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인공신경망으로 존재하던 AI가 사람 형태의 의체에 이식되어 사람처럼 인식하고 행동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AI가 서술자가 되어 자신 주변에 있는 인간을 관찰함으로써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려 하고, 이해는 못하다가 나중에는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작품이다.

     

    간단히 말하면 기계 뇌는 직렬식이고 생물 뇌는 병렬식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기계는 정보를 빛의 속도록 처리하는 대신 순서대로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느린 대신 모든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한다. 기계는 전 인류가 평생 걸려 할 법한 계산을 빛의 속도로 해결할 수 있지만, 개나 고양이를 구분하거나 표정과 자연어를 이해하는 데에는 막대한 누적데이터와 최적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런 일은 거의 본능적으로 해낸다.

     

    처음에는 이렇게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을 얘기하면서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인간의 자아에 대해서 심도 있는 말도 한다.

     

    "인간은 아직 '자아'가 뭔지 몰라. 인류가 알아내지 못한 지식은 내게도 없어.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인간과 벌레의 유전정보는 99퍼센트 일치해. 하지만 인간은 벌레에게 자아가 있다고 믿지 않지. 이 배의 선원들은 다 제각각으로 생겼지만 너는 네 선원들에게 자아가 있나 없나 의심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결국 , 인간이 누구에게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는 단순한 습관일 뿐이야. '인간이 아닌' 인간은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어. 노예라든가, 식민지 주민이라든가, 다른 인종이라든가. 하지만 볼 수 있는 게 자신의 자아 뿐이라면 그게 정말 자아인지 증명할 도리는 없어. 내 생각이 아냐. 인간들이 내게 넣은 생각이지. 그것도 다 맞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서 이 작품의 제목이 나온다. 타인의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한 생각. '얼마나 닮았나'가 기준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해석도 나온다.

     

    사람의 뇌는 유연한 나머지 새 정보가 들어오면 배열 전체를 바꾼다. 그래서 인간은 제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쉽게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과도한 유연성의 부작용이랄까.

     

    너무 딱딱해서가 아니라 너무 유연해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니......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나온다.

     

    "뛰어나지 않아. 기능이 다를 뿐이지. 기계는 안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나 유용해. 인간들도 문명이 정체기에 접어들면 기계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우대하지만 변화기에 접어들면 다시 유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우대하지. 기계만으로는 계속 변화하는 생태에 적응할 수 없어. 인간에게 기계가 필요하듯이 기계에게도 인간이 필요해. 필요한 것을 없앤다는 생각을 할 리가 없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상호 보안적으로 보고 있다. 기계가 필요한 분야가 있고, 인간이 필요한 분야가 있어서 같이 서로 보완해 나가면서 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눈치가 생기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식당을 나가는 이진서의 뒤통수에 선원들의 눈총이 꽂혔다. 이 뇌가 그쪽으로 기능이 좋아서인지 강문의 눈에 서린 적대감이 생생히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라면 그 의미까지 알아보겠지만 나로서는 정적 감정과 부적 감정을 구분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분위기. 생경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선장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선원을 향해서 욕을 하는 장면은 거의 인간화된 기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보급을 위해 자신이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자진해서 내려가는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희생까지 느껴진다.

     

    "기분이 어때?"
    이진서가 물었다. 옆에서 남찬영이 무심히 손을 까닥이며 인사했다.
    그 질문을 또 하는가. 흥미롭군. 종합 처리 능력이 부족한 이 뇌로는 사고를 하나로 묶느느 게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답이 떠올랐다. 나는 자막을 화면에 띄웠다.
    「나 자신이지. 다행스럽게도.」
    이진서는 내 모니터에 얼굴을 대었다. 접촉, 친밀감의 표현.
    그제야 잃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장의 눈에서 전해지던 별처럼 빛나던 생각들, 풍요로운 감각, 전파처럼 전하던 마음, 햇빛처럼 쏟아지던 감정의 교류. 아쉽기는 했지만 어치피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걸 얻기 위해 그 무분별한 비논리를 다시 감당해야 한다면 사양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인간적인 유머까지 장착해서 거의 인간화된 모습이다. 희생이라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칩 속에다 그동안의 기억들을 담아서 다른 의체나 다른 시스템에 담으면 다시 존재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인간적인 것은 맞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려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보급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내 회로를 뜨겁게 달구었다. 저 아래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닮은 이들이, 그러므로 아마도 자아가 있을 법한 이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이미 늦었을지라도. 아무도 없더라도. 한 명일지라도, 그 흔적일지라도. 내가 내려간다. 내가, 지금.

     

    마지막의 생각이 기계가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안도감과 만족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성이 측정되지 않는 무모한 일에 도전하는 모습은 100% 인간의 모습이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다. 

     

    다른 작품들도 재미는 있는데 이 작품이 워낙 흥미로워서 상대적으로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SF 관련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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