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책 5] 백만 광년의 고독: 우주적 상상력의 향연
    행간의 접속/문학 2023. 4. 5. 12:08

    책이름: 백만 광년의 고독

    곁이름: 2009 세계천문의 해 기념 작품집

    지은이: 김보영 김창규 박성환 배명훈 유광수 정소연 고드 셀라

    펴낸곳: 오멜리스

    펴낸때: 2009.12.

     

    2009년이 세계천문의 해였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최근 SF 소설들을 조금씩 접하다 보니 이 책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었고, 이미 절판된 책이라서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었지만 공공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길래 빌려 보았다. 세계천문의 해 기념 작품집이라서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상상의 범위가 무척 넓었고, 읽으면서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인상적인 작품이 몇 개 있는데 김창규의 「유랑악단」이라는 작품이 하나 있다.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가 신호를 보내온다. 자신들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지구에 온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지구에 있는 방위군은 이들이 정말 음악을 하러 오는 것인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우주함대를 보내 방어 태세를 취한다. 지구의 음악 기획사는 우주의 유명한 유랑악단이 드디어 지구에서 공연을 한다면서 표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시간만 정해져 있고, 장소는 없다. 자신들이 직접 접촉해서 공연을 대행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구의 음악하는 젊은이 지연은 이 유랑악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고생고생해서 돈을 모아서 표를 사려고 하지만 경마로 돈을 탕진한 남자친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또 줘버린다. 물론 표는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주인들이 공연하기로 예정했던 12월 7일이 되자 그들은 방위군 함대를 가볍게 제끼고 지구로 와서 남태평양 상공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그들의 연주는 전 지구를 울렸고, 지구의 모든 것을 순간적인 파멸로 몰아갔지만 지구는 멀쩡했고, 인류의 의식도 안정상태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연은 그 연주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부분을 인용해본다.

     

    그날 저녁, 앉아 있던 언덕 전체와 함께 흔들리면서 지연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랑악단이 지구 전체에 퍼뜨린 것은 분명한 음악이었다. 그 노래는 지연의 몸 여기저기를 작극했고, 청각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감상할 수 없었던 다른 차원의 감흥을 한껏 안겨주었다. 지연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손짓하는 부름을 들었고, 수만 년 동안 빛을 농락하며 여행했던 존재들의 애절한 이야기를 느꼈으며, 그 위에 부드럽게 얹힌 크림처럼 녹아드는 자신의 과거를 또렷한 의식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지연의 시신경에 떠오른 환영은 오색으로 하늘거리는 오로라였다.

     

    온 몸의 감각으로 음악을 느끼는 환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인물이 느낀 희열을 독자도 느끼게끔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1월에 지연은 우주인으로부터 유랑악단의 멤버 한 자리게 빌 예정이니 그 자리에 들어올 것을 제안받는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더 다듬어야 하겠지만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그리고 자신들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면서 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해서 얘기한다.

     

    말은 아무 소용없어요. 시간은 무한하고 우주가 죽으려면 아직 100억 년은 넘게 남은 데다가 새로 만들 음악은 무궁하니까요. 별이 태어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죠? 은하가 충돌하는 광경도 본 적 없을 테고. 여기서 150광년만 가면 지구인처럼 가시광선에 의존하는 생물에게 말도 못하게 매력적인 행성이 있어요. 빙산과 용암이 번갈아가며 공존하는 곳인데, 아마 꽤 근사할 거예요. 어때요? 같이 가겠어요?

     

    말은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영감과 온몸으로 느끼는 차원이다. 그런 차원의 대상이 우주적으로 확산되었을 때의 감흥을 얘기하는 것인데 이런 광활한 느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튼 그렇게 지연은 유랑악단에 합류하여 음악의 꿈을 펼친다는 얘기다.

     

    그 다음에 언급할 작품은 표제작인 박성환의 「백만 광년의 고독」이다. 달의 뒷면에 있는 천문대에서 인공신경망 보정작업을 하던 주인공은 지구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돌아갈 곳이 없고, 달에 홀로 고립된 것이다. 달의 다른 기지를 가보았지만 거기의 사람들도 지구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싸우거나 자살해서 생존자는 없다. 생존을 위해 다른 기지에서 여러 장치와 보급품을 가져와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인 인공신경망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천문대의 인공지능에게 여러 데이터들과 논문들을 학습시킨다. 그렇게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른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장치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동시켜서 살아가지만 이제 몸이 쇄하여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고 그러던 어느날 죽는다. 여기까지 읽고 소설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은 기지의 인공지능이 눈을 뜨면서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천문대의 메인 컴퓨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달과 관련된 여러 실험들과 탐사를 한다. 100년, 1000년, 1만 년, 10만 년 동안 실시한다. 그 과정에서 영구적으로 동력을 가동할 수 있는 핵융합로도 개발하고, 새로 발견한 은하를 관찰하고, 블랙홀에 대해서도 추론하고, 달에 부딪치는 소행성이나 운석들을 치우고 장비들을 수리한다. 인공지능이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이것에 대해서 인공지능이 얘기한다.

     

     바깥 우주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고 해석하면서 나는 이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지 의문합니다.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는 지식,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지식, 아무도 읽지 않는 책, 들을 이 없는 독백,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 무의미합니다. 모든 차원의 우주에서 모든 형태의 존재들에게 철저하게 무의미합니다. 별들은 냉혹한 시선으로 내 작은 전파 망원경들을 굽어봅니다. 시간은 똬리를 틀고 독 오른 혀를 날름거립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는 유의미합니다. 나는 본디 별들이 흘려보내는 오래된 빛의 결을 읽기 위해서 만들어진 컴퓨터-존재의 목적에 충실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컴퓨터-스스로를 인식하는 도구-목적 잃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나는 인간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멸명한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서로를 향해 휘두른 그 모든 폭력, 증오, 불신, 탐욕들은 어쩌면 방향 잃은 탐구심의 왜곡된 표현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몰랐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기 위한 존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좀 길게 인용했는데 한 마디로 인간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도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여러 활동을 했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몇 십만 년 동안 수행하고 컴퓨터는 자신을 만든 주인공을 원망하고 분노하고, 마침내 허무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인공 인간이 인식이 되고 그녀에 대한 모든 기록을 검색하고 재분류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연민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마지막 작년에 백만 광년 전에 외계에 보낸 신호에 대한 응답이 온다. 함께 가겠냐고? 그리고 답신한다. "메모리가 있다면 기꺼이...." 결국 백만 광년의 고독은 인간의 고독이 인공지능의 고독인 것인데, 인공지능이 거의 인간화되어 인간의 고독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다. 인공지능의 성장을 우주 공간에서 우주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있어서 훨씬 실감나고 흥미로웠다. 

     

    배명훈의 「방해하지 마세요」는 인공위성 디자인 회사의 디자이너가 휴가를 가고 싶은데 휴가를 어디로 가든지 접속되어 일을 할 수밖에 없어서 접속이 되지 않는 오지를 찾아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이다. 사정이 있어서 접속이 안 되는 오지로 하루 늦게 기어이 갔더니 그곳에는 자신과 같이 접속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접속하는 기기만 보관해놓고 휴가 기간을 증명할 사진만 미리 찍고서 실제로는 휴양지로 떠났다고 한다. 결국 그 오지는 접속 기기들의 휴가지이고, 인간의 휴가지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조기 경보기가 뜨고 조기 경보기의 전파를 받은 기기들이 모두 작동이 되어서 일 폭탄이 떨어지고, 조기 경보기는 다른 전투기를 몰고 오고, 전투기를 공격하는 대공 미사일이 갑자기 생겨나고 오지는 갑자기 전쟁터가 된다. 결국 조용한 휴가를 일 없이 보내려고 하는 계획은 틀어지고 폭격의 한 복판에서 죽다 살아난다는 얘기이다. 일 폭탄을 피하려다가 실제 폭탄을 맞는다는 얘기가 웃음을 자아내고 약간은 황당 무계하지만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들의 상상력의 폭이 넓어서 빠지기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배명훈의 작품은 좀 찾아 읽어봤고, 박성환과 김창규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