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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
감독 |
노영석 (2008 / 한국) |
출연 |
송삼동, 김강희, 이란희, 신운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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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묘미 중의 하나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 속에 던져졌을 때 이를 어렵게 헤쳐나가면서 그것이 추억이 되는 경우이다. 이 영화 속 여행의 경우는 너무 예상하지 못해서 좀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혁진은 친구들의 제의로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가기로 하고, 정선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온다던 친구들은 너무 늦게 일어나고, 또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한다. 결국 다시 돌아가려 하지만 친구 기상의 설득으로 팬션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한 여행은 시작된다. 기상의 아는 형 팬션이라고 생각한 팬션은 그 팬션이 아니었고, 거기서 만난 이상한 남녀와 술을 마시다가 바지와 지갑, 핸드폰을 도둑 맞았고, 도로에서 추위에 떠는 그를 태워준 트럭기사는 변태같은 사람이었으며, 기다리던 친구와 아는 형은 그에게 계속 술을 먹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혁진은 여행을 스스로 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여행을 당한다. 정선에서 갈 곳이 없어 서울로 가려 하지만 기상의 제안으로 정선에 머물게 되고, 다음 날 서울에 가려 하지만 기상의 제안으로 강릉에 가게 되고, 강릉에서도 서울로 가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남녀의 제안으로 밤새 술을 마시게 되고, 그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 서울로 가기 위해 정선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우연히 만난 여자가 동승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강릉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그는 머리를 굴리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가 스스로 결정하는 유일한 순간이었으나 감독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우 고생하고 심적으로도 불안해 한다. 이런 불안감은 관객들도 함께 느끼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관객들은 궁금해 한다. 예정되지 않은 여행의 끝, 목적지는 어디일까? 어떻게 집에 갈까? 관객으로 하여금 이렇게 궁금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그러면서 관객들도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소재인 술도 영화를 이끌어간다. 혁진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그러면서 여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만일 술이 없었다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어 영화는 얘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서 여행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더군다나 혼자서 하는 여행은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혼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여행이라는 과정 중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 터널 같은 길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니까 어디든 떠나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고 싶다. 이왕이면 혼자서. 대신 술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