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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5] 화양연화: 무표정 속의 사랑
    느낌의 복원/영화 2009. 2. 4. 21:36
    화양연화
    감독 왕가위 (2000 / 프랑스, 홍콩)
    출연 양조위, 장만옥, 소병림, 반적화
    상세보기

    왕가위 감독은 역시 스타일리스트였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소홀함이 없었다.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든다.

    차우와 첸 부인은 같은 날 옆 집에 이사하면서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이 둘이 한 눈에 눈이 맞아서 불꽃을 튀기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여러 단계를 감독은 징검다리 놓듯이 만들어놓았다. 바뀐 이삿짐 전달, 복도에서의 만남, 국수집에서의 만남, 책을 빌려주는 행위, 이웃집 주인 여자와 직장 동료를 통한 소식 전달 등...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그러다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사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확인하고부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마음을 약간씩 의지하게 된다. 차우는 연재 소설을 쓰는 데 첸 부인의 아이디어 제공 도움을 받기도 하고...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장면 중의 하나는 차우가 호텔에서 글을 쓰고, 첸 부인이 찾아오고 두 사람이 침대와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을 때 거울을 통해서 두 사람을 순차적으로 잡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남자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약간 이동하여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모습을 잡는 식으로 평범하지 않은 시선과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고백하거나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표정만 봐서는 웃거나 즐겁거나 상대로 인해 행복한 표정은 없다. 그들의 표정은 늘 무표정하다. 아마 배우자가 있는 사람으로서 외도를 하고 있다는 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랑의 모습, 알콩달콩한 사랑은 표현할 수 있어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복잡한 감정을 표정 속에 넣기는 쉽지가 않다. 여기서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의 탁월한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고, 여기서 이 영화의 품격이 나온다.

    둘은 헤어지는데 헤어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들은 항상 불안했기 때문에 둘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르니까 이별 연습을 해보자면서 연습 삼아 이별을 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이 너무 진짜같아서 울음을 터뜨린다. 남자는 연습이라면서 다독이지만 결국 둘은 헤어진다.

    마지막 앙코르 와트에서 양조위는 자신의 비밀, 첸 부인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앙코르 와트의 구멍 틈에 고백한다. 그리고 가슴에 담는다. 크메르 왕조의 비밀과 영광을 담고 있는 앙코르 와트에서 사랑의 비밀과 추억을 담고 떠나는 차우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달에 앙코르 와트를 다녀왔는데, 내가 갔던 곳이 영화에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고, 영화를 보고 거기를 갔었으면 앙코르 와트에서 양조위의 숨결을 느꼈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가볍지 않아서 좋았고, 빠르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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