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유적 3일차는 앙코르 와트 주변이 아니라 교외 지역의 유적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툭툭을 빌렸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끄발 스피언이다. 숙소에서 끄발 스피언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다. 물론 툭툭을 탄 시간이었고, 자동차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고, 자전거로 가면.... 가기는 갈 수 있다. 가는 길은 바띠아이 스레이까지는 포장도로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비포장도로였다. 이제 길을 포장하려고 트럭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먼지 날리는 길, 참 오랜만에 봤다. 먼지도 오랜만에 마셨고....
1. 끄발 스피언
그렇게 끄발 스피언에 도착했다. 끄발 스피언은 계곡에 있는 유적이었는데, 유적이 계곡에 있으니 당연히 산으로 가야했다. 아래는 산에 오르는 중에 약간 전망이 있는 곳에 찍은 모습이다.
끄발 스피언은 계곡의 바위 등에 부조를 새긴 유적이다. 아래 사진과 같은 부조가 하나가 아니라 주변에 많이 있었다.
위 사진처럼 바위 옆 면에도 있었고, 아래 사진처럼 물 아래 바위에도 있었다. 이런 유적들이 계곡 곳곳에 10여개 정도 분포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훼손한 것처럼 볼 수도 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자연 속에 인간과 신의 생각을 담음으로써 함께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계곡 바위에 자기 이름 새기는 것보다는 그래도 받아줄 만하다.
끄발 스피언은 화려하지 않다. 유적의 화려함보다는 자연 속 한가로움을 느끼기 더 좋은 곳이다. 앙코르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찾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시간 여유만 되고, 그 유적이 그 유적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와본다면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 반띠아이 쓰레이
끄발 스피언에서 왔던 길로 30분 정도 나오면 반띠아이 쓰레이가 나온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힌두교 사원인데, 여기의 특징은 부조들이 정말 섬세하다는 것이다. 다른 유적의 부조들은 많이 닳고, 훼손되었는데, 여기는 복원이 많이 되어서 기계로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둥만 남았지만 그 기둥에 새겨진 부조는 시간을 타지 않은 것 같다.
부조가 얼마나 섬세한 지 조금 가까이 찍은 사진이다.
위 사진과 같은 부조들이 사원 본당의 기둥과 문, 탑과 지붕에 다 붙어있다.
사원 본당의 모습이다.
3. 프놈 복
캄보디어 말로 '프놈'은 '산'이란다. 그러니까 '프놈 복'은 '복 산'이다. '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프놈 복은 반띠아이 쓰레이에서 앙코르 와트 쪽과는 반대쪽으로 나가야 있는 유적이고, 산 꼭대기에 있는 유적이다. 산이라고 해도 그렇게 높지 않고, 600여개의 계단을 20분 정도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여기가 워낙 외지다 보니 관광객이 거의 없다. 우리가 갔을 때 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표 검사하는 관리인도 없고, 산 밑의 마을 주민들에게 관리를 위탁한 것 같다. 빨래 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코 흘리개 꼬마가 표 검사를 한다.
이렇게 외진 프놈 복을 굳이 찾아온 이유는 사실 좀 빈약했다. 안내 책에서 사원 위에 나무가 있다는 설명 하나만 기억하고, 한 번 가보자고 한 것이었다. 산을 올라가면서 따 프롬에서 사원 위에 나무 있는 것 봤는데, 그런 것 보러 이렇게 멀리까지 산행까지 하면서 올 필요가 있었을까 약간 후회도 했었다. 그러나 사원에 들어섰을 때 후회는 날아가고, 환희와 보람이 남았다.
폐허가 된 사원 위에 나무가 화관처럼 앉아있다. 이런 사원 위의 나무가 옆에 또 있다.
사원은 많이 훼손되어 폐허가 되었지만 그 폐허가 나에게 주는 분위기는 영화 세트장 같았고,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의 기둥과 부조, 무너진 돌더미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원 위에 있는 나무에는 꽃이 피었고, 꽃잎이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같이 간 동료가 찍은 사진이다.
사원의 입구에서 경건하게 찍은 사진이다. 좌우 2개, 뒤에 3개, 총 5개의 예배당이 있는 사원이고, 5개의 사원이 만드는 가운데 경내에 들어서면 현실은 잊고, 시간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으로 이 느낌들을 다 담을 자신이 없어서 동영상을 찍어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담았다. 왼쪽에 빨갛게 보이는 선이 비포장 도로이다.
프놈 복이 워낙 멀다 보니 사람들의 필수 코스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유적지였다.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와트, 따 프롬도 이국적이고, 인상적이고, 대단한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느낌을 받고 싶다면 프놈 복은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다. 이번 앙코르 유적 여행에서 최고였다. 나만의 프놈 복이었다.
4. 반띠아이 삼레
프놈 복에서 돌아오는 길에 반띠아이 삼레가 있다. 반띠아이 삼레의 특징은 복원이 가장 잘 되었다는 것이다. 무너진 돌 무더기 없고, 훼손된 부조 거의 없다. 돌들도 반듯반듯하다. 훼손된 유적들이 다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반띠아이 삼레를 와보면 될 것 같다.
약간 어둠침침한 검회색의 돌과 옥색의 흔적들이 주는 느낌이 좋은 곳이다.
5. 저녁 식사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먹는 얘기 별로 하지 않는데,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먹어서 잠깐 얘기하려고 한다. 캄보디아 모듬 불고기였던 것 같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불고기판 같은 것에 고기를 구워먹는데, 나오는 고기가 다양하다.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뱀고기, 악어고기가 나왔다. 그래서 뱀고기와 악어고기도 먹어봤는데, 약간 질긴 듯 하면서도 쫄깃쫄깃했다. 먹을 만한 고기였다.
무슨 고기인지 알아보라고 이쑤시개에다 그림을 붙여서 제공한다. 뱀고기 사진이다.
오늘은 산행이 주가 되는 날이었다. 평지만 다녀서 조금 지루했는데, 산행이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도 프놈 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내일은 똔레삽 호수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