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삶과 분리시키지 않고,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적인 삶을 추구하는 책이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책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삶에 대한 책이다. 책 중에서 기억에 남은 부분을 발췌해본다.
1. 예술에 대한 오해
1부는 예술에 대한 잘못된 생각, 특히 천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걸작을 만들어낸 예술가에게 천재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오해만 낳는다. 배움이나 연마의 과정 없이 천재성만으로 결과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천재라고 불리게 되기까지 그의 삶의 여정과 태도, 그의 배움, 그의 궁리와 모색이다. 하지만 천재로 낙인 찍히면 모든 과정은 무시되고 놀라운 결과물 앞에서 감탄만 할 뿐이다. 병든 예술가들은 병의 명령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을 이기기 위해 작업을 한다. 예술가란 병들 때조차도 강한 소질과 정력을 발휘하는, 가장 건강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이 얘기는 어제 썼던 『
왜 공공미술인가』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저 먼 어딘가에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실체로 상상한다. 때문에 미래를 향해서라면 과거도 필요없고, 힘들고 불행한 현재도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벌어야 나중에 잘 살것이라는 생각,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한 보험, 공부를 통해 지금 행복을 접고, 나중에 고생 안하려고 죽지 못해 공부한다는 논리 등. 하지만 현재를 견뎌내고 도착한 그곳에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언가를 함으로써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가가 되어야 예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함으로써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는 이 순간, 이미 와 있는 현재이다."
2. 예술, 우리들의 크고 단단한 웃음
2부는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술이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술 속에 우리가 찾아내야 할 어떤 의도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진리나 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예술가는 진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말 걸어온 세계를 자신의 거짓말로 표현한다. 그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다. 진리라는 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을 거짓이라 배척하지만, 답이 없는 사람들에겐 세상 모든 게 거짓이고, 그 거짓 모두가 동시에 진실이다. 알고 있는 진리 대신 내가 본 거짓을 말하기. 이게 곧 예술이다."
"내가 보는 세계와 다른 사람이 보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다른 세계로의 넘나듦이 가능해진다. 진실은 그 넘나듦의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법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사실을 발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실을 구성하는 행위이며, 예술가는 땅 속에 묻힌 진실을 캐는 광부보다는 땅 위에 거짓말의 씨를 뿌리는 농부에 가깝다."
"세계와 나의 공통 리듬이 만들어지면, 그 리듬 안에서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된다. 이렇게 다른 존재들과 만나 하나의 리듬을 이룰 때마다 우리는 여러 개의 나와 여러 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예술은 닮게 표현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데 사로잡히지 않는다. 문제는 대상의 외형을 닮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힘을 포착하는 것. 그 힘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면, 전혀 닮지 않았지만 똑같은 느낌을 주는 캐리커처들처럼, 닮지 않은 것 속에서도 닮음이 솟아오른다."
"예술가는 해답이 아니라 문제를 던지는 존재이고, 하나의 작품이란 관객 앞에 던져진 커다란 물음표다. 그리고 관객은 그 물음을 흥미롭게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추리해보고 의심해보는 일종의 탐정이다."
3. 예술-하기, 아직 오지 않은 우리들의 예술
3부는 새로운 예술의 몸짓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질문, 우리의 저항, 우리의 아픔.... 어디서든 출발할 수 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기쁨, 웃음, 춤, 몸짓, 그 모든 것이 바로 예술이다."
"우리의 삶과 세계는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게 아니라,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공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유용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예술가의 만남, 혹은 작품과 우리들의 만남 역시 그러하다. 예술가의 눈과 귀와 손을 움직이게 만드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들만이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우리의 마음과 신경과 뇌를 움직이게 만드는 작품에서만 의미가 발생한다."
"'나'란 변화하는 내가 변화하는 세계를 만남으로써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임을 긍정하는 사람들에겐, 삶 자체, 이 세계 자체가 예술이다."
에필로그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 그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감수성들을 갖게 되는 것. 세상에 대해 논평하고 근심하는 대신, 지그재그 길을 오르내리고,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누군가를 위해 작은 선물이 되어주는 것, 친구의 집을 찾아 친구에게 노트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지난 길을 지나고, 그 친구가 되어보는 것, 예술이란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피어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이 아닐가? 예술가란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그 아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의식적으로는 누구나 자유로운 척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의 세포 하나까지 자유롭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가장 진보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학문이나 일상적인 삶에서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건, 그저 의식만 진보적인 척하는 것일 뿐, 그의 신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혁명적인 변화는 감수성의 변화, 지각과 감각의 변화이다. 그건 일상을, 관계를, 즉 삶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우리 반 애들에게 소개를 했다. 즐겁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들이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 즐겁기 위해서 읽으면 좋은 책인데, 이 책에서는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하니 너희들에게 권하기가 좀 조심스럽고, 이런 책 속의 삶이 현실 속에서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말한다.
"그럼, 선생님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네요."
아, 찔린다.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삶 속에서 실천하면 아이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텐데... 조금이라도 실천해야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