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은 잘 모른다. 화가들의 이름을 어디서 주워 들어봤지만, 무엇을 그렸는지, 작품 경향은 어떠한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비슷한 작가들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그림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게 되어도 감흥이 잘 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저 '나도 봤는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그림을 모르는 이유를 찾다보니 그림을 자주 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시회를 가는 것도 아니고, 화집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자주 접하지 않는 이유는 영화만큼이나 능동성이 필요한데, 영화만큼의 재미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화집을 통해 보는 작품은 웬지 감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화집으로 작품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그림은 소홀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핑계가 될라나?
이런 나에게 황경신의 『그림 같은 세상』은 조금 낯선 책이었다. 그림에 대한 책인데, 그림에 대한 설명이 너무 주관적이다. 편집 체계도 논리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다. 22명의 화가와 그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맨 앞에 화가 얼굴이 나온다. 작가 소개 간단히 나온다. 글쓴이가 뽑은 화가의 대표작이 나온다. 사람들이 뽑은 것이 아니라 글쓴이가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뽑은 작품이다. 간단한 느낌글이 나온다. 이어서 화가나 그림에서 연상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화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그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글쓴이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글쓴이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그 그림을 풀어헤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화가의 다른 작품과 짧은 느낌글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을 역시 주관적으로 풀어놓는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은 그림을 잘 느끼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책에 있는 그림들이 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주관적인 글도 잘 읽히지 않았다. 너무 주관적이라서... 하지만 그림을 이렇게 보고, 느끼면 그림을 보는 것도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시가 어려워서 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가 어렵다고 접하지 않으면 시를 즐길 수 없다. 어렵지만 그냥 생각없이 읽고, 접하다 보면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도 생각없이 보고, 자주 접하면 좋을 것 같다.
아무 전시회나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