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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8] 아무튼, 헌책: 헌책방의 감성과 낭만을....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5. 9. 14. 18:09
책이름: 아무튼, 헌택
지은이: 오경철
펴낸곳: 제철소
펴낸때: 2024.05. (전자책)
나도 대학 때 헌책방을 많이 다녔다. 새 책하고 똑같은데 값이 싸니까 헌책을 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참고서들도 그렇게 샀다. 그러다 대학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헌책방을 다녔다. 대학 교재는 물론이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도 주로 헌책으로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나름 헌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게 되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과 많은 부분 비슷했다. 그런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먼저 헌책이 가지는 의미를 얘기한 부분이다.사물보다는 마음과 깊이 관계한다”라는 말에는 은근히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헌책을 사 오면, 아니 사 가야겠다고 어떤 헌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나는 그것과 나의 격렬해질 것이 분명한 관계—“사물들이 지닌 기능가치, 즉 그것들의 실용성 내지 쓰임새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 사물들을 그것들이 갖는 운명의 무대로서 연구하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의 조짐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헌책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고, 나와 연결된 끈끈한 그 무엇이다. 그리고, 이전 주인과의 보이지 않는 연결도 있다. 이런 연결과 관계가 헌책을 자꾸 찾게 되는 이유이다. 거기다가 낭만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있는 것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냥 사고, 모으고, 간직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얘기도 한다.
사실 내가 취미 생활로 이어가고 있는 헌책 수집이라는 것은 유별난 일이 아니다. 그저 오래되고 드물고 그래서 쉽게 구해서 볼 수 없는 (주로) 문학 관련 책들 가운데 나의 눈에 가치 있어 보이는 것들을 때때로 한두 권씩 사서 모아두고 들추어보기도 하며 소중히 간직하는 것, 이게 전부다.
나도 주로 문학 관련 책들을 모았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봄날 등의 대하소설, 이상문학상 시리즈, 이문구의 소설들, 박노해, 김남주를 비롯한 시집들을 모았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자주 찾았던 헌책방은 낙성대의 흙서점, 홍제의 대양서점—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동네에서 각각 점포를 운영했다—, 용산의 뿌리서점, 서울대 근처의 책상은책상이다, 한성대 부근의 삼선서림, 외대 앞의 신고서점, 서대문의 어제의책 등이었다. 드물게는 아벨서점이 있는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순례를 떠나기도 했던 것 같다. 홍대 앞의 온고당과 신촌의 공씨책방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짐작하는 독자가 있겠지만 역시 우리의 본거지는 헌책방 숨어있는책이었다. 온라인에서는 프리챌 커뮤니티 숨어있는책이었고. 우리는 두 곳 모두 사랑해마지않았다.
위에 언급한 서점들 가본 적 있다. 뿌리서점, 책상은책상이다, 신고서점, 온고당, 공씨책방, 숨어있는책 등은 가보았다. 그 외에도 고대 앞의 새한서점, 연대 앞 정은서점도 있다. 그 시절 자주 다녔던 서점들의 이름이 이렇게 나오니까 새삼스럽게 반갑고, 그 서점의 풍경들도 살짝 떠오른다. 그 중에서 숨어있는책을 여러 서점 중에서 제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제일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글쓴이도 이 서점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헌책방에서 나는 종종 이미 가지고 있는—과거에 가지고 있던—책을 또 사들이고는 한다. 대개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서다. 긴가민가하면 일단 사고 본다(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어려운 책들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갖고 다니다가 잃어버리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책 이외의 물건은 자주 잃어버린다—어떤 책이 서재에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을 때는 많은 것이다. 한두 권 더 갖고 싶어서일 때도 있다.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이른바 소장용으로 더 갖춰두기 위해서다.
나도 그렇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사야할 목록이 늘 머릿속에 있었고, 그 책을 결국 샀는데, 머릿속에 너무 오랜 기간 각인되어 있어서, 그 목록을 지우지 않아서, 샀던 책을 또 샀던 적이 있다. 그 책을 또 살 때에도 이미 산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또 반가워하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 책장에 그 책을 꽂으면서 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의 헛헛함이란.....
그런데 사실은 말 그대로 주저 없이 또 사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초판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판 1쇄본이다. 나는 헌책방에 가면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이어도 내 서재가 아니라 그 책방의 서가에 꽂혀 있는 같은 책들을 버릇처럼 펼쳐 들고 간기 면을 들여다보고는 하는데 그 까닭은 내 서재에 있는 책들 가운데는 초판이기는 하지만 1쇄본이 아닌 책들이 적지 않고 나는 그런 책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간기 면에 인쇄된 숫자 한두 개만 제외하면 다를 것이 없는 책을, 바로 그 사소한 차이가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하기에 태반은 끝까지 읽지도 않고 서가에 꽂아두기만 할 것이면서—그렇다,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사고 또 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 초판 1쇄본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초판 1쇄본을 또 사들일 때도 있다. 어쨌든 내 눈에는 너무나 귀해 보이는 데다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책이니 보일 때마다 쟁여두려는 추접스러운 욕심 탓이 아니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으나 독자의 양해를 구하자면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것인가? 말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초판 1쇄본보다 헌책방에서 다시 발견한 초판 1쇄본의 상태가 더 좋아서다. 나의 허름한 소장본보다 훨씬 더 멀쩡해 보이는 책이 이미 내 눈에 들어와버렸는데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라는 이유로 무심하게 지나치기란 나 같은 인간에게는 너무 힘든, 아니 고통에 가까운 일이다.
이것도 그렇다. 초반본, 그 중에서도 1쇄본을 귀하게 여겼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초판본도 있었는데, 이 때는 세로 쓰기였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초판본에는 민중미술가 오윤의 판화가 내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비장함이 뚝뚝 묻어나온다. 이런 책들은 이미 그 책이 있었는데도 나름 희귀하다고 생각해서 또 사기도 했다. 그리고, 상태가 좋으면 또 사기도 하고.... 위에 지은이가 쓴 얘기들, 다 내가 했던 것들이라 공감이 간다.
일단 나는 책에다 글씨를 쓰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밑줄을 긋는 일 또한 없다. 기억해두고 싶거나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르는 글에—이를테면 서평이나 독서 에세이—분명히 필요하리라 여겨지는 문장 혹은 단락을 마주하게 되면 휴대전화로 책장의 사진을 찍거나—쪽 번호가 보이도록—해당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간혹 손이 닿는 곳에 휴대전화도 포스트잇도 없는데 몸뚱이를 움직거리기가 죽도록 귀찮을 때는 하는 수 없이 책장 모서리를 강아지 귀 모양으로 접어두기도 하지만—이 또한 책에 남기는 흔적의 하나다—, 이는 대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책의 경우에 그리하는 것이고, 갖가지 이유로 각별히 소장하는 책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이것도 나하고 똑같다. 나는 책을 접지도 않는다. 그래서 책 집게를 쓰기도 한다. 전에는 모서리를 접었었는데, 책이 훼손되다 보니 그러지 않고, 포스트잇을 붙였다가, 이제는 핸드폰에 메모한다. 전자책으로 읽을 때에는 하이라이트로 저장했다가 이렇게 블로그 글을 쓸 때 복사해 와서 쓴다. 전에는 폰으로 사진도 찍었는데 정리가 안 되서 그건 안 한다.괴팍하기도 하다 싶겠지만 이는 내가 의미를 두는 서명본이 헌책방에서 ‘발견되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건네받은 서명본들은 그러한 발견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거기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 책들은 나의 상투적이고 따분한 현재와 아무런 긴장 관계도 맺지 못한 채로 함께할 뿐이다. 말하자면 유전(流傳)하는 책의 역사에 대한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헌책방의 서가 앞에서 서성거릴 때 나는 현재에 거의 관심이 없다. 지나가버린 것, 오래된 것,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각별하고 애틋한 것들만이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헌책방에서 어쩌다 발견하는 ‘이름이 쓰여 있는 책들’ 또한 그런 것들이다.
서명본에 대한 이 얘기에는 지은이의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다. 나도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서명본은 이름이 쓰여 있는 책인데, 내가 작가나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써달라고 받은 책은 별 감흥이 없지만, 헌책에서 발견한 누군지도 모르는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서명본에 더 감흥이 있다고 한다. 이유는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있어서.... 현재에는 관심이 없고, 과거의 것들이 각별하고, 애틋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이런 서명본을 사들인 적이 있었고, 그 안에서 그 사람들의 스토리를 혼자 상상하기도 했었다. 상상의 여지가 감흥을 준다는 말에 공감한다.읽으면서 헌책방을 다닐 때 가졌던 그 때의 감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고, 그 때의 헌책방들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책이라서 읽으면서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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