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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2] 초예술 토머슨: 무용지물의 미학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5. 7. 22. 23:29
책이름: 초예술 토머슨
지은이: 아카세가와 겐페이
옮긴이: 서하나
펴낸곳: 안그라픽스
펴낸때: 2023.07.
초예술은 뭐고, 토머슨은 뭔가? 개념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초예술은 예술을 넘어선 예술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지만 초예술은 초예술가가 초예술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만든다. 그러니 사실은 초예술가도 있을 수가 없다. 초예술을 발견하는 발견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초예술이 뭔데?
초예술은 이런 것이다.
먼저 순수계단. 순수계단? 계단이 계단이지 순수계단은 또 뭔가? 여기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참이 있다. 계단을 내려간다. 끝. 계단을 올라가서 어딘가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 어딘가가 없다. 그냥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 공간에 없어도 상관없다. 오직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순수한 계단으로서만 기능하고, 존재한다.

순수계단 순수터널도 있다. 터널은 길이 산이나 언덕 등으로 막혀 있으면 거기를 뚫어서 길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 터널은 평지에 터널이 있다. 산도 없고, 언덕도 없어서 굳이 터널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 그냥 터널이 있다. 터널을 위한 터널, 순수터널이다.

대충 감이 오는가? 초예술은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거기 있어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고, 이게 왜 여기에 이렇게 생겨났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게 만드는 그러면서 재미를 느끼는 대상과 행위이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가운데에서 예술을 넘어선 초예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럼 토머슨은 뭔데?
토머슨은 80년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어던 외국인 용병 선수이다. 용병 선수니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나오면 나오는 족족 헛스윙이다. 팬들은 실망하고 생각한다. 거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데 거기에 있다고..... 이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쓸모없는 존재의 대표인 것이다.
이 책은 사진 잡지인 <사진시대>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책이고, 매 연재는 지은이 자신과 주변 지인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다가 독자들의 참여로 확대된다. 투고받은 대상을 보고 토머슨에 해당되는지 지은이가 판단하고 소개하는 내용이다. 책에서 다룬 토머슨 중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뽑아보았다.
먼저 반사경이다.

반사경
도로 가로등 위에 반사경이 있다. 도무지 저기에 왜 반사경이 있느지 모르겠다. 새들을 위한 것인가? 거인을 위한 것인가? 이런 걸 보고 지은이는 토머슨의 헛스윙이라고 한다.바바 트라이앵글이라고 이름 붙은 계단 난간도 있다.

계단이 있고, 난간이 있는데, 난간 안쪽의 공간은 쓸 일이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은이와 발견자는 계단 위의 벽이 원래는 없었는데, 다른 공사로 인해 벽이 생겨서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문은 없는데, 문 손잡이만 있는 경우, 계단은 있는데 문이 없는 경우, 창문은 없는데 차양만 있는 경우, 문의 힌지 쪽에 손잡이가 있는 경우 등 주로 건물에 예전에는 기능을 했던 것들이 어떤 사정으로 없어지면서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들이 토머슨으로 남게 된 것이다.이런 토머슨이 조금 유명해지자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유의사항도 전달한다.
한 가지 당부할 말은 토머슨을 감상할 때는 토머슨 물건의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물건을 넌지시 보는 것이다. 그 집에 사는 주민에게 "이거 뭔가요?" 하고 경솔하게 묻는 일만큼은 피하자. 그 물건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인에게 안겨주면 귀중한 토머슨 물건이 철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혹은 반대로 주인이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해 사람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저속한 가공을 한 나머지 결국 단순한 장식 물건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이 책은 80년대에 쓴 책이니까 사람들한테 퍼지는 정도가 크지 않았을테지만 요즘 같은 시대였다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조금 유명한 토머슨에 대해서 주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주인도 그런 유명세에 대응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토머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은이는 재미있게 약간은 과장되게, 수다쟁이처럼 말한다. 거기다가 토머슨의 헛스윙이라고 하면서 야구에 비유하기도 하고.... 이런 문체 속에서 쓸데없이 진지함이 묻어 있어서 그게 재미를 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진짜로 엄숙하고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도 한다. 토머슨은 대부분 과거에 존재했던 공간의 무덤이라고....
토머슨이라는 건 거의 섬뜩하다. 대부분 세상의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으므로 토머슨을 발견하는 일은 사체를 발굴하는 일과 같다. 가끔 등골이 오싸해지는 이유는 거기에 영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물의 영혼이랄까, 공간의 영혼이다. 공간도 살아 있어 인간에 의해 생존한다. 인간이 숨을 불어넣은 공간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니 살아 있던 공간이 죽는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공간의 영혼도 그 장소에서 발생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를 감지하는 것은 인간이며 그것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크다. 그 두려움은 한 번에 밀려오지 않고 자잘하게 분산되어 때로는 가련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읽으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이 잘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재기발랄한 문체를 살려서 글의 맛이 잘 살아났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거리의 토머슨을 찾아나선 우리 나라 사람들도 있다. 새로 개발된 곳보다는 도시의 오래된 공간에서 이런 토머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러 찾아다닐 것 같지는 않은데, 거리를 유심히 볼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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