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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0]아무튼, 인터뷰: 인터뷰의 깊이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5. 9. 20. 18:02

    책이름: 아무튼. 인터뷰
    지은이: 은유
    펴낸곳: 제철소
    펴낸때: 2025.07.(전자책)

    은유 작가의 인터뷰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인터뷰에 대한 안내는 아니고, 좀더 깊이 있는 이야기, 진짜 인터뷰를 고민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중에서 와닿는 이야기들을 뽑아보았다.

    인터뷰를 위해서는 먼저 섭외를 해야 한다. 지은이가 한겨레 신문에 주말마다 인터뷰 연재 기사를 맡게 되어 섭외를 했을 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매체가 그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이다 보니 그 힘을 빌려서 섭외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느꼈다는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섭외 불발’이 되자 어쩐지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세 번째로 섭외한 분들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다 여성이었다. 일간지에 얼굴이 나가는 게 부담스럽다는 거절의 이유도 일치했다. 사실 좀 의외였다. 나는 일간지라서 즉, 영향력 있는 매체라서 섭외가 수월하리라 예측했는데 어떤 이들에겐 그게 외려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나중에 젠더 관련 책에서 이런 정보를 얻었다. 여성이나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은 자기 이야기가 공적 공간에서 귀하게 대접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갖기 어렵다고.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 말하기 전에 자기 검열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섭외 실패가 구조적 맥락에서 다시 해석됐다. 젠더에 따른 성향 차이로 일반화할 순 없지만 아주 무관해 보이지도 않았다.

    공적 공간에 대한 두려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여성, 장애인,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공적인 공간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도 인터뷰 요청이 오면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어찌 어찌 섭외가 되면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할지 질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질문지를 짤 때 우선은 생애 순서대로 흐름을 잡는다. 어린 시절에 어떤 아이였는지,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인지 등 물어가며 현재에 이르러 주제와 관련한 질문을 모은다. 시간에 따른 구성이 가장 안정감을 주며 쉽고 만만하니까. 그런데 나중에 질문지를 확정할 땐 질문의 순서를 바꿔준다.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해서 만나자마자 ‘보육 시설에 언제 입소했나요?’부터 물어보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자립준비청년이라서 만나는 건 사실이지만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사실은 그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인생 어느 시기의 한 상태였을 뿐이다. 인터뷰는 한 인격을 만나는 일이지 인격의 일부를 만날 순 없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축소시키는 순간 대화의 영토는 좁아진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을 맨 위에 놓는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인터뷰이의 발리 여행 사진이 올라와 있다면 여행이 어땠는지를 1번 질문에 배치한다. 인터뷰이 입장에서는 최근 일이니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 편하게 이 말 저 말을 하다 보면 마음의 빗장도 자연스레 풀릴 것이다.

    인격을 만나는 일이지 인격의 일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구 조사 같은 질문 말고 그 사람의 진심과 본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조사를 해서 알게 되면 질문하고 싶은 마음, 호기심이 없어진다. 그런 상태로 막상 인터뷰에 임하게 되면 알고 있는 내용을 그 사람 입으로 말하게 하고 확인만 하고 오는 꼴이 된다. 따라서 심도를 가지되 호기심이 들어갈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하면서 조사하고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뭐 거의 예술의 경지다.

    인터뷰를 하는 장소도 중요하다. 환경에 따라 인터뷰이의 마음 가짐이 달라지니까.

    집의 단점도 있다. 인터뷰이에게 너무 익숙한 장소라서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를 터놓게 된다. 보통 사람은 일상 공간을 탈출해 여행을 가거나 낯선 장소에 가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집은 인터뷰이의 ‘다른 자아’가 깨어날 기회가 차단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에게 인터뷰 과제를 내줄 때 당부한다. 어머니, 아버지나 자녀 등 가족을 인터뷰할 때는 집 아닌 곳에서 만나보라고.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서 추리닝 같은 편한 옷을 입고 식탁에 마주 앉으면 아무래도 인터뷰 각이 나오기 어려워서 그렇다. 한 학인은 명절에 본가에 내려가 어머니를 인터뷰했는데 동네 카페에 자리 잡고 무려 다섯 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음료는 두 번 시켰겠지).

    집에서 인터뷰하면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지만, 위와 같은 단점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내려면 새로운 곳으로....

    연예인을 만날 때의 느낌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연예인과 실제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서 설레고 신기하고 실감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면 이런 그런 것 없다고 한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는 사람들이라서 인터뷰라고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다. 여유있게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빈번히 처하다 보니 연예인을 만난 날은 자괴감이 들었다. 빵처럼 부푼 가슴으로 돌아오기는커녕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자아가 사라지는 기분으로 귀가했다. 설사 인터뷰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져도 즐겁지가 않았다. 공인은 자아가 이미 세팅된 사람이다.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보여주어야 할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인사로 사는 숙명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릴케의 로댕』에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명성이란 결국 하나의 새로운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모든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잘 세팅된 오해의 틀의 변죽만 울리게 되니 인터뷰를 하는 입장에서는 엔도르핀도 솟아나지 않았다. 몸은 얼마나 정직한지.

    연예인들의 인터뷰가 모두 가식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가식적이고 싶어서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숙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잘 세팅된 오해의 틀'이란 말이 핵심을 찌른다. 그리고 동성애자를 인터뷰할 때 이성애자의 시각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부끄러움이 깨달음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자기 자신에게 인터뷰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자기과시의 시대에 존재가 작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존재를 얕보는 게 문제지, 스스로 작아져서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압도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흡수할 수 있다면 인터뷰어로서는 더없이 좋지 아니한가.

    인터뷰가 토론은 아니겠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 생각의 확장이나 경험의 발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남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터뷰는 이렇다. 인터뷰이는 질문을 받는 자리에서 고심하고 답하며 자기도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고, 인터뷰어도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가진 편견의 귀퉁이라도 허물어질 계기를 얻는 만남의 장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터뷰를 담은 책이나 매체들도 늘어나면서 인터뷰에 대한 생각들도 깊어지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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