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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5] 아무튼, 당근마켓: 사소한 물건에서 깊이 있는 사유까지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5. 2. 21. 13:09

    책이름: 아무튼, 당근마켓

    지은이: 이훤

    펴낸곳: 위고

    펴낸때: 2023.9.(전자책)

     

    일본에 다녀오면서 공항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 같아서 종이책을 갖고 가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서 전자책을 하나 대출받아서 읽었다.

     

    무겁지 않고, 길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하나 골랐다. 이 시리즈가 우리 생활과 친숙한 소재나 대상을 삼고 있는데, '당근마켓'은 그 중에서도 더 친숙한 소재라서 선택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나름 생각할 것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지은이는 프리랜서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프리랜서라는 말을 쓰지만 이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 지은이는 이걸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한겨울에도 고용이 되기 위해 8킬로가 넘는 창을 들고 이동하는 기병을 상상해보자. 얼음장 같은 갑옷과 무기를 견디며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들을.
    ‘찌르기’를 뜻하는 랜싱에서 시작된 이 창기병들의 호칭은 ‘랜서’였다. 중세시대에 국왕이나 영주에게 전속되지 않고 일하는 용병을 프리랜스라고 불렀다. 오늘날 특정 조직이나 단체에 전속되지 않고 일하는 ‘프리랜서’라는 말은 거기서 유래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용병, 그리고 찌르기를 하는 사람. 자신의 능력을 갖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신의 무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 무기를 활용하는 사람. 그 말의 유래가 오늘날 프리랜서의 모습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프리랜서가 된다는 건 자신만의 돈의 단위가 생기는 걸 의미한다. 밥을 먹을 때도, 작은 연필을 살 때도, 마음먹고 비싼 헤드폰을 살 때도 내 노동의 단위와 견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서 프리랜서의 고달픔도 이야기한다.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고달픔일 것이다. 그래서 뭐 하나 소비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일을 하면 버는 돈이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거 하나면 짜장면이 몇 그릇인데 하는 생각을 하는 우리처럼......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 대해 그는 빠삭했다. 그 덕분에 퍼즐에 색이 많을수록 맞추기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 속 대상을 색으로 구분하는 것만으로 자리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도. 의뢰한 퍼즐은 하필 나무랑 잔디밭이 전부 녹색 계열이어서 피스를 일일이 하나씩 다 대봐야 했을 거다. 낯선 골목과 모르는 집 앞을 서성이듯, 퍼즐 조각의 끄트머리와 끄트머리를 일일이 맞대보아야만 확신할 수 있었을 거다.
    사람을 찾던 시절에 꼭 맞는 비유다. 나와 어울리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는 돌출된 나와 움푹한 자신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이후에도 나와 타인은 동시에 탐구되었다. 끄트머리와 끄트머리를 일일이 맞대보는 시간.

     

    퍼즐의 끄트머리를 일일이 맞대보는 행위에서 자기에 대한 인식, 인간 관계의 철학을 이끌어낸다. 사유의 깊이가 다르다. 소소한 당근마켓 이야기, 소소한 퍼즐 맞추기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까지 생각을 확대한다고?

     

    평소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려본 사진인데, 천운처럼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그걸 놓쳤다.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라고, 이런 메타포는 또 만날 수 있다고 주문 외듯 스스로를 설득한다.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장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너무 절망하지 않는 법을 사진가는 배우게 된다. 장면은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장면은 오지 않는다.

     

    당근이나 중고장터에서 바라던 물건이 떴을 때의 설렘과 그것을 놓쳤을 때의 아쉬움을 지은이는 사진 찍을 때와 연결시켜서 이야기한다. 그 물건을 놓치고나서 다시 올 것이라고 나를 달래지만 오지는 않더라. 그런 심정인 것 같다. 

     

    욕망은 우리에게 이상한 일들을 한다. 원래 내 것이던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온갖 불안감에 휩싸였다. 가진 적 없는 물건에 이렇게 절박해지다니. 저 돈을 주고 저걸 살 상황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저렇게 우아한 의자는 아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떡하지. 그냥 사겠다고 할까. 미친 척하고 사자. 어쩌면 벌써 다른 구매자가 나타났을 거야. 그러니 서둘러야 해. 하지만 잘 생각해봐. 이건 네가 의자에 써본 가장 큰 금액을 훨씬 웃돌고… 아무래도 무리야. 만 원 이만 원 아끼려고 버스 탔던 밤들을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이 의자를 10년 동안 쓰게 된다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않을까? 이 금액을 10으로 나눠봐. 합리적이지 않니?
    그래. 사야겠다. 의자 하나에 누가 이런 돈을 쓰냐고 책망당해도 상관없다. 그간 기다려온 시간을 생각했다. 안 사면 평생 후회할 거다.

     

    정말 좋은 물건을 앞에 두고, 비싸서 살 수 없다고는 현실과 돈과 관계 없이 정말 갖고 싶다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정말 현실적으로 잘 드러나있다. 순간순간마다 생각이 바뀌는 모습에 욕망이 드러난다. 인간적이어서 아름답다.

     

    나는 당근마켓은 잘 안 하고, 중고나라를 많이 애용했었다. 지금은 그것도 별로 안 하지만..... 중고 물품를 거래하면서 느끼는 세밀한 감정들과 물건에 대한 애착과 욕망, 갈등이 잘 드러나 있어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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