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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6]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구원자의 추락
    행간의 접속/문학 2024. 1. 21. 10:25

    책이름: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은이: 임성순

    펴낸곳: 실천문학사

    펴낸때: 2012.07.

     

    0. 들어가면서 

     

    임성순의 '회사' 3부작 중 3부.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인간의 바닥을 본 의사와 신부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 2부 『문근영은 위험해』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작품이다. 두 작품의 작가가 같은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1부 『컨설턴트』의 장이 보았던 아프리카 내전이 먼 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라면 3부에서는 그 내전 안에서 고통과 피를 직접 목도하는 이야기이다. 정유정의 『28』 이후로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묵직한 주제 의식에 소름을 느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서 자료 조사를 얼마나 많이 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의학에 대한 지식, 아프리카 내전 국가의 정세와 민족 간 갈등의 역사 등은 소설의 사실성을 높여서 독자에게 울림의 크기를 확장시킨다.

     

    1. 박현석 베드로 신부

     

    박 신부는 15년 전에 아프리카에 선교를 간다. 목적은 신부로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히, 성심껏 목회 활동을 했고, 모두가 그를 보고 로마 교황청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과정 중의 하나로 아프리카 선교를 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오지의 전임 신부가 안식년을 맞아 대신 목회 활동을 하는 것이었고, 신도들도 모두 그를 잘 따랐고, 그도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라리아 걸려서 시내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거기서 범준을 스치듯이 만난다.

     

    다시 회복하여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소수 족 대통령 후보의 비행기 사고로 다수 족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다수 족의 민병대가 성당으로 들이닥쳤다. 소수 족 중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못 떠나는 사람들만이 성당에 남아있었다. 박 신부는 민병대와 협상을 했지만, 그들은 단지 신부의 생명만 보장하고 성당의 모든 소수 족들을 학살하였다. 박 신부는 민병대에게 받은 통행증으로 빠져나와 귀국한다.

     

    그리고 그 전에 유혹에 빠지는 장면도 나온다. 민병대가 성당으로 들이닥치기 전에 마을은 이미 학살이 진행되었고, 이 모습을 본 박 신부는 복사 아이의 성적인 위로를 받는다.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기된 성기에 치욕을 느끼면서 신부로 갈등한다.

     

    귀국하여 자신의 성당 여학생이 임신하였고, 박 신부가 아기의 아버지라는 소문이 나왔고, 그는 징계를 받는다. 사실 아이의 아버지는 신학대학생이었는데, 여학생은 이를 밝히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다 뇌사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어느 날 박 신부는 범준의 회사에 납치되어 안락사되어 장기가 적출되고, 4명의 생명을 살린다. 결국 많은 이를 구원하기 위해 신부가 되었지만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고, 신부이기를 포기하자 4명의 생명을 구원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2. 범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인술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의료 사고까지 겪으면서 의사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될 즈음에 국제적인 자원봉사를 하는 의사회의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된다. 처음으로 간 곳은 중앙 아시아의 난민촌이었다. 거기서도 인술은 없었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일이었고, 산 자보다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 내전이 악화되어 난민촌의 의료 봉사 기관도 5개월만에 철수하게 되어 다시 귀국한다. 

     

    그리고 얼마 후 봉사단체의 팀장이 아프리카로의 봉사를 제안하고, 범준은 수락하여 아프리카로 향한다. 역시 내전이 벌어지는 곳이었지만, 도시의 병원에서 현지 의사를 교육시키는 일이라서 긴급하거나 힘든 일은 없었고, 배움이 목마른 현지 의사들을 키워서 이 나라의 의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보람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지 의사와 간호사들도 그를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열정적으로 배우려고 하였고, 범준은 그들에게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소수 족의 유력 후보가 비행기 사고로 죽자 반대 쪽의 다수 족의 총공세로 내전은 격화되고, 병원은 다수 족과 소수 족으로 나뉘게 된다. 병원은 폐쇄되고, 의료진을 데리고 탈출하지만 다수 족 의료진의 배신으로 소수 족 의료진은 몰살당한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신당한 범준은 충격을 받는다.

     

    국경 밖으로 추방당한 뒤에도 학살을 피해 도망친 소수 족 난민들을 위한 난민촌에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입으로 다수 족이 물러나고, 소수 족이 득세하자 다수 족들이 학살을 피해 난민촌으로 들이닥쳤다. 학살을 하던 다수 족들을 받아들일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의사이기에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자신을 배신하고 소수 족을 넘겼던 옛 동료 의사도 있었다. 그의 수술을 맡으면서 실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끝내 성공하고 만다. 그러면서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다시 귀국하고 병원에서 일하다가 조건에 맞는 여자와 의미 없는 결혼하고, 의미 없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길렀다. 그러다 아이에게 심장병이 생겼고, 그가 극진히 간호했지만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식을 기다리는 중에 자살로 뇌사에 빠졌던 청년이 응급실에 들어왔고, 아이를 살릴 기회를 맞았지만, 청년의 맥을 짚던 범준은 그가 다시 살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재검사를 하여 그를 살린다. 아이를 위해 환자의 소생 가능성을 숨길 수도 있었지만 의사로서의 양심 상 그러지 못하였고, 결국 자신의 아이는 죽는다. 아이를 묻고 얼마 후 응급실로 자살 환자가 들어왔다가 결국 죽는데, 그를 보니 지난 번에 자신의 아이에게 심장 이식을 할 수도 있었던 그 청년이었다. 그는 살아도 생활을 유지할 능력과 환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자살을 시도해서 성공했던 것이다. 그 청년의 죽음을 확인한 범준은 자신의 지난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이 일 이후로 범준은 사설 컨설턴트와 연계하여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을 시행한다. 자살로 인한 뇌사자들을 찾아내거나 여러 번 자살 시도한 사람들을 데려와 동의를 받고 안락사 시킨 후 장기 이식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로우니까.

     

    여학생의 아버지는 범준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범준은 박 신부를 죽여 장기를 적출한다.

     

    3. 인상적인 장면

     

    범준이 아이를 잃고 아이가 있던 병실에 들려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잡무를 마치고 나자 습관적으로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사이 아이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햇빛 찬란한 날이었다. 막 새로 깔아놓은 시트 위로 오후의 해살이 쏟아졌다.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흰 시트에 반사된 빛이 너무나 눈부셨다. 새 시트였다. 너무나 눈부셔서 눈이 아팠다. 눈이 너무 아파 눈을 뜰 수 없었다. 범준은 자꾸 눈을 부볐다. 흰 텅 빈 시트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 이상 병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병실을 떠날 수 없었던, 시트 주인은 이제는 없었느니까. 해살은 수천 개의 바늘이 되어 그의 몸에 박혔다. 그 바늘은 그의 몸에 혈관을 타고 흐르며 몸 구석구석을 갈가리 헤집어놓았다. 심장이 뛸 때마다 그 햇살이 고통이 되어 그의 몸에서 폭발했다.

     

    자식을 잃은 고통스러움과 찬란한 햇살이 대비되어 고통의 배가됨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장면이 박 신부의 장면에도 있다. 학살당한 소수 족들의 시체가 있는 성당을 두고 박 신부가 떠나는 장면이다.

     

    그는 등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피 칠갑을 한 채, 민병대 장교가 남기고 간 통행증을 들고 자동차에 탔다. 그가 첫날 보았던 분지의 풍경이 차창 너머로 한눈에 들어왔다. 산그늘이 물러나며 아침 햇살이 막 닿기 시작한 분지의 사탕수수밭은 미풍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보는 이곳의 풍경이겠지. 박 신부는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 잊을 거야. 신도 이곳의 기억도 모두, 모두 지워버릴 거야. 그때 햇살이 닿기 시작한 분지 아래 어디선가에서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박 신부도 자신의 신앙심을 바쳐 헌신한 교회와 신도들을 잃고, 신을 거부하면서 아파하는 마음을 햇살 받은 사탕수수밭의 아름다움과 대비시켜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 바로 뒤에 박 신부가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성경 말씀 중에서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는 말씀과 연계되어 박 신부의 삶과 운명을 심화시키고 있다. 

     

    4. 마무리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이야기한 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의 두 사람이 왜 이런 모습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교차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호기심을 느끼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의사와 신부 두 사람이 겪은 잔혹함과 배신감은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긴장과 압박을 느낀 적은 오랜만이었다. 

     

    의사와 신부는 육체와 정신의 구원을 주는 존재로서 사명감과 숭고함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들의 내면에서 사명감과 숭고함을 채우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망과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주저앉고 갈등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사명감과 숭고함을 요구받는 역할이 아니었으면 이런 내적 갈등이 잘 표현되지 않았을텐데, 높은 도덕성과 양심, 사명감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추락이 더 충격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21개의 장이 평균 16쪽 분량 밖에 되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았고, 내용 전개도 빨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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