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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 문근영은 위험해: 병맛 B급 대잔치행간의 접속/문학 2024. 1. 18. 23:00
책이름: 문근영은 위험해
지은이:임상순
펴낸곳: 은행나무
펴낸때: 2012.01.
회사 3부작 중 2부라고 해서 1부에서 나왔던 회사가 좀 더 구체화되어서 내가 생각한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회사원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보여줄 줄 알았는데, 더 엉뚱하게, 더 B급으로, 더 딴 세상으로, 더 SF로 흘러가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각 주가 200개도 더 넘게 달려서 정신 사납고, 그 각주라는 것도 소설 내용과 관련 있어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덕후가 아닌 나는 작가의 의도한 재미를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 그나마 90년대 PC 통신 이야기는 내가 경험한 것이라서 그나마 재미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런가보다 했다.
아무튼 문근영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었고, 그 괴한들은 왜 문근영을 납치하게 되었는지를 과거로 돌아가서 거슬러 올라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납치한 문근영은 실제 배우 문근영이 아니라지만 모든 설정이 배우 문근영을 상정하고 있어서 장난 같이 느껴져서 거기서부터 B급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소설 뒤에 가면 문근영이 진짜 문근영이 아닌 '문명권 근본환경 영구개조 시스템'의 약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서 작가의 말이 맞기는 하다.
거기다가 각 장을 다시 둘로 나누어서 앞부분은 문근영의 납치와 납치범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뒷 부분은 이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회사로부터 강요를 받는데, 회사 1부인 컨설턴트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나서 회사의 존재가 노출될 수 있으므로 이를 자연스럽게 은폐시키기 위한 2부를 쓰라는 것이다.
납치범들은 문근영이 방송에서 무슨 신호인가를 보내면 그것으로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하고, 이를 막기 위해 문근영을 납치해서 방송 출연을 막고, 지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방송 시간이 되자 문근영은 방송 출연하고, 자신들이 납치한 문근영은 외계인이었고, 결국 신호가 발송되어 문근영이 전세계에 등장하여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이 모든 이야기는 게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게임의 베타 테스트였는데, 비정상적인 셧다운으로 버그가 발생했고, 모두 초기화된다는 것. 그리고 이 납치범들만 살아남아서 몇 십년 동안 자신만의 세계에서 생존하다 죽는다.
작가 부분에서는 이 소설 문근영을 부탁해를 쓰는 과정도 동시에 나온다. 중간에 원고를 갖다 줬는데, 이건 괜찮고, 저건 빼고 하면서 원고 수정 요구를 받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건 실제로 초고를 수정하고, 편집자와 의견 나누는 것을 그대로 소설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렇게 소설가를 등장시켜서 하나의 이야기를 더 하는 구성이 본래의 이야기와 시너지를 이루어서 긴밀하게 상승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두 이야기가 별개로 여겨져서 헛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이야기도 소설가가 직접 하기도 한다. 약간 장난이 좀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판사 사장하고 얘기하는 장면에서도 소설의 결말 부분까지 그냥 다 얘기하고 있다. 문근영이 외계인이라서 지구인들을 다 몰살시킨다는 얘기.... 나는 설마했는데 실제로 결말도 그렇게 나온다.
읽으면서 도대체 뭐 이런 이야기가 있나 싶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에 작가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부분에서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의미란 애초에 자의적인 거죠.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자의를 의미라고 부르고 본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어떤 형식 아닐까요? 그러니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너무 집착하면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인격이라는 것도 수많은 페르소나 중 하나일 뿐이고, 정체성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캐릭터일 뿐인 겁니다.
결국 정해진 의미는 없다는 것이고, 그런 것 찾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 소설은 왜 쓴건가? 정말 회사의 강요로? 회사는 실제로 있다기보다는 작가에게 압박을 주는 어떤 사회적인 요구? 경제적인 어려움? 뭐 이런 것들인가?
가장 웃겼던 장면은 작가가 여자 투자 사기꾼한테 상금을 몽땅 투자했다가 날리고나서 허탈해하고 있는데, 택배가 하나 왔는데 제목이 '후불제 민주주의'다. 이 책은 유시민이 낸 책인데, 이 여자 이름이 민주였고, 민주를 주의하라고 민주주의인 것이다.
감탄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작가의 자료 조사가 엄청나다는 것. 덕후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납치범 중의 하나인 성순이 내뱉는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도 양이 아주 많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그럴듯하게 엮어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부와의 연관성이 좀더 긴밀했으면 했는데, 좀 아쉽고, 3부는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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