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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 뤼미에르 피플: 루저나 잉여들의 모습행간의 접속/문학 2024. 1. 11. 01:33
책이름: 뤼미에르 피플
지은이: 장강명
펴낸곳: 한겨레출판
펴낸때: 2012.12.
장강명의 연작소설이다. 신촌에 있는 뤼미에르 빌딩의 801호부터 810호까지에 거주하는 사람들, 혹은 그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뤼미에르 빌딩은 없고, 르 메이에르 3차 빌딩이 있다. 예전에 작가가 거기에 거주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빌딩이 모델이다.
801호의 줄담배 피우는 어린 임산부와 가출 소년, 802호의 하루아침에 전신불수가 된 일 중독자와 룸살롱 호스티스, 나이트클럽 웨이터 커플, 803호의 청각장애인과 왜소증 애인, 804호의 죽은 작가, 805호의 매로 돈을 벌고 쓰는 채무자와 재벌 2세들, 806호의 인터넷 여론 조작 전문 사설기관 팀-알렙의 멤버들, 807호의 결막염에 걸린 고양이를 갖다 버린 여인과 고양이 마티, 808호 쥐의 형상을 닮은 반인반서의 청소년들, 809호의 알코올의존증을 앓는 엄마의 자살에 동조해 자해하는 어린 소년 상호, 그리고 밤섬당굿의 당주가 될 운명을 지닌 810호의 대학생 현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루저거나 잉여들이다.
8층에 사는 10세대의 구성은 위와 같다. 쉽게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인물들은 아니다. 물론 동물로 변하는 인간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인상적인 부분을 뽑아보면 805호를 이야기할 때의 형식이다. 805호는 두 부류의 인물이 나오는데, 한 부류는 빚이 많아서 매를 맞으면서 빚을 갚을 돈을 버는 채무자의 이야기와 심심풀이로 사람을 때리면서 돈을 쓰는 재벌 2세의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때리는 사람의 이야기와 맞는 사람의 이야기를 구분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앞뒤로 구분해 놓은 것이 아니라 양 옆으로 동시간대에 서술하고 있다. 즉, 다단을 나누어서 왼쪽 단은 채무자, 오른쪽 단은 재벌 2세. 그렇게 따로따로 가다가 같은 공간, 즉 매를 맞고 때리는 공간인 805호에 와서는 같은 사건이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동시에 서술된다. 그리고 오른쪽 단 재벌 2세는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그게 채무자의 차와 부딪친 것이었다. 채무자는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남길 생각이었다. 그럼 805호에서 맞은 사건과 교통사고의 시간이 왼쪽 단과 오른쪽 단이 엇갈려서 혼돈을 준다. 이런 퍼즐을 맞춰 가는 재미도 있다. 내 생각에는 교통사고가 뒤에 일어난 일인 것 같다.
807호는 고양이를 갖다 버린 여자와 버려진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내가 재미있었던 것은 서대문구청에서 일을 미루는 내용이다. 길 고양이에 대한 민원이 많아지자 구청 내부에서는 이 업무를 서로 떠넘긴다. 푸른환경과와 보건위생과가 서로 떠넘기다가 푸른환경과로 어찌어찌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디테일해서 재미있다.
푸른환경과는 옛 청소행정과와 산업환경과, 녹지관리에서 업무를 조금씩 빼 와서 한 데 모은 것이었다. 새로 생긴 조직이 대개 그렇듯이 정체성이 모호했고,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푸른환경과장은 과의 역할을 규정하는 데 별 의지가 없었다.
<중략> 푸른환경과장이 해외 연수를 떠나면서 과장직은 공석이 됐고, 수석 팀장인 푸른총괄팀장이 과장 업무도 맡게 됐다. 부구청장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보건위생과장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양이 관련 민원을 푸른환경과로 넘겼고, 그 외에 푸른환경과로 떠넘길 다른 업무가 없을까 궁리에 들어갔다.업무에 대한 결정이 공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807호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작가의 쓸데없는 디테일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 같다.
808호는 반인반서인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반인반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쥐인 존재들이다. 어머니는 괴물 쥐이다. 형은 쥐가 50%, 사람이 50% 정도이다. 긴 꼬리와 털을 숨기며 다닌다. 나는 쥐가 30%, 사람이 70% 정도이다. 얼굴이 쥐 같이 생겨서 놀림을 많이 받는다. 여동생은 사람이 100%이다. 나와 형이 사람을 데려와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먹고서 조금 더 사람에 가까운 자식을 낳는다. 그리고 여동생은 어머니가 형을 먹고서 나은 자식이다. 여동생에게는 형의 눈이 있다. 이들은 생김새 때문에 인간과 어울릴 수 없고, 가출하여 신촌 유흥가와 놀이터에서 절도나 원조교제를 하면서 지낸다.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810호는 현수라는 대학생이 사는데, 밤섬 당굿을 대물림하는 이야기이다. 밤섬의 여자 당주 새홀리기는 밤섬이 폭파되어도 언젠가 다시 섬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육지로 나오고, 서강대 교목처에서 일하다 예수회 수사를 만나고, 수사는 이 여인에게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후에 당주를 마리아에게 넘기고 둘은 프랑스로 간다. 다음 당주는 마리아인데, 미용실을 한다. 이전 당주와 비교했을 때 신통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서강대교 위에서 섬을 위한 노래를 하는 중에 현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무언가를 느낀다. 현수는 환속한 수사의 강연에 참가하게 되고 거기서 새홀리기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새홀리기는 현수에게 마리아 미용실의 평생이용권을 주고, 이를 받은 현수는 마리아의 미용실에서 마리아를 만난다. 현수를 찾던 마리아는 현수가 자신이 새홀리기에게 주었던 평생이용권을 들고 오자 반가워 하며 머리를 자른다. 현수가 동아리 후배에게 고백하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은 수사가 새홀리기에게 고백하다 거절당하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각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이 일정한 궤도 위에서 예정된 순서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어서 재미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모두 밤섬의 당주라는 공통된 역할로 모이는데, 밤섬의 자연성이 굉장히 서정적으로 그려져서 인상적이었다.
섬이 꾸는 꿈은 한없이 아름답고 동싱에 비인간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아름다움이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오해한다.
섬은 밀려오는 강물과, 자신을 둘러싼 지형과, 자신이 품은 동식물을 재료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했다. 강이 마르지 않는 한 영원히, 쉼 없이 노래하고 싶었다.
섬은 궁극의 악기가 되고자 했다. 음을 최대한 공명시키기 위해 바이올린처럼 가운데가 오목한 형태를 갖추고, 풍부한 음색을 내기 위해 몸을 물풀과 억새로 뒤덮고, 그 선율에 여운을 주기 위해 주변을 민물고기 산란장으로 둘러싸고 싶어 했다. 섬은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멀리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철새들을 가능하면 많이 받아들이고 싶었다.
언제낙는 그 오케스트라에 인간도 필요할 터였다. 인간은 반응이 다채로운 멋진 관객이고, 과거를 기록하는 유일한 동물이니까. 기록과 재생이 가능하다면 강물이 마르고 섬이 사라진 다음에도 음악은 영원할 수 있었다.섬이 아름답다. 섬이 멋있다가 아니라 섬은 이런 꿈을 꾸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섬이 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부드럽게 그리고 있다. 그 자체로 예술이다.
연작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연결은 희미하다. 이들이 서로 만나거서 겹치는 경우도 전체적으로 한 두 번뿐이다. 내가 기대한 연작은 좀 더 긴밀했으면 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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