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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 컨설턴트: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원, 우리들행간의 접속/문학 2024. 1. 15. 16:55
책이름: 컨설턴트
지은이: 임성순
펴낸곳: 은행나무
펴낸때: 2010.04.
회사 3부작이라고 해서 직장인들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살인 계획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직업은 아닐테고, 거대한 구조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즉, 우리는 살인을 안 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어떻게 보면 저 멀리 있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원죄를 갖고 있는 것이지. 내가 쓰는 휴대폰의 원료를 생산하는 국가는 내전이 일어나 있고, 정부군과 반군은 전쟁 물자를 이 원료를 팔아서 마련한다. 내가 휴대폰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정부군과 반군에 돈이 들어가고 거기 국민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너무 먼 이야기라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생각의 발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한 이 부장이 자살을 한다. 퇴직 후 그에게 많은 불운이 한꺼번에 닥쳐서 그런 결정을 한 것 같다.
불운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를 한창의 나이에 백수로 만든 회사였을까? 도망간 부인이었을까, 아니면 전세금 사기를 친 부동산 업자였을까, 함부로 주먹을 휘둘렀던 아들이었을까, 혹은 합의해주지 않았던 피해자일까, 어쩌면 그의 절박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무작정 구치소에 감금했던 경찰 탓일 수도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 불행의 연쇄작용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경찰은 공무를 법대로 행했을 뿐이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의 아들은 갑자기 닥쳐온 가족의 불행에 대한 절망감을 폭력이란 형태로 표출했을 뿐이며, 부인은 지난 18년간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에 실직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최대한 자신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렸을 뿐이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그가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합리적이었다.
결국 모두가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로 합리적인 결정을 했고, 그 결과 이 부장은 자살했다. 누가 봐도 자살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계획한 시나리오라면 어떨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인 판단과 결과를 한 것처럼 보이게 상황을 만들어서 결국에는 한 사람을 살인하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은 모두가 납득한다. 이것이 주인공이 하는 살인 계획 시나리오이다. 이런 자신의 일에 대해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난 회계사나, 변호사, 펀드 매니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죽음조차도 하나의 서비스 상품일 뿐이다. 실종이란 이름으로 바다 속, 시멘트가 가득 찬 드럼통 안에 버려져 있는 것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나는 죽음을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로 만든다. 이게 내가 지닌 전문성이다. 원한다면 날 킬러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난 이 일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세상엔 많은 구조조정들이 있지만 그중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구조조정이 보다 좋고 합리적인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실상은 이렇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뿐이다.주인공이 직접 살인을 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매니저를 통해 회사로부터 의뢰인(죽여야 하는 대상)에 대한 모든 생애 정보를 받아서 자연스럽고 납득할 만한 죽음의 시나리오를 설계하여 보내면 실행은 회사가 한다.
소설의 앞 부분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나오는데, 군 제대 후 PC 통신 판타지 동호회에 올린 글을 보고 한 남자가 찾아와 거액을 주면서 한 콘도에서 추리 소설을 써달라고 했고, 이를 수행한 후에 정식으로 입사하여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쓴 소설대로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 했으나 신문에서 자신의 소설대로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자 크게 놀랐으나 다시 거액의 돈이 입금되자 순순히 살인의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그리고 더 자연스럽고 납득할 만한 죽음을 기획하기 위해 전 세계 법의학 논문을 읽으면서 자료를 쌓아서 적절한 상황에 살인의 기법으로 사용하는 등 나름의 전문성을 축적해간다. 그리고 통계자료까지 활용하여 자신의 살인이 특출난 통계로 눈에 띄지 않게 포장도 한다.
그런 가운데에서 이런 비밀스러운 회사 업무에 균열이 일어나는 데 연애의 문제이다. 주인공을 일반적인 회사원으로 포장하기 위해 진짜 회사에서 가짜로 만든 포장용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여직원이 자신에게 접근하고, 비밀 유지에 부담을 느껴 잠시 연애를 하다 헤어졌고, 어머니의 소개로 가입한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이상적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청혼까지 생각한다. 그러자 이전에 사귀었던 여직원은 자살하고, 주인공은 회사가 이 여직원을 자살한 것처럼 꾸민 것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여자에게 청혼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함을 느낀 주인공은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무엇보다도 명징한 그 무엇인가를 위해 콩고로 간다. 콩고는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고릴라가 있는 곳이고, 그 고릴라의 자유로움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콩고에 고릴라는 없고,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되었다가 회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하고, 그 곳에서 만난 정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나는 처음으로 회사 전체를 보았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회사가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이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회사의 직원으로 존재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이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회사는 정말 거대했으니까. 너무나 거대해서 회사의 머리와 꼬리를 보기 위해서는 지구를 가로질러야 했으니까. 나는 내 고객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죽어도 되는 이유를 찾던 시절을 말이다.. 예외는 없었다. 심지어 펀드에 가입하거나 저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인의 공모자가 될 수 있었다. 어제 먹은 커피믹스가 누군가를 찌를 칼로 변할지도 몰랐다.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회사의 그물은 이미 우리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었다.
지은이가 얘기하고 싶은 두 가지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지는지도 모르면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있다는 것과 나의 일상적인 행위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주인공은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두 번째 여자와는 헤어지고 자신의 또다른 이상형이었던 매니저와 결혼하고 그러면서 열심히 일한다. 오직 회사의 지시에 따라..... 진실을 알고자 하지만 위험해질 것 같아 망설이고 고민만 한다. 결국 체념 아니면 받아들임의 순간에 서고... 그냥 받아들이고 계속 열심히 일한다. 회사를 늘 의심하지만 그냥 일한다. 결말이 마지막에 좀 급박하게 흘러가서 앞의 호흡과 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지만 교훈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독자에게 더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회사에 대해서 하는 여러 생각들을 굉장히 거대한 서사로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다. 살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한다는 점을 걷어내고 주인공이 고민하는 지점들을 보편화하면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생각들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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