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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 미래과거시제: 작품 세계가 좀 더 확장된 느낌행간의 접속/문학 2024. 1. 4. 00:29
책이름: 미래과거시제
지은이: 배명훈
펴낸곳: 북하우스
펴낸때: 2023.03.
배명훈의 단편소설집이다. 이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이 살짝 있는 작품들도 보인다. 무겁지 않게 하고 싶은 말을 느낌이 있게 전달하고 있다.
1. 수요곡선의 수호자
심해 기지 수리팀의 책임자 유희는 심해 기지에서 우연히 인공지능 로봇 마사로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로봇이 고성능 저기능 로봇이다. 능력치는 높은데 기능은 별로 없다는 것. 그 로봇을 갖고 다니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이 로봇 소비로봇이었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모두 생산에 투입되자 생산력이 높아져서 과잉생산이 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소비로봇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소비로봇은 개별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40대 중 이 로봇만 진정한 소비로봇으로서 성공했다. 진정한 소비란 기계적으로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소비를 하고 그 소비를 통해서 만족해야 하고, 내면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이 로봇도 처음에는 기계적인 소비를 했지만 진정한 소비를 하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철학에 대한 이해도 높아져서 유희가 하는 명상을 보고서 돈으로 지불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심해수리팀이 수리 부실로 더 이상 수리를 할 수 없게 되어 철수하게 되어 유희는 떠나지만 마사로는 심해기지 창고 어딘가에 있다는 미술 작품을 찾아서 남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유희는 마사로를 만든 연구소를 찾아 마사로의 이야기를 전하고 소장은 마사로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마사로는 소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는 인간의 경지까지 인공지능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런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생산도 인공지능이 다 하고, 소비도 인공지능이 다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2. 임시 조종사
탑승형 전투 로봇 조종사가 용병으로 차출되어 전쟁을 하고 돌아온 이야기인데, 형식이 아주 독특하다. 판소리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실제 판소리 창으로 창작된 것은 아니고 판소리 형식이다. 아니리, 중모리, 중중모리, 진양조 등 판소리 장단이나 형식 등이 기재되어 있고, 운율도 있으면서 옛날 말투와 한자어로 창작되었다. 세부 묘사도 해학적이고,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도 유쾌하다.
(중모리)
중식이 식량을 점고하고, 없어진 식재료 목록을 살펴
석식은 두고 중식은 줄여 식단 안배 다시 하니
뭇 군사 불같이 화를 내어 대장 앞세워 항의하며
"중식은 절대 양보 불가니 차라리 석식을 줄여주오."
조리장 그 말에 기가 막혀, "엠티이에프(MTEF)가 따로없네.
적군이 기지를 침탈할 적 탄약고 막사는 손 아니 대고
식량 차고 저장 채소에 고기만 탈탈 털어갔나이다.
모닝 쓰리 이브닝 포(morning three evening four), 조삼모사가 웬 전략인고."
김이단이 그 말 듣고 긴 한숨 탄식하며
"전투에는 이겼으되, 전쟁에서는 완패로구나.
야전지휘관 직을 얻어 뭇 군사 목숨을 떠맡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텐 마우스에 노 워드(ten mouthes no word)라.이런 식이다. 중간에 사자성어를 영어로 바꾼 것도 재미있다. 작가 후기에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안 썼을 작품인데, 계속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으니 초고 작성하는 데 8개월 걸렸다고 한다. 장편 초고 작성하는 데 보통 3개월인데말이다. 아무튼 흥미 있는 시도였고, 이 작품을 갖고 실제로 창이 나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 알람이 울리면
아내는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회사에 다닌다. 아내는 가상 세계가 너무 현실적이면 균열이 생겨서 이용자가 가상인 것을 알아채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또 하나의 가상 세계를 돌린다고 얘기한다. 대신 비현실적인 세계로..... 비현실 세계를 경험해야 자신이 겪고 있는 세계가 현실 세계라고 믿게 되니까......
두 번째 스토리 생성자가 SF 플롯을 만드는 건 스토리에 비현실을 도입하기 위해서야. 첫 번째 스토리 생성자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뭐랄까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든. 손에 잡힐 듯한 감각이나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감각 말이야. 인간의 의식은 그런 감각에 약해. 직접 만져 봤으니까 이거야말로 진짜라고 믿어버려. 강력하게. 그게 스토리 생성기 본연의 역할이기는 한데, 문제가 있어. 진짜 현실이 아니거든. 현실이나 일상이라는 이름의 가상 체험일 뿐이니까. 생생하니까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가상이어서 생생한 거야. 그리고 이건 더 심각한 문젠데, 안전한 일상에 장기간 안주해버리면 의식에 이상이 생겨. 동면을 끝내도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의식이 그러기로 선택했다면 말이야. 아무리 고객의 선택이어도 이렇게 되면 사고잖아. 그래서 항상 의식이 살짝 깨어 있게 할 필요가 있어. 비현실을 도입해야 현실이 유지되는 거지. 순수한 현실보다 이쪽이 실제에 가까우니까.
그런데 이런 현실과 비현실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나'에게도 일어난다.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타는 것을 이상하게 느낀다든지, 아침과 반달 모양을 보고 이상하게 느낀다든지, 그러면서 아내가 누군인지 궁금해 한다. 결국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이게 살짝 깨어 있는 의식의 부분이다. 결국 아내가 얘기한 가상 세계 구축에 대한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경험하는 세계가 가상 세계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런 현실과 비현실이 엉켜서 혼란스러워 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첫 번째 스토리와 두 번째 스토리가 만나면서 아내가 사실은 첫 번재 스토리에 있던 자신이었던 것을 알게 되고, 아내의 이별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두 번째 스토리를 꿈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첫 번째 스토리, 그리고 이 첫 번째 스토리가 현실임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비현실적인 두 번째 스토리가 필요한데, 꿈의 형태로 이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꿈은 비현실적이고 이상하니까....
뭔가 좀 혼란스럽고 정리 안 되고 해체주의적인 느낌이 들어서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좀 있어보인다.
4. 마무리
작가 후기를 맨 뒤에 쓰지 않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동기, 발상,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써서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좋았고, 배명훈의 작품이 폭이 더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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