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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6] 능력자: 마지막 순간에 가장 자신다웠던 사나이
    행간의 접속/문학 2021. 7. 4. 22:54

    책이름: 능력자
    지은이: 최민석
    펴낸곳: 민음사

    펴낸때: 2012.10.

     

    늙은 권투 선수의 이야기이다. 젊어서 챔피언까지 했지만 타이틀 방어 실패 후 권투 도장을 차렸지만 반칙만 가르치고 잘 나가는 선수가 없자 폐업하고, 선수 시절의 빠른 발을 자랑했던 것을 발판으로 날렵한 스텝을 밟는 춤선생이 되어 댄스 교실을 열었으나 폐업하고, 카바레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자칭 매미로부터 영감을 받아 초능력자라고 자신을 칭하다 다시 권투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제1부 광자'는 자신을 초능력자로 칭하고 도전하기 전 허무맹랑한 삶을 그리고 있는데,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아버지의 소개로 이 권투선수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 나의 의도는 이 사람의 허위에 가득 차고 현실 감각이 없는 모습을 비판하는 관점으로 자서전을 쓰려는 것이었고, 동시에 사귀는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결혼 자금이 필요하다는 예비 장인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서술하는 문체는 B급 감성이 충만하다. 뭐하나 똑바로 얘기하지 않고, 돌려 얘기하다가 그게 아니라는 투로 뒤통수 치며 장난치는 말투가 한 페이지마다 꼭 있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아니! 무슨 전개가 이리도 얼렁뚱땅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갑자기 나 같은 삼류 작가가 쓰는 책 때문에 중국과 아마존의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그 때문에 오존층에 더욱 큰 구멍이 생기고, 그 때문에 북극곰들이 집을 잃어 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환경주의자다. 아울러, 이 소설의 목적은 환경 보전을 위한 메시지 전파에 있다, 라는 건 물론 헛소리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지금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지구의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지루한 이야기는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 앞에 우리는 처해 있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공평수는 재기전을 치렀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다. 인간에 대한 여러 정의, 호모 에렉투스, 호모 로퀜스, 호모..... 이렇게 나가다가 예감의 인간으로 호모 식스센스라고 하면서 밑에 각주 표시를 달아놓고, 밑에 각주에다가 "찾지 마라. 내가 방금 만들었다"라고 하면서 독자들과 놀고 있다.

     

    그러다가 '제2부 능력자'로 넘어오면 이런 말투는 서서히 잦아들고, 진지한 문체로 진지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1부에서 헛소리와 허위에 찌들었던 공평수도 권투 재기전 훈련에 매진하면서 말꼬리를 늘려서 장난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묵묵히 훈련을 한다. 그리고 시합날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링 위에서 마지막 라운드에 숨을 거둔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포기하지 않았음을 확인받는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자서전을 포기하고 그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2부의 시합 장면은 마치 영화 『주먹이 운다』의 권투 시합 장면과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다. 격렬하게 치고받으면서 땀과 피가 튀기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2부 제일 마지막에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 드는 재기전 장에서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유가 나오는데 바로 뇌종양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자신이 가장 자신다웠던 순간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사나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작가의 말장난 같은 글투가 재미있었고, 뒷부분에는 말장난 뿐 아니라 진지한 말투로 진지한 내용도 무게 있게 전달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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