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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9] 끝나지 않는 노래: 변하지 않는 삶의 무게행간의 접속/문학 2021. 7. 14. 11:07
책이름: 끝나지 않는 노래
지은이: 최진영
펴낸곳: 한겨레출판
펴낸때: 2011.12.
1920년대와 1950년대와 1980년대에 태어난 모녀 3대의 이야기이다. '1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노래'는 1세대인 두자는 경상도 어느 마을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집안의 넷째 딸이다. 그의 엄마는 다섯째만에 아들을 낳고 죽었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데려왔고, 두자는 어려서부터 집안 일을 했고, 배우지도 못했고, 알아서 컸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남동생 장수만 사람 취급했고, 다른 언니들과 두자는 일꾼으로만 여겼다. 그런 장수가 징병에 끌려가서 죽어서 돌아왔다. 할머니는 미쳐서 장수의 뼛가루를 안고 산에서 죽었다. 언니들은 커서 시집을 갔고, 두자도 커서 태철에게 시집을 갔다. 두자는 팔삭둥이 만석을 낳았고, 100일도 안 되어 전쟁이 터졌다. 태철은 군대에 갔고,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왔다. 그리고 배부른 여자도 데리고 왔고, 아들을 낳았다. 두자는 일만 하고, 구박받다가 태철의 손을 깨물고 집을 나왔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방직 공장에서 일을 했고, 이태 후 두자는 쌍둥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장일을 하기가 힘들어지자 아들 귀한 집에 씨받이로 들어가서 먹고는 살았지만 아들은 낳지 못하고, 오히려 본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 즈음 태철은 둘째 부인이 곗돈을 받고 도망가서 쫄딱 망한 상태였고, 태철의 어머니도 낙상해서 죽었다. 결국 태철은 두자를 데려왔고, 다시 같이 살았다.
정말 모질게 살아간 여인의 이야기이다. 인간다운 대접 하나 받지 못하고, 그것이 부당한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간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에서 군데군데 이런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새엄마에게 엄마는 이름이 뭐냐고 묻는 장면과 이런 삶이 좋냐고 묻는 장면이다. 엄마의 이름을 묻는 장면에서는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고, 이런 삶이 좋냐고 묻는 장면에서는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 두 질문에 새엄마는 대답하지 못하면서 두자도 그러한 삶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음을 살짝 비춘다.
'2부 너와 내가 한 소절씩 나눠 부르던'은 두자의 쌍둥이 딸 봉선과 수선의 이야기이다. 봉선과 수선은 커서 집과 공장만 다니면서 일을 했고, 태철의 둘째 부인이 낳은 큰 아들은 대학에 들어갔고, 작은아들도 대학에 가겠다고 하면서, 그 집안은 수선과 봉선이 먹여살렸다. 수선은 얌전히 일을 했지만 봉선은 일을 하고나서는 밖으로 쏘다니면서 남자도 만났다. 결국 봉선은 집을 나가 대구로 가서 공장에서 일을 했고, 수선과만 편지를 하면서 용돈도 부쳐주었고, 주기적으로 남자를 바꿔서 만났다. 79년 초봄 수선은 명호에게 시집을 갔고, 명호는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갔다. 명호가 벌어준 돈으로 서울 외곽에 새로 지은 빌라를 사서 생전 처음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빌라의 부실공사로 살 수 없게 되어 날리게 되었고, 그 즈음에 딸 은하를 낳았다. 갈 데가 없어져서 다시 수선과 은하는 두자와 함께 살게 되었고, 명호는 서울의 지인 집에 얹혀 지냈다. 그리고 두자는 다시 공장에 나갔고, 옛 동료 혜순을 만났다. 시간이 흘렀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명호를 만났을 때 명호는 여자가 있다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봉선은 공장을 다니다가 양품점 점원으로 일했는데, 거래처 업자와 만나 동거를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봉선과 수선의 삶도 두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 개인의 목소리를 그래도 낼 수 있었다는 것만 달랐을 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없었다. 그저 살아지니까 사는 것이었다.
'3부 영영 끝나지 않을 이 노래'는 수선의 딸 은하와 봉선의 아들 동하의 이야기이다. 수선과 봉선은 자식들을 데리고 같이 살면서 일을 했다. 은하는 삶의 신산함을 음악으로 채웠고, 동하는 만화로 채웠다. 동하는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렸고, 맞으면서 지냈다. 은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주기적으로 휴학을 했다. 그리고 셋방 보증금으로 학비를 대고 고시원에 들어가서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고시원 화재로 죽었다. 동하는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봤고, 군대에 갔다.
은하와 동하의 삶은 형태만 다를 뿐 가난 속에서, 자신이 왜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도 없이 허우적대는 삶은 여전하다.
각 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있다. 1부에서는 두자가 쌍둥이를 키우며 공장일을 힘들게 하니까 사장 부인이 씨받이를 제안하는 장면에서 대를 이어 고생하는 삶에 대한 한탄을 한다.
결국은 몸 팔러 가는 거지. 안 그라요? 그쪽이 내를 좋아해서 오라 그런대요? 내가 아들을 한 번이라도 낳아봤으니 그거 믿고 오라는 거 아니요. 우리 엄마부터 그랬니더. 여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하고 애 낳는 기계지. 우리 외할머니는 또 안 그랬겠소?
두자가 방 안의 쌍둥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것들이라고 또 안 그럴 거란 보장 있소? 아들 낳으면 전재 나가 죽고, 딸 낳으면 굶어 죽고, 애 낳다 죽고, 애 키우다 죽고, 내 자식도 내 동생도 내 엄마도........2부에서는 봉선이 봉선이 결국 두자네 집으로 돌아와서 수선이 낳은 아이를 보면서 하는 말이 있다.
야가 우리 나이가 되면.
봉선이 아기으이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좀 다를까.
뭐가.
그냥, 사는 게.그러나 여기에 대한 대답이 3부에서 동하의 입을 통해 나온다. 동하가 친구들한테 맞은 후 놀이터에서 울면서 학교 그만 둔다고 하자 은하가 말리자 동하가 말한다.
고시 보겠다고.
그게 그렇게 쉬워?
지금보단 낫겠지.
......그래도.
엄마들도 학교 안 다녔잖아.
......엄마랑 너랑 같냐.
안 다녀도 잘 살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고.
다를 거 뭐 있어.
.......
.......더 좆같아졌지.
.......
.......씨발, 세상 좋아지긴 개뿔.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삶의 괴로움이 묻어나는 안타까운 장면들이었다.
에필로그는 지난 삶의 장면들 중에서 비워둔 장면을 다시 보여준다. 봉선과 수선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지난 삶과 오늘의 삶을 털어내는 장면이 있고, 은하가 수선과의 여러 기억들 속에서 수선이 혜순을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동하가 군에서 휴가를 나와 엄마들 앞에서 마술을 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두자가 불꽃놀이를 보며 쌍둥이 아빠가 마을축제를 어느 밤에 자신을 찾아왔던 날의 장면이 나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에필로그의 장면들은 평범한 행복의 장면들이지만 본문에서 행복과 웃음은 찾아볼 수 없는, 살기 바빴던, 터널과 같은 날들이었기 때문에 둘은 비교가 되었고 그만큼 슬플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 층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위에 쓴 것처럼 두자부터 봉선과 수선을 이어 은하와 동하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하나의 축이고, 은하의 고시원에 불이 났던, 12월 19일 오전 2시 17분부터 2시 55분까지의 마지막 삶을 1분 간격으로 담은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 3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읽으면서 두 개의 이야기가 어디서 만나게 될까 연결고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름 긴장하면서 읽을 수 있었고, 은하의 이야기가 여러 회상 속에서 좀더 자세히 다뤄지기를 바랐지만 사건 자체가 불이 난 상황이라서 혼란스러움과 당황스러움, 위기감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법을 다른 소설에서 쓴다면 두 층위의 이야기가 다루는 시간의 길이는 달라도 그 깊이나 비중은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층위가 만나고 소설이 끝나니까 프롤로그를 다시 보게 된다. 프롤로그는 은하가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들을 조문하고나서 매년 유서를 쓰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타버리는 죽음은 상상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을 밝힌 것이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 내용이 보였다. 처음 읽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다 읽고나니까 끝까지 찾지 못한 퍼즐이 있는데, 프롤로그에 나왔던 교통사고 당한 친구와 버스운전기사의 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쌍둥이 아빠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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