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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2] 놀러 가자고요: 범골의 부모님을 위하여
    행간의 접속/문학 2021. 2. 3. 15:31

    책이름: 놀러 가자고요

    지은이: 김종광

    펴낸곳: 작가정신

    펴낸때: 2018.06.

     

    김종광의 단편소설집이다. 작품들이 '범골'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범골 연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도 중복되기도 해서 마을과 인물의 이야기를 짜맞추는 재미가 있다.

     

    「《범골사》 해설」은 '범골'이라는 마을의 역사서를 출간하기로 하면서 그 과정과 이를 위한 여러 사료들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을 소설로 쓴 것이다. 여기에도 김사또의 일지도 나오면서 다른 작품들과 연계가 된다.

     

    「범골 달인 열전」은 제목 그대로 범골의 여러 달인들을 소개한 작품으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범골사》라는 가상의 역사서에 한 부분으로 들어갈 법한 작품이다. 김천소, 마늘댁 등은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

     

    「놀러 가자고요」는 노인회에서 모아놓은 회비로 놀러가자고 의견을 모은 후에 실제 참가자를 조사하는 이야기이다. 이게 무슨 소설이 될까 싶은데, 노인회장인 김사또의 아내인 오지랖이 노인회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가 여부를 묻는다. 그런데, 참가 여부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마을 얘기,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첫사랑 얘기 등을 두서 없이 나누는 그야말로 수다스러운 통화 내용을 통해서 마을이 이렇게 굴러 가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재미가 있다. 

     

    「김사또」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 안에 2개의 에피소드가 있는 구성이다. 아내인 오지랖이 또 나오고, 아들인 판돈도 나온다. 판돈은 이후에 다른 작품에서도 나온다. 에피소드 중 '갈비찜'은 김사또가 고생고생해서 구해온 돼지갈비를 오지랖이 태워먹어서 며느리와 짜고 다른 고기로 대신 갈비를 한 이야기인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작당해서 시아버지를 속이는 내용이 재미있다.

     

    「산후조리」는 소가 송아지를 낳고 산후조리하는 이야기이다. 어미 소는 출산 전부터 괄약근에 힘이 없어서 항문이 뒤집어져 나와서 고생을 하는데, 수의사도 출산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힘들게 출산을 하고 항문도 꿰매었지만 송아지와 어미는 먹지도 않고 굶기만 하다가 차츰 차츰 젖도 먹고, 사료를 먹으면서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을 지켜본 수의사와 남편(김사또로 추정된다. 소를 키우고 있으니까, 아내도 무릎이 아픈 것으로 보아 오지랖으로 추정된다)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우와! 솔직히 저는 얘들이 못 살거라고 봤슈. 워칙히 살았지? 살라는 의지들이 강했구만. 그려, 참 보기 좋다. 조금만 거시기하면 못 살겠다고 살기 싫다고 확 가버리는 인간들보다 너희들이 훨씬 낫다. 안 그러냐? 누구는 뭐 희망이 넘쳐서 사냐? 열심히 사는 게 사람의 운명이니께 사는 거지. 사는 게 희망 아니냐구."
    "그놈의 희망 타령 듣기 싫어. 요새는 희망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되나? 테레비고 사람이고 입 달린 것들은 다 희망, 희망이랴. 마을회관 늙은 영감탱이들도 희망의 새해 어쩌구 하는데, 내 참 기가 막혀서. 없는 것들 못사는 것들 날벼락 맞은 것들 그런 불쌍하고 한심한 것들 약 올리려고, 잘사는 것들 정치하는 것들 테레비에서 나불대는 것들이 아무 때나 갖다 붙여 쓰는 말이 그 좆같은 희망 아니냐구?"

    정말 어디나 희망을 얘기하는데, 무조건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희망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근거 없이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나도 좀 불편했는데, 그런 심정을 딱 포착해서 말한 것 같다.

     

    「만병통치 욕조기」는 어머니에게 먼 친척 아주머니의 소개로 욕조기를 팔려는 방문판매업자와 아내와의 신경전을 그린 작품이다. 판매업자는 어머니를 위한 것이니까 안 사면 불효하는 것이라는 투로 압박하고, 아내는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의심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안 사겠다고 하는데, 그 둘 사이의 심리 싸움이 아주 볼 만하다. 팔랑귀인 나(판돈)은 아내가 없었으면 벌써 샀을테지만 아내를 응원하면서도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 심리도 잘 나타나있다. 읽으면서 아들의 입장에서 이거 절대로 사면 안 된다고 아내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부모님과 자신을 모델로 삼아서 삶에 대해서 무겁지 않게 드러내는 것이 이 작품집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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