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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에 대한 감수성행간의 접속/인문 2020. 6. 9. 22:12
책이름: 언어의 줄다리기
곁이름: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지은이: 신지영
펴낸곳: 21세기북스
펴낸때: 2018. 11.
부제에 나와있는 대로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 중에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사실은 의도를 가진 말들이었고, 그 의도를 모른 채 사용할 경우 우리의 생각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 쪽으로 편향되게 흐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1. 대통령 각하
요즘은 대통령을 부를 때,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지만 군사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 각하'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각하'의 원래 뜻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각하'는 조선시대 귀족을 부르는 가장 낮은 말이었다. 가장 높은 말은 황제를 부르는 '폐하', 왕을 부르는 '전하', 세자를 부르는 '저하', 왕족 중 서열이 높거나 최고위 관료인 정승을 부르는 '합하', 마지막으로 귀족의 가장 낮은 위계를 가진 '각하'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신분제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는 헌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이 말을 쓰지 않지만 이처럼 말 속에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2. 대통령
그러면서 '대통령'이라는 말도 민주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대통령'은 크게 다스리고 거느린다는 뜻인데, 이는 주권자인 국민보다 높은 사람이 국민을 다스리고 거느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맞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었다. 국가의장, 주석, 국장, 대표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딱 들어맞는 말은 없어보인다.
그러면서 '장'이라는 말의 문제도 지적한다. 어느 조직이나 가장 높은 자리에 '장'자를 붙이는데, 어른을 의미하는 장이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을 나타내는 단어에 사용됨으로써 연령 차별 의식이 고착화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나이가 많다고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나이나 성별, 위계 등이 드러나지 않는, 민주적인 표현으로 '장'을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얘기한다.
3. 장애인
장애인의 반대말은? 일반인? 정상인? 비장애인? 일반인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 되고, 정상인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비정상인이 된다. 그나마 비장애인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덜 품고 있는데, 지은이는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과연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꼭 써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최근의 입장이다. 한 사람을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다양한 속성 중 한 가지에 불과한 '장애를 가진'이라는 속성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런 그 사람의 다양한 속성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풀어서 표현하자는 생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을 부르는 특별한 말이 없다. 그건 그 사람의 여러 속성 중 하나이므로 굳이 그런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라는 말도 쓸 필요가 없다는 논리이다. 결국 장애인이라는 말 속에서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들어가서 우리의 생각의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장애우
비슷한 말로 '장애우'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말도 쓰임이 줄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거리감을 좁히고 친근하게 여기자는 의도에서 이 말을 사용했는데, 문제는 장애인 자신은 이 말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부를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친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친구라고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결국 이 말 속에는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네가 동의하든 말든 나는 상관없어. 네가 나를 친구로 수락하든 말든 그건 물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문제는 장애인의 입장이 아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말 하나 만들어서 쓰기가 쉽지 않다.
5. 그밖에
그밖에 미망인과 유가족, 여교사와 여성교사, 청년과 젊은이 등 이데올로기의 영향권에 있는 다른 말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싣고 있다. 읽으면서 언어가 참 우리의 생각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방향성을 갖고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하면 언어가 가진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까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꼇다. 그러려면 언어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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