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관련 책을 훑어보다 보면 인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책이 은근히 많이 있었다. 과학자가 인문학자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있었고, 인문학자가 과학을 풀어쓴 책도 있었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인데,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내용을 다듬어서 책으로 엮었기 때문이다. 즉,신문에 실었다는 것은 대중을 고려해서 좀 쉽게 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열 명의 인문학자가 과학자들을 만나서 대담을 하고, 그 내용을 자기의 인문학 분야와 비교해서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다. 그리고, 한겨레 신문 기자가 과학에 대한 내용을 보충설명해주는 식으로 구성하였다. 처음 보는 내용도 있었고, 앞에 읽었던 과학 관련 책에서 읽은 내용도 있었다.
뇌과학자 신희섭 박사와의 대담에서 흥미로운 화두를 발견했다. 간이나 심장을 이식받으면 동일한 사람이지만, 뇌를 이식받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가설이 있다고 한다. 아직 뇌를 이식하는 능력은 없지만 가능하다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동양철학과 반도체 과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원리가 동일할 수도 있고,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 가운데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글도 있다. 둘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개념들을 단순화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실은 그렇게 쉽게 단순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에서 둘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그 근원을 찾아 물질을 쪼개고 쪼개는 학문이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쿼크와 랩톤이다. 화학에서 원자를 배웠다. 그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결합해서 이루어진다. 이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 세 개가 결합해서 구성되어 있고, 랩톤은 홀로 존재한다. 또 쿼크들이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입자로 강력이 있고, 쿼크의 종류를 변화시키는 입자 약력이 있고, 전자들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전자기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 존재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도 있을 것이라고 이론적으로면 존재하는 입자도 있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초기 우주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실험으로 증명했단다.
로봇공학에서는 인간이 감정과 의식을 갖는 기계라고 한다. 다만 그 기계가 어떻게 특별히 작동하기에 감정과 의식을 갖는지에 관한 수학적인 형식체계를 알아내기 어려워서 그렇지 그것만 알아낸다면 인간과 수준이 비슷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몸 철학에서는 인간을 몸으로 본다. 몸인 인간이 사유하는 이유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적응할 수 없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상황에 적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사유는 몸이 요청하여 몸 스스로 자아내는 활동이다. 사유가 있기 전에 행동이 있고, 정신은 몸의 한 기능이다. 인간이 기계라는 생각, 인간이 몸이라는 생각, 얼핏 보면 다른 것 같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찾아보는 생각의 하나라고 본다.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다.
생명공학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세포를 화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라고 정의한다. 왜냐하면 생명 현상의 가장 근원적인 지점인 유전 매커니즘이, 아데닌, 티민, 시토신, 구아닌 같은 화합물들이 기계적인 배열을 달리함에 따라 유전형질이 결정되고 변화되는 기계적 과정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은 그 심연에서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변화된다는 것이다.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 밖에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나에게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정말 관점을 다양하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에 대해 혼동이 되면서 과학이 좀 무섭다는 생각도 했다. 따라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 과학적 연구 철학이 뒷받침되어야 새로운 생각들이 올바른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