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인간을 더 잘 알게 되고, 이제는 여자와 남자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어 쓴 책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도 그러니까 인간도 그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전에 썼던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인간과 동물』과 겹치는 부분이 좀 있다. 그러나 그 맥락은 좀 다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서는 시사적인 목적으로, 『인간과 동물』에서는 동물행동학 강의를 위한 목적으로 그 내용들이 나왔다면, 이 책에서는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내용 몇 가지를 뽑아보았다.
"나는 평생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태교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뱃속에 들어 있는 아기에게 부모들은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것 이외에 그리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부모의 온갖 욕심보다는 오로지 그 아이의 건강과 행복만을 기원한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우리는 차츰 아이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관찰한 동물 부모들은 대체로 우리보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적어 보인다. 자식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여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울 뿐이다. 그것이 바로 내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세에 퍼뜨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궁태교에서 평생태교로"라는 부분인데, 정말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들을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잘났다고 생각할까?
"유전자의 눈높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무의미하고 허무할지 모르지만, 그 허무를 넘어서면 겸허함이 나를 다스리고, 일단 거듭나고 난 다음부터는 성의 문제 즉 남녀관계 역시 내게는 너무도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는 전혀 자연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모름지기 번식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생물이라면 그 번식의 주체인 암컷이 삶의 중심이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에필로그에 있는 이 부분이 사실상의 주제이다. "번식을 목적으로 한다면"이라는 조건에 반기를 들 수도 있겠지만, 생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생물학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학문적인 영역에서 찾는다면 생물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권위주의에 입각한 수직사회가 물러가고 민주적인 수평사회가 열리는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서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요새 이런 생각, 권위주의 중심의 수직사회에서 민주적인 수평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우리가 할 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위로는 교장, 교감, 부장 및 여러 선배 선생님들은 권위적인 수직사회를 이루는 원립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수평적인 위치로 접하려고 하는데, 이 둘이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 마음 안에서도이 둘은 충돌하여일관성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특히 올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생각이라서 더욱 그럴 것 같다.
각 장의 맨 앞에는 김승희 시인이 엮은 『남자들은 모른다』라는 시집에서 발췌한 시들이 들어가 있다. 남자들은 모른다는데, 남자인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에는 이 시집을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