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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6] 대한민국 학교대사전: 학교의 속살
    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13. 6. 19. 22:32



    대한민국 학교 대사전

    저자
    편집부 지음
    출판사
    이레 | 2005-03-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고교 시절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다양한 현상들에 대...
    가격비교


    고등학생들이 학교와 학생들의 일상에 대해서 학생들의 시각으로 개념을 정립한 사전이다. 고등학생들의 재기발랄함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인다. 처음엔 낙서에서 시작했다가 그것이 쌓여서 노트가 되고, 이것을 학급에서 돌려보고, 재미있다고 하고 첨삭하여 인터넷에 올렸더니 더 많은 호응을 받아 책으로 내게 되었단다.


    이들의 개념 정의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뽑아보았다.


    교권신수설: 교실을 지배하는 교사의 권리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는 무서운 주장. 교칙과 함께 선생들의 강력한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이론이다. 절대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 이론을 통해 교실이 왜 신성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교문1: 교내의 불순분자들을 걸러내는 공간. 보통 학생부에서 파견된 선생과 그 부하들인 선도부원들이 문을 지킨다. 학교마다 학생부장이라는 최고의 수문장이 한 명씩 존재한다.


    교문2: 공짜로 각종 물건들을 얻기 좋은 공간. 각양각색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몰려와 공책이라든가 휴지, 포스트잇, 시디 등 풍부한 물자들을 제공한다. 주로 학원이나 책 광고인 경우가 많다.


    왕권신수설을 패러디한 교권신수설에서 교실이 왜 신성한가에 대한 이유를 교사의 권위와 연결시킨 것은 정말 기발하다. 교문에 대한 생각 2번째도 기발하다. 교문에서 학생은 여러 홍보업체로부터 각종 물건을 받으니 왕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사한테는 안 준다.


    교칙: 교사들의 모든 비합리적인 언행을 정당화해주는 수단. 교칙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자의성: 교칙과 윤리, 도덕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으며 교칙은 우연히 그렇게 결정된 것일 뿐이다.

    ② 사회성: 자의성에 의해 결정된 교칙은 어떤 학생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③ 역사성: 교칙은 유구한 세월을 거쳐 전해진 것으로 거의 변하지 않는다.

    ④ 분절성: 교칙은 연속적인 사물, 현상을 언어로 풀어놓아 잔꾀를 부린다. 그 예로, 앞머리 3cm라 하면 어디부터가 앞머리의 경계인지 분명치 않으므로 다 잘리고 만다.

    ⑤ 추상성: 교칙은 있지도 않은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한 학생의 이데아를 만들어 놓고 모두를 여기에 끼워 맞추려 한다.


    교칙의 특성을 언어의 특성에 맞추어서 재해석하였다. 학생들이 보기에 교칙의 불합리성을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해놓았다.


    소화기: 교실 혹은 볻고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이다. 왕따적 기질이 있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문 뒤나 복도 한 구석에 서 있다. 그러나 내심 어울리고픈 마음에 튀도록 빨간 옷을 입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몸짓에 지난지' 않는다. 그래서 소화기는 오늘도 학교에 불이 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해


    이 책에 실린 개념 중에서 가장 시적인 표현이다. 상황과 정서와 분위기. 그리고 태도가 들어가 있어서 잘 다듬으면 시로도 지을 수 있다. 마지막에 꽃이 되기 위해 불이 나기를 기도한다는 표현은 강한 충격과 함께 소화기의 외로움이 잘 묻어나있다.


    열역학 제2법칙: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현상. 교실 내의 모든 현상에 적용된다. [보기] 아침에는 반듯했던 책상 배치가 7교시가 가까워질수록 흩어진다. 조용하던 자습 시간이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교실 바닥에 쓰레기가 늘어난다.


    열역학 제3법칙: 이 법칙은 과학자 네른스트가 밝혀내어 노벨상을 탔다. 학생들이 조용한 상태일수록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라는 것이 골자이다.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조용한 상태는 엔트로피가 0인 상태이므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이론화된 것이다.


    과학적인 지식을 교실 현상에 적용시킨 것인데, 재미있게 들리지만 결코 틀린 얘기가 아닌 것 같다. 교실의 상황도 과학적 지식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죄송합니다: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고 선생의 입을 막을 때 사용하는 말. 처음부터 사용하면 그 효과가 엄청나지만 학생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선생의 심기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 한 다음에 사용한다. 이래서는 효과가 없다. 선생을 맞상대할 때는 이 말을 충분히 숙지한 뒤에 최적의 말투를 찾아내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다.


    빙고! 교사가 학생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다른 것 다 필요없다. 이 한마디면 된다. 그러나 학생들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해 다른 말이 많아지고 서로 불편해진다.


    그밖에 개작산문들도 뛰어나다. 호질을 개작한 '호랑이의 꾸짖음'은 교육부장관을 꾸짖으면서 우리의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웬만한 논설문보다도 설득력 있고, 더 뛰어나다. 성적표 한 장은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을 개작한 것인데 목표의식 없이 좋은 성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은전 한 닢에서는 순수함으로 표현되었던 것이 여기서는 맹목성으로 바뀐다.


    2005년도에 그린 교실의 상황이 지금 2013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어쩌면 더 삭막해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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