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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61]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교사들도 좀 불온해보자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13. 7. 20. 15:27
교육공동체 벗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연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 같다. 주제는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인데, '불온한'의 의미는 현재의 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그리고 대안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교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연수는 크게 이론을 다루는 기초편,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천편, 해직이나 사직까지도 고려할 정도의 활동을 요구하는 심화편이 있다.
1. 기초편
홍세화의 교육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체제 순응적인 인간만을 만들고, 공공의 가치를 배우지도 않고, 지배계급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서 계급 상승만을 꿈꾸고, 노동의 의미는 아예 모르는 교육의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히 아이들이 힘들어한다, 입시가 문제다 식의 현상적인 이야기보다는 그렇게 된 현실의 바탕에 깔린 철학의 문제를 폭넓게 짚어주고 있다.
이형빈은 "무능해도 괜찮아"라는 강연 주제를 갖고,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한다. 국영수만을 능력으로 치는 것은 문제이고, 또한 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영향과 도움에 의한 것이므로 공익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능력공개념도 함께 이야기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롤스는 한 인간의 능력이 결코 개인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요. 한 사람의 능력이란 '우연에 의한 것'이거나 '공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기에 그 개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아가 마이클 센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주장까지 해요. 하버드 대학에 합격한 학생은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열아홉 살이라는 순간에, 하버드 대학이 요구하는 특성을 가진 학생에 불과하다." 즉 "우연한 순간에 우연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일 따름이라는 거예요. 롤스와 센델의 정의론에 의하면 이들은 대학 합격이라는 영광을 자랑할 이유도, 그것을 사유화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할 자격도 없죠.
설사 그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어떤 능력을 계발했다 하더라도, 그 능력은 수많은 선인들, 이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 사람이 성장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의 것이지 그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능력을 개인이 사유화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능력을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합니다.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환원해야 해요. 이것이 롤스와 센델이 주장하는 정의론의 핵심입니다.
이런 생각, 정말 참신하다. 아울러 교사들에게 자발적인 책임감이 아닌 타율적인 책무성을 강요하는 교육 현실도 비판한다.
정용주는 신규 교사가 교사가 아닌 공무원 같은 경력교사가 되는지를 짚어봄으로써 교육과 멀어지는 교직 사회를 비판한다. 그 과정에는 6개의 아비투스(집단적 관습)가 있는데, 그것은 집단 속에서 비슷비슷한 성향을 가져야지 안심을 하는 소수자에 대한 두려움, 학벌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평하다는 학벌의식의 내면화, 학교에서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공론장의 부재, 능률과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형식주의, 절차주의, 문서주의 등 부정적인 현상을 드러내는 관료주의, 다면평가, 성과급, 교원능력개발평가, 근무평정, 학교장 경영평가, 학교평가 등 다양한 평가체계 속에서 진행되는 자기감시, 마지막으로 신규교사에게 힘든 일을 시키면서 젊을 때는 그런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강요하여 저항의 싹을 자르는 저항하지 않는 방법의 내면화 등이 있다. 정말 교직 사회의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교사들은 정말 이렇게 관습화되어 체제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답하다.
2. 실전편
안정선은 동료교사들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함께 교무실 문화, 학교 문화를 바꾸는 노력을 얘기한다.
조영선은 '꼰대탈출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과 소통했던 경험, 학교와 부딪쳤던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저는 꼰대가 돼 간다는 의미가 이 '센 척'을 하는 데 제도적인 외피와 명분, 지위나 권위를 대는 거라고 생각해요. 꼰대가 된다는 건 "내가 교감인대", "내가 교사로서" 같은 수식어가 붙는 거죠. 지위를 드러내는 순간 그 권위가 권위주의로 빠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권위 있는 말은 지위 없이도 통해요. 말 자체에 권위가 있으면 지위를 드러낼 필요도 없죠. 말이 안 먹힌다 싶을 때 저도 "너 선생님 말을 이렇게 안 들을 수 있어?"라고 말하게 되거든요. 그 권위를 유지시키는 게 나의 지위인지 아니면 나의 능력인지, 나의 소통방식인지 내용인지, 이런 것들을 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지위에 머물러 있을 때 사람들은 꼰대같다는 느낌을 받는 거고요.
꼰대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꼰대같이 행동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꼰대라고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지위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인데, 생각하면 창피하다. 아울러 참교육도 거절당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인용해본다.
처음부터 꼴통인 교장에게는 기대가 없어요. 그런데 민주적으로 학교운영을 할 것 같다가 교사들이 협조적이지 않다 싶으면 독재적으로 변해 버리는 교장에게는 큰 배신감을 느끼잖아요.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참교육을 할 것 같은 교사한테 애들은 마음을 열어요. 그런데 한계에 부딪혀서 교사가 그 노력을 거둘 때, 어렵게 마음을 열었던 애들은 훨씬 더 큰 상처를 받거든요. "지가 참교사래~" 이런 배신감이 있어요. 시스템으로서의 참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미덕이 된 참교육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죠. 학생들은 늘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좋은 인격을 가진 선생님이 상태가 좋을 때만 인간 대접을 받게 되니 참교육에 대해서도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구나. '참교육'이라고 하면 다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절당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겠구나.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기관에 숨어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죠. 학교가 지식을 독점하는 권위 있는 공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독점되지도, 독점될 수도, 독점돼서도 안 되는 지식을 독점하는 척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 학교예요. 지금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고려해 봐도 자신을 학교의 일부처럼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생각해요.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학생들이 "선생님도 거기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던져올 때 "아니"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이후에 학교가 왜 그러는지, 학교에서 걱정하는 부분은 무언지 이야기해야 통하는 거지. 학교의 되지도 않는 논리를 대변하려고 할 때 오히려 교사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학교의 되지도 않는 논리를 대변할 때~" 정말 이런 적이 숱한데 그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나의 비겁함을 권위로 감추려고 했던 것이 부끄럽다.
진웅용은 '발랄하게 싸우는 법'이라는 부제로 해직과 복직의 과정에서 학교장과 이사장과 싸운 이야기를 한다. 비장하지 않고 즐겁게 웃으면사 싸우는 그 여유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3. 심화편
이상대는 50대 중반의 평교사로 승진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교직에 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원로교사가 되면 어울릴 사람도 없고, 주변 교사나 아이들로부터 대접도 못 받으니 승진을 생각하라는 선배교사들에게 "참고하겠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얘기하지만 마땅한 롤모델이 없으니 당당한 원로평교사가 가능하기나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글쓰기로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능숙해지지 않으면서, 영혼을 팔지 않으면서 교직 생활을 하는 선배교사를 보면 따르고 싶고, 나의 결심이 가능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계삼은 사직한 이후에 그 이유와 구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서 전교조에 대한 비판도 이야기한다.
차라리 전교조가 없는 게 훨씬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도발적으로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냉정한 사실입니다. 지금 같은 교육 현실에 전교조가 없다면 좌충우돌하더라도 이런저런 돌발적인 저항들이 많이 생겨날 겁니다. 학교폭력도 그렇고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도 그렇고 일제고사로 인해 생겨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상황에 전교조는 교사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좌절의 기제가 되고 있어요. '전교조도 손 못 대는 일을 나 따위가 감히 어떻게 하겠냐'라는 거죠. 차라리 전교조가 없다면 이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의 육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거예요. 어쩌면 전교조는 그걸 봉쇄하고 있는 집단인지도 몰라요.
전교조가 그만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전교조도 합법화되면서 대중조직이 되었기 때문에 힘있게 나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대중화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복선은 해직 이후 하자센터, 우리교육 편집장, 학원 강사 등 여러 일을 하면서 해직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많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성미산학교의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직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한 사람들은 안정을 빼면 교직에 없을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직이나 사직은 어쩌면 벼랑에서 떨어지는 것, 혹은 낙오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견디기 힘든 교육 현실을 억지로 견딜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물론 견딜만 하니까 견디겠지만... 혹시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면....
4. 읽고나서
이런 연수가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매년 이런 과정이 있고, 책으로도 나온다니까 유심히 보고 싶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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