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읽기와 삶읽기"이다. 연세대 사회학과의 조한혜정 교수와 2006년 가을학기 교양 과목 "지구촌 시대 문화인류학" 수강생들이 수업을 정리한 책이다. . 글쓴이가 안식년으로 쉬다가 다시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전과 달라졌다. 신자유주의 시대, 경쟁에서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시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을 하면서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업은 강의보다는 학생 발표와 토론, 온라인에서 글쓰기 등으로 진행이 되었고, 이 책은 교수의 수업 일지, 학생이 온라인에서 쓴 내용 등을 편집하여 담았다.
한 학생은 이 수업에 대해서 조금씩 마음을 담아 재미있는 배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을 통해 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수업일 수 있는가, 등록금도 비싼데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할 판국에 웬 잡담을 듣고 있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둘씩 다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가 모르던 세상,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형태의 삶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것은 지식의 습득과는 다른 형태의 배움이었다. 아직은 '이것이 어떤 앎이구나.'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분명 나의 뇌를 강하게 자극하는 배움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리고 이 수업에 점점 더 매료되어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배움보다 재미있는 배움이자 성숙해가는 과정임을 느낀다.
수업의 내용 중에는 저출산 정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그 중 한 학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상적인 상황을 먼저 그려본다. 그리고, 그 길로 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현재를 생각하지 않고 이상만을 그려 본다면 문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패배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사회적으로 고립하지 않고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육아에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고, 아이가 자랐을 때 재취업의 기회도 보장되면 굳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지위가 없어져야 하고, 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수입을 결정하지 않아야 하고, 내 아이만 잘나길 바라는 부모들 간의 경쟁심도 없어져야 한다. 나는 이것이 내가, 한국이, 지구촌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나와 한국과 지구촌의 삶으로 연결할까?'의 문제는 쪽글을 쓰는 동안뿐 아니라 평생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이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생각을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내팽개친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이런 이상적인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이상과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멋지다. 사회적 지위가 없는 세상...
출산정책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다른 학생은 국가가 개인의 몸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고 육아는 하고 싶다. 결혼이라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관계가 부담스럽지만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튼튼한 끈은 가지고 싶다. 국가의 출산 장려책이 짜증 나는 것은 내가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내 몸뚱아리 하나와 내가 맺는 관계들마저 국가가 개입한다는 생각에서다. 결혼을 할 것인지, 아이를 가질 것인지는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정들이며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싶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반인 가족이라는 것의 가치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같은 관점에서, 나에게 낭만적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연애라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나에게 요구하지 말아 주었으면, 내가 그러한 행위들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서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출산정책 얘기하다보니까 연애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다. 출산과 연애, 가족 결국은 같이 얘기해야 하는 문제이니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맞는 것 같다.
마지막 수업의 일지에는 조한 교수는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공동체적 소통이 쉽지 않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영화다. 내가 수업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수업에서는 이 영화를 초반에 보여 주면서 토론하는 법에 대해 감을 잡도록 하는데 이번 학기에는 마지막에 보게 되었다. 우리들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말하고 적당히 생각하며 감정적인 의견을 이성적인 척 가장해서 둘러대고, 그래서 잘못된 결론을 내리면서 살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영화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집요한 탐정처럼 얼마나 세심하고 정확하게 관찰하고 유추해야 하는지, 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지를 절감하게 해 주는 영화다.
우리의 일상 속 토론이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치밀하지 못하고, 세심하지 못하고, 정확하지 못한지 알 수 있다. 상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중간의 논리를 생략하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듣지는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토론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이 수업에서 추구했던 배움의 공동체 학습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 1단계로 배우고 싶은 동기와 의지를 위한 요소로 다섯 가지를 얘기한다. 첫째 원탁형 교실 배치, 둘째 탈권위주의적 호칭과 관계, 셋째 유연한 커리큘럼과 자기 주도적 학습, 넷째 온라인 공간의 적극적 활용, 다섯째 수업일지를 통한 소통 등이다. 이런 것들은 중고등학교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넷째와 다섯째는 현재부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유의사항도 얘기한다.
1. 선발과 탈락의 배제: 누구를 지정하지 않는다.
2. 자발성을 유도하는 장치들: 강제적이되 무리하지 않는 장치.
3. 발언을 강요하지 않기: 듣는 능력도 있다.
4. 정답을 맞추는 개인이 아닌 함께 토론하는 공동체 만들기: 중요한 것을 답을 찾는 논의의 흐름, 남의 발제를 듣고 그 말을 이어가는 것.
5. 기대감과 기운의 조절
6. 공유와 소통을 촉진하는 온라인 사이트 기획
7. 적절한 수업 규모
8.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시너지: 앞사람 뒤통수만 보는 근대적 교실은 그만. 교실은 서로 마주 보거나 둘러앉는 세팅으로 수시로 토론이 가능한 곳이어야 함
9. 온라인 사이트와 시험의 기능: 중간, 기말고사는 집중해서 사유하는 글쓰기. 시험은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배움을 위한 도구이다.
이 책은 대학교의 수업을 얘기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수업에도 시사점이 있다. 온라인을 이용한 소통이나 수업일지를 씀으로써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정말 대학 강의다운 강의였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수업을 들어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면서 교사로서 내가 이런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