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게는 육아 문제, 넓게는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목을 보건대, 육아와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을 고민한 책이다. 제목을 보니 이 육아와 교육이 처음에는 가족이 담당했다가, 그 다음에는 학교가 담당했고, 이제는 마을에서 해야 한다는 얘기 같다. 그런데 마을 공동체는 사라진지 오래인데 어떻게? 모두 다 귀농을 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농경 사회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 그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마을 공동체적 요소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내용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 보았다.
홍성태(2005)는 토건국가를 "개발 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로서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토건국가'는 일본의 근대화를 가리키는 단어로 시작되었는데, 1970년대 초, 일본의 고도 성장이 끝나고 안정 성장 사회로 접어든 시점에서 당시의 다나카 수상은 계속 대규모 토건 사업을 벌여 나갔다. 농촌의 실업자 문제를 토건업을 풀면서 고도 성장을 지속하려는 정책을 펼친 것인데, 이 정책은 지방의 토호나 토건업자 중심의 사회 인프라를 만들었고, 개발의 이권을 주는 대신에 비자금과 표를 주고받는 정경 유착의 현상으로 발전했다.
언젠가부터 토건국가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이런 뜻이 있었다. 그렇다면 4대강에 목숨 걸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이끄는 우리나라도 아직도 토건국가인 것 같다. 토건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문화와 복지로 가야 하는 예산이 줄어듦으로써 돌봄의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돌봄의 사회화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우리나라의 수준은 아직 멀었나 보다.
보편적 돌봄의 체계에 비추어 보면 돌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수준은 미비하다.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가족들에게 있다고 보고, 특별히 가족이 없어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사회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는 잔여적 개념 수준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치매 노인을 유기하거나 폭행한 사건이 보도될 때 그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대부분 그 가족의 '반인륜성'에 대해 불안해하고 분노할 뿐 '사회적 제도의 부재'에는 크게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다. 돌봄을 이렇게 보는 것은 그 해결 역시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구하게 만듦으로써, 개인들에게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져야 할 성원들에 대한 돌봄에 대한 시민적 책임감을 무디게 하면서, 동시에 공공 기구가 져야할 책임도 함께 면제시킨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공적인 정책화를 더디게 만들 뿐이다.
돌봄의 책임은 사회의 인식이 아직 성숙되지 못하여 무겁게 우리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동시에 저출산의 문제도 얘기하고 있는데, 자신의 미래와 자녀의 미래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경제적 생산이 주된 목표가 되고, 인간 생명의 재생산은 부착적인 것이 되는 곳에서 발전은 없다. 돌봄의 위기는 이런 곳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돌봄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도 얘기한다.
여성학자 키테이가 말했듯, 남성화된 시민권의 맥락에서 구성된 복지 정책은 역사적으로 산업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효율성과 경쟁의 원리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시장 사회와 모든 사람은 보편적 인권을 갖는 평등한 존재라는 민주주의 이념 간의 모순을 봉합하는 해결책이었고, 따라서 그 경쟁의 게임에서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실패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를 채워 주는 자선 성격의 시혜로 국가적인 돌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는 흔히 '복지'라는 말이 가난, 무능력, 질병, 무기력을 떠올리게 만든다. 복지 혜택을 받는 이는 독립적이지 못해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 무능한 자라는 낙인을 받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사실 돌봄을 보편적 시민권에 기초한 복지의 문제로 접근하는 데 대해 갖는 저항감은 '복지'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이미지들과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다.
복지, 혹은 돌봄은 그런 느낌이었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것만 주는 것. 그러나 이런 생각을 버리고, 나도 사회의 돌봄의 받을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도 누군가를 돌볼 수 있다는 더 넓은 돌봄을 생각해야겠다.
교육의 문제도 얘기하는데, 현재 교실 수업의 문제 중의 하나를 얘기한다. 교사의 가르치는 일과 학생의 배우는 일이 일치해야 하는데, 어긋나는 경우가 너무 많고, 이 어긋남을 통찰하여 의미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한편 학생에게 수업은 교사와 대화하고, 교재와 대화하고, 친구와 대화하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서 교육 내용을 습득하는 과정인데, 이런 것을 제대로 하도록 교실의 환경과 시스템은 방해하고 있다.
자녀와 혹은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제안한다. 상대방의 얘기는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이나 강요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고, 그 과정은 관찰-느낌-욕구-요청 순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얘들아. 너희가 집에서 레슬링을 하며 노는 것을 보면(관찰), 엄마는 불안하고 걱정이 돼(느낌). 너희가 안전하게 놀았으면 좋겠거든(욕구). 그러니까 레슬링처럼 몸으로 하는 놀이 대신 다른 놀이를 하면 어떻겠니?(요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 요청이 과격하게 명령으로 변질되는데, 그런 과정을 내 안에서 충분히 늘어놓아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밖에 이 책에는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를 건설하는 얘기도 있다.
정말 2010년 대한민국은 한 개인이 마음놓고 행복하고 싶어도 절대로 그렇지 못하게 만들려고 하는 나라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안을 찾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보다 생태적이고, 보다 공동체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