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센터는 서울 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인데, 대안 교육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하자센터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과 생각, 느낌 들을 쓴 글이다. 연구원도 있고, 학생도 있고, 교사도 있다. 그들의 생각 중 일부를 엿보려고 한다.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대안 문화를 형성하는 곳이 아니다. 개성을 추구하고 개인주의를 익히며 최소한의 다원적 질서를 추구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서구의 청년들이 20여 년 전에 했듯이 집단적인 저항을 통해 기성 세대와 "협상"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문화를 바꾸어낼 하나의 대안적 세력이 되기보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낸 천박한 유흥 문화를 모방하면서 집단적으로 "흐트러지거나" 자폭하고 있다.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파행적 자본주의화가 이루어낸 거대한 소비 시장이며, 어디서 생산해 냈는지 모르는 찰나적 대중 문화이다. 지금 언론 매체가 대서특필하는 청소년 폭력과 성에 집착하는 성 문화, 또는 폭주 속도에 몸을 맡기는 성향은 실은 파행적 근대화가 만들어낸 "문화"이다.
청소년 관련 책이므로 청소년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저항이 대안적이지 못하고 유흥 문화로 흘러가서 무분별하게 소비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에너지는 있으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너 왜 그러니?"라고 그 이유를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어른들은 생각이 없다고, 개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그 행동이나 말이 이유와 관련된 것이 아니므로 대답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애초에 질문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원래 청소년들의 행동과 말의 이유는 취향에서 나온 것이다. 즉, "그냥"을 해석하면 "제 취향이에요."라고 할 수 있다. 취향은 옳고 그르거나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몸으로 느끼면서 즐기는 것인데, 어른들은 그런 취향에 대해서 자신들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나쁘다 하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옳지 않은 것이고, 나쁜 것이다. 이런 취향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취향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고, 습관적인 행동, 즉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데, 이를 만들어가지 못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왕따가 된다. 왕따를 시키는 마음의 바닥에는 청소년 사회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은 자신의 불안이 투사되어 있다. 즉, 자신이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약점이 있는 다른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것이다. 경쟁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남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새로운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