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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83]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소통 공동체에서 문화적 주체로 서는 아이들
    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09. 11. 1. 14:54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조한혜정 (또하나의문화, 2000년)
    상세보기

    이 책은 이가 청소년에 관한 관심을 갖고 썼던 책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의 연장에 있다. 이전 책에서는 학교와 사회가 청소년들을 코너로 몰아 뭍이는 문제를 중심으로 썼고, 이 책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 대안은 학교의 해체와 재구성에 있으며, 학교는 해체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자.

    먼저 여는 글에서 현재 학교에 대한 비판을 간단히 하고 있다.

    21세기의 학교는 창의력을 가진 아이,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줄 아는 협동적 인간을 길러 내는 곳이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을 경쟁시키는 체제는 가장 경쟁력 없는 인간을 배양할 뿐이다. 개개인을 경쟁시키면서 집단 자체는 무사 안일의 원리로 굴러가는 조직은 망할 수밖에 없다. 한 경제학자는 신문에서 한국의 중등 교육은 "실은 무경쟁과 규제, 타성이 지배하는 고요한 늪"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경쟁, 경쟁을 외치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은 아이들도 사실 경쟁력 있는 아이들은 아니다. 진정한 실력을 배양하기 위한 경쟁이 아닐진대, 살아남은들 경쟁력이 생기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서 말한다.

    첫째로 학교의 담을 낮추는 일이다.
    두번째로 아이들에게 선택 가능한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주는 일이 시급하다.
    세번째로 기존 학교 안에 학생들이 스스로 관리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학교가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병영학교가 아닌 학생들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교사는 그것을 도와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가 이렇게 학교를 재구성할 때 교사는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가져야 할까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로 현재의 실패를 자신의 능력 부족이나 잘못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대한 근대화 과정의 산물이며, 근대 기획의 실패로 인한 것이다. 학급 붕괴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강조해야 할 점은 교실 붕괴의 '주범'을 찾지 말자는 것이다. 학급 붕괴의 현상은 긴 근대화 과정의 산물이며 아주 복합적인 현상이다. 그런 현상을 음모론이나 원인 결과론으로 단순화, 또는 극화시키면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두번째로 기존의 고정 관념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더욱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사고하는 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세번째로 만병 통치약은 없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근대 기획의 핵심인 거대한 학교 체제를 한꺼번에 바꾸려는 생각은 별로 현명한 생각은 아니다. 거대한 공룡처럼 된 학교를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학교 밖에서 많은 작업들이 먼저 이루어져서 '학교'의 개념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교사들이 자신의 행복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좋겠다. 아이들과 관계 회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솔직한 어른이 되는 것이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근대의 기획인 학교는 이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 기획에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이상 신호를 과거의 가치로 억누를 수는 없다. 그 이상 신호는 사실은 이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 근대를 넘어 가기 위해 학교와 교사는 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글쓴이가 십대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최소한의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할 것, '자본의 독주'에 대해 냉철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할 것, 문화적 주체가 될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 중 문화적 주체에 대한 내용을 뽑아보았다.

    문화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고, 자기 삶을 표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상업주의가 개인의 욕망까지도 조작해낼 수준에 이른 시대에 문화적 주체가 되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고도의 상업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능력, 자기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갖는 것이다. 점점 더 흥미로운 깜짝쇼를 기대하는 '수동적 관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일구어 가는 '적극적 문화 향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여서 자주 판을 벌여야 한다.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마당을 벌이고 함께 노래도 돌아가면서 부르고 여행도 자주 다녀야 한다는 말이지. 다시 학예회를 부활시키고 운동회를 찾자는 것이다.
    글쓴이가 강조한 세 가지 중 앞의 두 가지는 철학적인 면이 강한 반면, 세번째 문화적 주체에 대한 내용은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실천적 측면에서 유용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문화예술 교육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청소년 인권과 시민권에서는 사춘기가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연구 결과를 말한다.

    사춘기 연구에서 뛰어난 작업을 한 마가렛 미드는 사모아 사회와 미국 사회의 십대들을 비교하면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과 갈등은 근대화된 서구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임을 밝혀낸 바 있다. 사춘기적 반항과 갈등은 세대간 경험의 괴리가 매우 큰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지, 세대간의 생활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공동체적 유대가 강한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세대간에 공유하는 경험이 줄어들면서 세대 갈등이 생기자 서구 학자들이 이 시기를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생긴 것이지 그 전에는 없었단다. 그렇다면 세대간 연속성을 회복하면서 공유하는 경험을 늘이면서 사춘기의 청소년과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청소년들의 상황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파행적 근대화가 낳은 훈육 공간인 학교와 건강한 의사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정, 그리고 찰나적 쾌락을 공급하는 소비 공간을 넘나들면서, 분열되지 않는 삶을 살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상황이다. 주로 있는 공간인 학교와 가정은 소통할 수 없고, 사회는 욕망을 부추기면서 유혹하고... 그 가운데에서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글쓴이는 청소년 직업 센터인 하자센터를 만드는데 참여하면서 대안적 공간을 실험하고 성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경 쓴 것에 대해 얘기한다.

    하자가 문을 연 이후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바로 소통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기계적 시대를 넘어서려면, 죽어가는 감수성을 살려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유기적 공동체의 회복이며, 이는 곧 소통에 대한 신뢰감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의 공간이란 달리 말해서 '헛소리를 안 하는 공간', '문제를 직시하는 공간', 일상을 성찰하면서 '일상성이 회복되는 공간'을 말한다.
    공동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소통을 해야 하고, 그 소통의 모습을 세가지로 얘기하고 있다. 이 세가지를 뜯어 보니 생각과 생활이 일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 공동체의 또다른 모습으로 정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나서는 것은 정보 사회 구성원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문화 자본'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소통을 지속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정보 사회의 '시민'이란 정보를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 실은 소통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정보를 찾는 것은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며, 더 나아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통 공동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두 가지를 제안하는데, 하나는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공간을 학교라 부를 수 있게 하라는 것과 제대로 된 교장을 뽑아라는 것이다. 그 중 제대로 된 교장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얘기한다.

    한 가지는 교장단을 뽑을 때 다원주의적 감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보라는 것인데 이를 점수화하기 어렵다면 평가 제도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다. 교사와 학생 간의 세대 차이, 학생들 사이의 계급간, 성별간, 그리고 개성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교장단은 이 시대에, 특히 아이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단일한 국민 만들기의 시대, '결과'가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관계 맺기가 중요한 시대이며, 과정이 중요한 시대이다. 학생들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생산적인 다양성으로 전환해낼 수 있는 기획력을 가진 교장이 이제 학교를 맡아야 한다. 그런 교장은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낼 줄 알고, 그들 사이의 차이를 대립이 아닌 공존으로 연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교사들의 잠재력을 살려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그는 교사들이 '자율과 공생'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며, 그 '기획팀'에게 학생들과 함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고, 또한 학교 전체를 업그레이드시켜낼 방안을 찾아내라고 특별 주문을 할 것이 틀림없다.
    정말 꿈의 교장이다. 이런 교장 모시고 싶다.

    글쓴이가 제시한 대안들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회는 서서히 바뀌어 가면서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는 느낌도 든다. 나도 교실 현장에서 이런 가치들을 받아 안고 교실이 소통의 공동체가 되면서 학생들이 문화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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