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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참교육적 생산성을 위하여
    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10. 3. 28. 21:30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강수돌 (그린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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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돌 교수는 경영학과 교수이지만 노사관계를 공부해서 생각은 깨어있다. 그래서 근본적인 고민하다보니 교육의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이런 책까지 내게 되었다.

    내용은 제목에 다 나와있다. 교육이 문제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나부터 교육에 대한 생각, 생활방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서 교육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거나 남이 먼저 시작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절대로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다.

    책머리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할 것 세 가지를 얘기하고 있다. 첫째 교육문제를 교육 문제로만 보지 않고 총체적으로 풀어야 하고, 둘째, 교육 문제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고, 셋째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중 첫째 얘기를 자세히 인용해본다.

    제 아무리 좋은 제안이 나와도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해서 현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좋은 제안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교육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교육과 더불어 경제, 나아가 삶의 방식과 더불어 풀어야 한다.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문제는 선생님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먼저 경쟁의 사회적 기원에 대해서 얘기한다.

    '경쟁의 내면화'는 사회적으로는 '(조건 없는) 사랑의 결핍', 그것에서 비롯된 '강자와의 동일시', 그리고 '고립된 개인의 (학습된) 생존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이의 부모 내지 강자란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을 나타내고 있다. 또 아이가 강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것처럼 여기는 것과 꼭 같다. 지금까지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은 대체로 이런 것을 아이들에게 학습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역할을 해왔다. 군대는 더욱 확실하게 약육강식이라는 국가관을 심어주었다.

    아이들 중에는 정말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남들에 떠밀려 생활하는 애들이 있다. 게임에 빠져 있거나 부모의 말대로만 움직이거나 어쨌든 자기는 없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살아지는데, 결국 그 원리는 자본의 원리이다. 마치 정신이 다른 존재에게 포로로 잡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자본은 우리에게 소비를 유도한다. 그런데, 소비를 하려면 많은 돈을 벌어야 하므로, 과다 노동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욕구를 발견하고 충족시키기보다는 많은 돈과 많은 소비를 통해 만족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은 것은 공험함 뿐이다. 반면에 자율성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립적 삶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도움으로 자립하여 행복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더 중요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립성에 대한 얘기를 또 하고 있다.

    결국 구조개혁의 옳은 방향은, 대내외적으로 자립성과 자주성, 민주성과 자율성을 확장해 나가는 데에 있다. 소수 거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다수의 민초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경제 정책, 산업 정책, 노동 정책, 교육 정책 등을 전향적으로 고쳐가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원리로 자립성을 들고 있다. 외부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 그래야 외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기상 이변으로 세계 곡물 시장이 흔들려서 농산물을 수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립성이 있다면 굶어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립성이 없으면 굶어죽는 일은 명약관화이다. 자립성은 그런 것이다.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생산성에 대해 얘기한다. 교육부에서 말하는 교육의 생산성이란 기업의 생산성 공식을 그대로 교육에 적용한 것이다. 즉, 교육부분의 인건비와 설비비를 줄이면서 더 많은 학생을 배출하거나 더 경쟁력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인데, 더 쉽게 말하면 적은 교사로, 혹은 더 싼 교사의 월급으로, 혹은 더 적은 학교수를 집어넣고, 더 많은, 혹은 더 능력 있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 당 교사수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는 훨씬 못미치면서 학생수가 줄어들테니 교사 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이런 교육의 생산성 때문이고, 오히려 작은 학교들을 통폐합하여 학생들의 통학거리를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교육의 생산성이 오히려 교사와 학생의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런 교육적 생산성을 반교육적 생산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교사 성과급제가 생산적이지 못한 이유를 얘기한다.

    첫째, 성과주의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를 기초로 한다.
    둘째, 차별의 제도화는 동기부여보다는 사기저하를 초래한다.
    셋째, 평가에 따른 보상은 공동체성보다는 개별성을 강화한다.

    교사 집단이 평가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교육적 생산성에 의한 방식으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비판을 한 후에 마지막 부록에서 몇 가지 지침을 얘기한다. 부모, 학교와 일터, 정부, 학교장, 사회에 권고하는 지침인데, 그 중 학교와 학교장에 대한 지침의 일부를 뽑아보았다.

    학교와 일터가 모두 변해야 교육이 산다.
    -공부시간과 노동시간을 줄여야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음을 명심하라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제도 자체를 없애라.
    -교사의 잡무를 없애야 교육이 산다.
    -학생과 선생이 평등하다고 느끼게 하라.
    -선생 말에 모두가 귀 기울여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서로 귀 기울여야 한다.

    교장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로 선다
    -교장은 보스가 아니라 리더임을 명심하라
    -교장은 전인교육을 이끌 리더에 적합한 후보 3명을 뽑은 뒤에 '제비뽑기'로 결정하라
    -더 이상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강요하지 말라.
    -교장은 학생에게 질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자임을 명심하라
    -교장은 교사들에게 사령관이 아니라 심부름꾼임을 명심하라
    -자기가 가진 잣대를 교사나 학생에게 강요하지 말라.
    -연구하는 교장, 토론하는 교장이 되도록 노력하라.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협적인 것 같아서 다 싣지는 않았다. 정말 학교가 바뀌고, 부모가 바뀌고, 교사가 바뀌고 그래서 사회가 바뀌면 좋겠다. 교육이 진정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데 이바지해야지 인간성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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