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쪽에서 1박을 하고 오늘은 대구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4번 국도를 타야했다. 도청을 지나 4번 국도로 들어섰다. 어제 잃어버린 보온병을 대신하는 새로운 보온병을 장착하고 달리니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옥천까지 가는 길은 평탄했다.
아래 사진은 옥천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옥천역 앞에는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정지용 시비가 있었다. 옥천을 지나면 영동이 나온다. 영동을 지나면서 천변의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바람이 살살 불어서 자고 가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다. 영동을 지나 4번 국도를 계속 따라 김천쪽으로 가다 보면 노근리 사건 현장을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이 대량으로 죽은 곳으로 뉴스에서나 보던 곳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가깝게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터널 벽과 기둥, 그리고 입구 등에는 총탄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당시의 처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노근리 사건 현장 사진이다.
노근리를 지나 황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원래 계획은 김천에서 점심 식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배도 고프고, 거리가 가깝지 않아서 황간에서 먹었다. 황간은 면 소재지이고, 조용하고 작은 곳이었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차도 별로 없고, 먹을 곳도 별로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찾다 보니 웬만한 식당이 있어서 쉬면서 잘 먹었다.
황간을 지나 김천을 향하여 4번 국도를 계속 가다 보면 추풍령을 넘어 경상북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 추풍령은 고개을 넘은 느낌이 들지도 않고, 어여부영 넘었다. 가파르지도 않다.
경상북도 경계이다.
드디어 김천에 들어섰다. 김천에 들어서면 영남제일문이 있어서 경상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었다. 전주에는 호남제일문이 있는데, 그것하고 비슷했다. 어떤 것을 먼저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김천은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본 느낌으로는 꽤 크고 시원시원하고, 깔끔했다. 자치단체장이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남제일문이다.
김천에서 칠곡으로 가는 4번 국도는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왼쪽에 금오산 자락을 두고 가는 길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주변에 산만 있고, 거의 직선길이라서 지루하다. 거기다 새로 넓게 포장한 국도는 주변에 가로수도 없어서 마땅히 쉴 수도 없었다. 결국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만들어준 그늘에서 위태위태하게 휴식을 취했다. 오늘 여행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그 때는 생각했다. 그러나 좀더 뒤에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가 찾아온다.
칠곡으로 가는 길에 중부내륙고속도로 밑에서 휴식. 길이 지루하다.
칠곡으로 가다보면 중간에 약목면이 있고, 약목역이 있다. 역을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한 장찍었다.
약목을 지나 왜관에 들어왔다. 왜관 입구의 주유소에서 물 얻어 마시고, 근처 파라솔에서 편안하게 휴식도 취하고, 지인들과 전화통화도 하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칠곡만 지나면 대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대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구 어디에 숙소를 잡을지에 대해서 슬슬 고민하고 있었다.
왜관을 지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읍내로 가고, 또 하나는 외곽길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외곽길을 선택했고, 출발을 했다. 출발 후 제2왜관교를 건너서 내려오는데, 길 상태가 엉망이었다. 잔돌이 많아서 울퉁불퉁하고, 내리막이라서 속도 제어도 쉽지 않았다. 이거 잘 못하다가 펑크 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펑"하고 정말로 펑크가 나버렸다.
다리를 내려와서 폐업한 식당 마당에 자전거를 놓고 펑크 수리를 하려고 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펑크를 나게 만들었나 봤더니 손가락만한 못이 그대로 타이어에 박혀 있었다. 그러니 튜브뿐만 아니라 타이어까지 찢어져서 튜브를 때워도 타이어 구멍이 커서 그 사이로 튜브가 빠져나올 것 같았다. 결국 땜질은 포기하고 여행을 여기서 접고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왜관에는 미니벨로 타이어를 파는 숍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대구에서도 찾으면 찾겠지만 너무 많은 체력을 소비할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끌고 갔더니, 서울 가는 버스는 없단다. 아예 없단다. 결국 대구까지 가는 버스를 탄 후에 대구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30분 정도 기다려서 대구행 버스를 탔고, 다시 서대구 버스터미널까지 자전거 끌고 버스를 잡고 서울로 왔다.
대구하고, 부산은 나하고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여행을 이렇게 접고 나니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왜관부터 대구 거쳐 부산까지 가는 여행을 다시 한 번 시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