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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9] 아인슈타인의 꿈: 시간에 대한 상상의 향연
    행간의 접속/자연과학/환경 2009. 3. 29. 17:03
    아인슈타인의 꿈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앨런 라이트맨 (예하, 2001년)
    상세보기

    아인슈타인이 꿈을 꾼다. 꿈의 주제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들을 완전히 뒤집는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들 뿐이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꿈이니까 가능하다. 그럼 진짜 아인슈타인이 이런 꿈을 꾸었나?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꿈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가? 아니다. 작가가 만든거다. 따라서 이 작품 소설이다.

    이전에는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소설이다. 큰 틀은 아인슈타인의 현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막말로 없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30편의 시간에 대한 상상이다. 시간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간이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이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런 얘기들이 꿈이라는 장치로 표현된다. 이 짧은 꿈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다.

    그럼 시간에 대한 상상들 몇 개를 열어보자.

    시간이 원이라면 어떨까? 시작과 끝이 없고, 계속 반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도 정확히 일어나고 미래에도 정확히 일어날 것이다. 잘 되는 사람은 계속 잘 되고 잘못 되는 사람은 계속 잘못 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은 타임머신 영화에서도 종종 나왔다. 미래의 인물이 현재로 거슬러 와서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얘기들. 그러나 그가 현재에 있음으로써 공기의 성분이 어떻게든 달라졌을텐데,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하나의 궤도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 가지 않고 세 차원 이상의 방향으로 흐른다면 어떨까? 그것도 동시에... 남자가 여자를 두고 선택을 하는 순간에 여러 시간이 나타나 동시에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간은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계시간과 체감시간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기계시간은 객관적인 절대시간이고, 체감시간은 개인마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중 객관적인 기계시간은 없고 주관적인 체감시간만이 존재한다면? 하나의 장면을 누구는 빠르게 인식하고, 누구는 느리게 인식하고, 그래서 시간이 각자의 인식(느낌)에 따라 흐른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공놀이하는 장면을 부모는 행복함에 젖어서 강렬하게 인식하여 느리게 시간이 가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시간 자체가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약속을 잡을까? 세상은 어떻게 질서를 가질까? 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같은 시간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연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시간의 중심이 있다. 그곳은 시간이 멈춰있고,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그래서 그곳에 접근하는 사람은 점점 느리게 움직이고, 중심에 도달하면 멈춘다. 시간의 중심에 모여드는 사람은 주로 연인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이대로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시간이 멈추는 시간의 중심으로 온다. 그러다 그들이 다시 시간의 주변으로 가게 되면 친구들은 달라져 있고, 두 사람의 관계도 전과 같지 않다. 중심에서 나오면서 시간이 빨라지고 마음이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중심은 가고 싶은 곳이지만 그곳에 삶은 없다. 표본 속 나비가 영원히 아름다운 것과 같다.

    사람들이 단 하루만 사는 세계가 있다면? 평생 한 번의 해돋이와 해넘이를 본다. 평생 세 번의 식사를 하고, 밤에 태어난 사람은 인생의 첫 절반을 어둠 속에서 보내고, 낮에 태어난 사람은 인생의 첫 절반을 밝음 속에서 보낸다. 너무나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서두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내일로 미루는 것은 절대 없다. 노년이 되면 주변에 사람이 없다. 부모는 몇 시간 전에 죽었고, 형제들은 바쁘게 살아간다. 우리가 하루의 시간이 무척 짧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삶은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주의 시간 속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의 한평생 80년도 하루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어쩌면 하루의 시간과 다르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불연속적이라면? 시간이 흐르다가 갑자기 멈추고 조금 뒤에 다시 흐르고, 이런 것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어 흐른다면? 비디오를 재생하다가 일시정지되었다가 다시 재생되는 것이 반복되는 것처럼... 시간이 섬유다발로 연결되는데, 그것의 틈이 조금 벌어져서 잠시 멈추다가 다시 연결되면 흐른다. 그 공백은 아주 짧은 순간이라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희열의 순간이나 강한 충격을 받은 순간, 그래서 정신적으로 멍해지는 순간이 바로 시간의 섬유다발 틈에 있어서 시간이 잠시 멈춘 것으로 느낀 것은 아닐까?

    지역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면? 똑같이 태어난 사람 둘이 어디는 빠르게 흘러서 빨리 늙고, 어디는 느리게 흘러서 아직도 어린 아이일 수 있다.

    과거가 바뀌는 세계라면... 자식이 죽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식에 대한 슬픔을 안고 살 것 같지만 그런 과거가 아예 자식이 없었던 것으로 바뀌었다면 그는 편안하게 살 것이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과거는 바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했던 달콤한 사랑의 고백은 없었던 것으로 변하고, 자동차 사고도 없던 것이 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이다. 과거가 없으므로 역사도 없다.

    위대한 시계가 있다. 위대한 시계가 있기 전에는 낮과 밤의 변화, 태양 고도의 변화, 별자리의 변화, 달의 참과 기움, 여자의 월경, 밀물과 썰물, 계절의 변화 등으로 시간을 인식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시간을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위대한 시계를 만들었고, 그 이후로 욕망과 욕망 사이, 삶의 순간 순간을 측정했다. 자연과 맞지는 않았지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위대한 시계에 문안을 올리는 순례를 해야 한다. 어린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누구나 할 것없이...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지불하고 시간의 엄정함에 경의를 표한다. 이 상상은 우리가 시간에 매여서 인간다운 삶을 잃어가는 것을 풍자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정말 우리는 자연의 법칙과 어울리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숭배하라고 한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시간은 새다. 그 새를 잡으면 시간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누구도 잡을 수 없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깔고 있다. 작가가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가 과학적 이론을 소설로 만들어서 얘기하니 어렵긴 해도 재미있고, 시간에 대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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