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미학에 대해 쓴 책이다. 원시부터 고대, 중세를 거쳐 근대까지의 미술사를 통해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히 에셔의 10개의 작품으로 각 시대를 관통하는 개념들을 설명해주고 있고, 아울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 대화를 통해 각 시대의 특성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1. 가상과 현실-원시 예술
원시시대에는 개념적 사유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주의적으로, 즉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렸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을 보면 정말 사실적으로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농경을 하고 정착을 하게 되면서 고도의 추상적인 능력이 생겼다. 바로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된 것이다. 즉, 계절마다 변하는 개별적인 기후 현상은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스러운 기후 현상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사계절의 특징을 추출하여 개념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럼에 따라 사물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되어, 불변적이고 일반적인 특징만을 추상한 기하학적 양식이 발달하게 된다.
예술의 기원에 대한 설은 유희, 노동, 주술 기원설이 있다. 유희 기원설은 심심해서, 힘이 남아돌아서 그림을 그리고, 춤추고 그랬다는 것이다. 노동 기원설은 일하면서 저절로 나왔다는 얘기다. 주술 기원설은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술이 효험이 있었을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효험이 있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즉, 사냥을 위해서 들소 그림을 그릴 때 그들은 정말 사냥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들소의 모든 것에 대해서 파고들었고, 묘사해냈다. 들소에 대해서 그렇게 연구하고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 사냥을 할 때에도 사냥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주술이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주술이 효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사람들은 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그에게 매달리게 된다. 여기서 종교가 발생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물의 진짜 연관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철학이 발생했다. 과학은 철학의 아들이다. 그리고 예술은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순간에 탄생한다. 그렇다면 효험도 없는 예술은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에 이 두 주장이 변주되면서 미학사에서 되풀이 된다.
2. 가상의 탄생-고대 예술과 미학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이집트의 그림들은 얼굴과 발은 옆 모습이고, 몸과 다리는 앞 모습이다. 그들은 사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이집트처럼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에선 인간에게 내적 불안감을 일으킨다.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추상충동'을 갖게 되고, 그 결과 기하학적 양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추상 충동을 갖게 되면 어떻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지...
그리스 시대에는 처음에는 숭고양식이라고 하여 수학적으로 정확한 비례로 거대한 상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엄격한 비례에 약간의 우연성(불완전성)을 가미하여 우미양식을 만들었다. 그 뒤 로마시대에는 그리스 시대의 모방일 뿐이었다. 이 부분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상과 진리의 끈이 미학사의 끊임없는 변주라고 했는데, 끈을 찾지 못하겠다.
그리스인들에게 예술은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처럼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단,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시인들은 예언자처럼 신들린 상태에서 시를 읊조리니 시를 광기의 소산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의 합리적인 규칙을 발견한다.
3. 가상을 넘어-중세 예술과 미학
중세 시대에는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고 했고, 정신세계에 있던 것을 예술가의 영혼이 직관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스러운 관조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중세 회화는 대상이 가진 원래의 형태와 색채에서 과감히 벗어나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운 구성'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것은 현대 회화의 원리가 되기도 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즐거움의 근원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라고 설명한다. 외부의 형상과 내부의 형상이 맞아 떨어질 때, 미적 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4. 가상의 부활-근대 예술과 미학
근대에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립되는 생각이 나온다. 다 빈치는 회화를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했다. 조각은 원근법을 쓸 수 없고 육체 노동에 가깝고, 음악은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리지만 회화는 시간을 초월한다. 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있지만,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묘사할 수 있다. 이러한 회화의 목적은 가시적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자연과학만큼이나 엄격한 규칙에 따라야 한다. 결국 예술은 외부 세계의 과학적 인식(모방)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그런 보편적 규칙이란 없다고 했다. 미와 예술의 법칙은 개별적이고 일회적이며, 그때 그때 달라진다. 따라서 창작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대신 눈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법칙을 부여한다. 아름다움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의 목적은 미의 창조이다.
근대에는 원근법을 사용하여 주관에 좌우되지 않고 대상을 개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실점을 향해 선이 간다는 것은 주관적 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가 있다. 거리가 멀어진다고 사물을 작게 그리는 것은 객관적으로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예술은 르네상스나 고전주의와 다르다. 즉, 선적인 것에서 회화적인 것으로, 평면에서 깊이로, 닫힌 형식에서 열린 형식으로, 다양성에서 단일성으로, 명료성에서 불명료성으로 변화한 것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선적이다. 대상들은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배경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바로크 회화는 회화적, 즉 시각적이다. 고정된 윤곽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외관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평면적이다.
그림 속 인물들이 같은 깊이에 있다. 바로크 회화는 겹침을 강조한다. 르네상스 회화는 닫힌 형식이다. 대상은 그림 안에서 완결되어 있다. 바로크 예술은 그림이 완결되지 못하고 바깥으로 열려 있다. 르네상스 회화는 다양성이다. 대상들은 뚜렷한 윤곽선에 의해 배경과 뚜렷이 구별되어 독립성을 갖는다. 바로크 회화는 단일성이다.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전체 속에 녹아있다. 르네상스 회화는 명료성이다. 모호함은 없다. 바로크 회화는 불명료하다. 온전하지 않지만 본질적인 것만 나타내면 충분하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두 흐름이 있었다. 고전주의 예술이 데카르트적 이성(과학, 모방)의 예술이라면, 바로크는 감성의 예술이었다.
근대 미학은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에 의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예술이 감성의 문제라고 생각하나, 르네상스까지만 해도 예술은 이성적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감성은 이성과 함께 놓고 봤을 때 어디에 놓고 풀어야 하나? 이성 위, 혹은 아래? 바움가르텐은 이성 아래에 놓고, 감성을 일종의 이성으로 놓고 연구를 했다.
그러나 감성은 이성처럼 명확하고 뚜렷하지 않다. 명확할 수는 있으나 뚜렷하지 않고, 혼돈스럽다. 그래서 감성을 불완전한 이성으로 보고, 감성을 통한 인식, 감성적 인식이 된다.
이런 감성적 인식은 이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이성적, 논리적인 인식은 추상적 인식이다. 이는 개별적 성질이 삭제되므로 생생함이 없다. 이 때 감성적 인식이 명확성을 높여 줌으로써 상실을 보완한다. 인간이 뭔지 구구절절 추상적으로 늘어놓는 것보다 그림 한 장 보여주는 것이 낫다. 이게 바로 외연적 명확성이다.
바움가르텐은 미를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으로 보고, 가장 완전한 형태를 시에서 찾았다. 시에는 감성적 표상, 표상의 연쇄, 분절화한 음성으로 나누는데, 시는 이 세 부분이 완전할 때 아름다울 수 있다. 감성적 표상은 시가 전달하는 관념이다. 표상의 연쇄는 이 표상들이 전체 속에서 주제를 향하여 질서정연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분절화한 음성은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결국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예술은 고전주의 예술에서 볼 수 있으므로 그의 예술론은 고전주의 미학을 넘어서지 않는다.
바움가르텐의 업적은 예술이 가진 이 인식적 기능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했다는 것이고, 예술을 진리의 전달 매체로 보는 근대 진리 미학의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어 헤겔에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칸트의 반론도 있다. 어떤 사물을 아름답다고 할 때, 그건 그 사물이 모양이나 색과 함께 미라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게 마음에 든다는 얘기일 뿐이다. 미에 대한 판단은 주관의 쾌, 불쾌에 대한 판단일 뿐,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하지만 미가 대상이 아니라 주관에 달려 있다면, 미에 대한 판단은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모두 한마음이니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이 보편 타당성은 '주관적' 보편타당성이다. 말하자면 인간 '주관'의 구조가 똑같은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리고 미가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 마음에 상상력과 오성의 조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존재한다. 칸트는 이를 역설적으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고 했다. 사물이 아름다운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들도 반드시 나와 똑같은 판단을 하리라 기대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어떤 공통적 능력, 곧 공통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구조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언제나 똑같은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칸트는 공통감을 이념으로 요구한다. 공통감이 '있다'가 아니라 '있어야만 한다'고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도 규칙이 있을 순 있다. 자연은 천재를 통해 예술에 그 규칙을 부여한다. 천재의 규칙은 후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만, 그걸 설명할 수도, 배우거나 가르칠 수도 없다.
고전주의자에게 미는 완전성이었다. 미는 개념이므로, 미의 기준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칸트는 미의 보편적 규칙은 없다. 미는 느낌으로 판정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게 낭만주의 미학이다. 예술가는 더 이상 규칙을 습득하여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내는 '천재'다.
예술은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이다. 상상력은 감각자료를 모아 머리 속에서 막연한 상을 떠올린다. 처음엔 혼란스럽지만 질서가 발견되고, 조화로운 형상을 이룬다. 헤겔의 생각 대로라면 세계의 구조를 밝혀야 하므로 이런 유희는 틀린 것이다. 반면에 예술은 인식이 아니므로 틀리고, 맞고가 없다. 다만 미적 만족을 줄 뿐이다. 하지만 재수가 좋으면 이런 유희가 학적 발견을 낳기도 한다. 미적 상상력이 우연히 세계의 구조와 딱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우주 창조의 원리인 로고스가 있다. 이 로고스가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자신의 모습을 밖으로 투사해서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이 되었다. 이게 자연이다. 자연 속에는 인간도 있어서 정신도 탄생했다. 인간의 정신은 발전하여 마침내 자연은 로고스의 다른 모습이며, 이 모든 게 절대자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때 자연이 되었던 로고스는 원래의 자기로 복귀한다. 이렇게 자신을 인식하려고 스스로 다른 게 되었다가 다시 자기한테 돌아오는 정신의 오디세이, 이게 바로 우주의 역사이다.
헤겔은 이 과정을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논리학은 로고스가 자신을 바깥으로 쏟아 붓기 전의 상태를 다룬다. 자연철학은 로고스가 바깥으로 빠져 나와 시공간을 이루고 그 속에 역학적, 물리적, 유기적 자연을 창조하는 과정을 다룬다. 인간의 역사는 정신 발전의 역사이며, 이 역사 속에서 로고스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다시 자기한테 돌아간다. 이 과정을 정신철학이 다룬다. 정신철학은 다시 개인들의 의식이 성장하는 주관정신, 개인을 초월하여 사회적인 정신원리인 도덕이나 법, 인륜과 같은 객관정신, 이 둘을 종합한 절대정신으로 나뉜다.
절대정신은 다시 예술, 종교, 철학으로 드러난다. 예술은 로고스를 감각의 형태로, 종교는 표상의 형태로, 철학은 개념의 형태로 드러낸다. 절대정신이 성장함에 따라 예술에서 종교로, 다시 철학으로 등장한 후, 마침내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자기한테 돌아간다.
헤겔은 로고스(이념)가 예술 속에서 감각적 형태로 드러난 게 곧 미라고 봤다. 그리고, 이념이 감각적 형상과 관련을 맺는 양상에 따라 예술의 발전을 상징예술, 고전예술, 낭만예술로 나누었다. 상징예술은 이념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물질적 매체에 압도당할 때 발생한다. 이념은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고 어렴풋이 암시만 할 뿐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띠고 상징이 되어 버린다. 이념이 성숙하면서 고전예술이 시작된다. 이념은 감각적 매체와 조화를 이룬다. 그리스 시대이다. 이념은 계속 성장하여 감각적 매체 속에 머무르지 않고, 표상으로 표현되고, 예술은 바깥세계에서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로 옮아간다. 이때 낭만예술이 탄생한다.
헤겔의 삼분법에 따르면 건축은 상징예술이고, 조각은 고전예술이며, 회화, 음악, 시는 낭만예술이 된다. 이는 낭만예술로 갈수록, 물질적 매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정신적 내용을 표현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정신적 표현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념과 매체가 조화를 이루던 그리스 시대(고전예술)를 예술의 정오라고 보고, 그 이후를 내리막이라 생각했다.
5. 아름다운 가상
고대인들은 미가 객관적 속성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미에 대한 별도의 감각을 필요없었다. 미의 기준(법규)만 인식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엄격한 법규에서 벗어난 일탈을 즐겼고, 이 일탈에서 대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결국 고대인들의 생각이 한계를 드러내는 곳에서 취미론이 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성 말고 다른 것(취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는 서서히 주관화하기 시작하고, 취미론은 주관과 객관에 양다리를 걸친다. 미는 감각을 매개로 주관에 쾌감을 주는 사물의 속성이라고 한다. 취미론은 이런 애매한 이중구조를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오면 미는 아예 완전히 주관화하기 시작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게 아름다울 수 있다. 현대 주관주의적 미이론의 대표는 감정이입설이다. 아름다움이란 객관화한 자기향수다. 말하자면 우리가 우리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은 게 바로 아름다움이란 거다. 자연의 아름다운 사물은 실은 우리가 그 속에 집어넣은 우리 감정이다.
읽으면서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옛날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감성이 이성의 아래에 있으면서 인식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특히 그러했다. 한 분야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온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단순히 그리스 시대에는 예술이 어떠했고, 중세 시대에는, 근대에는 예술이 어떠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그렇게 나타나게 된 철학적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이는 예술사 뿐만 아니라 정치사, 문화사, 사회사도 철학적 관점으로 한꺼풀 벗겨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 읽기는 했으나 그리스 비극과 중세의 희극 부분은 읽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어서 발췌하지 못했고, 또한 각 장과 장, 세부 절과 절들이 어떤 원리로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어려웠다. 그래도 2권, 3권까지 읽어서 현대까지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