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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1] 아무튼, 레코드: LP의 추억, 카세트 테이프의 추억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5. 9. 22. 21:10
책이름: 아무튼, 레코드
지은이: 성진환
펴낸곳: 위고
펴낸때: 2025.07.
지금은 음원과 유튜브에 밀려 존재가 희미한 LP판, 카세트 테이프, CD에 대한 추억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나보다 몇 년 정도 늦은 세대이지만 상당 부분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의 추억은 곧 나의 추억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중, 고등학교 때 정말 음악을 많이 듣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의 추억과 나의 추억을 기록해 본다.
1. LP의 추억
먼저 LP의 개념이다.우리가 흔히 ‘엘피(LP)’ 혹은 ‘엘피 판’ 등으로 부르는 커다랗고 동그란 아날로그 매체는 ‘12인치 바이닐(vinyl) 레코드’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바이닐’은 매체의 재질을 의미하고, 크기에 따라 7인치, 10인치, 12인치 등의 규격이 존재합니다. 그중 12인치가 가장 나중에 개발되었습니다. 회전 속도를 33알피엠까지 줄이고 디스크의 크기를 키워 수록 가능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여러 곡이 담겨 있는 작품집이라는 뜻의 ‘앨범(album)’, ‘long play’의 약자인 ‘엘피’ 등의 말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LP, LP 하면서도 LP가 무엇의 줄임말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의 이 정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12인치라서 많은 곡을 담을 수 있고, 그래서 길게 재생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음악을 공유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친구에게 음악을 추천하려면 카톡으로 링크를 보낸다. 조금 전에도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 친구 지욱이가 오늘의 노동요라며 신나는 EDM 한 곡을 보내주었다. 이 간단한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에는 서로 음반을 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시디와 테이프를 친구들과 정말 많이 돌려 들었다. 그러다 보면 가끔 내 것이 누구한테 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사라진 음반들이 꽤 있다. 어쩌면 그것들이 흐르고 흘러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오디오 안에서 여전히 돌고 있을지 모른다.
진짜 친구들과 음반, 카세트, CD 등을 빌려주고 받고, 그러면서 들었다. 나는 내 음반을 잘 챙겨서 지은이처럼 사라진 음반들은 별로 없었다. 아무튼 지금의 방식으로 음악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첫 LP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설렌다.그렇게 완전한 내 소유의 첫 음반이 된, 지구레코드에서 라이선스 발매한 «Simon&Garfunkel’s Greatest Hits» 테이프를 나는 듣고 듣고 또 들었다(지금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앨범은 바이닐과 시디도 가지고 있지만 이 파란색 테이프로 들을 때가 기분이 제일 좋다.
미국에서만 1,400만 장 이상이 팔린 유명한 앨범이다. 수록곡 전부가 주옥같은 명곡들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도 아름답다. 몇몇 곡들은 폴 사이먼(Paul Simon)의 기타와 둘의 화음으로만 이루어진 라이브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게 다 숨 막히게 좋다. 특히 ‹The 59th Street Bridge Song(Feelin’ Groovy)›와 ‹Homeward Bound›의 라이브가 끝난 후 청중들의 박수 소리와 다음 곡들이 이어지도록 믹싱한 게 참으로 절묘해서 매번 탄식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베스트 앨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매장에도 두 종류의 컬러 바이닐이 있다. 내 테이프와 엘피는 모두 예전에 나온 한국 라이선스반인데, 수입반과 달리 트랙리스트에도 없는 ‹A Most Peculiar Man›이 추가로 들어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지은이의 첫 LP가 나의 첫 LP와 똑같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턴테이블이 없어서 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 앨범을 테이프로는 갖고 있었지만 LP로는 없어서 LP로도 갖고 싶어서 턴테이블이 없었는데도 무조건 샀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 선물로 더블데크가 있는 인켈 턴테이블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처음 들은 LP가 바로 Simon & Garfunkel Greatest Hits 이다. 그 때의 기쁨이란.... 이미 알고 있는 음악이었지만 턴테이블의 LP는 또 느낌이 달랐다.
지은이는 LP의 매력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언급한다.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음악이 보이는 것인가? 이야기를 들어보자.커다란 그림, 모양에도 소리에도 쌓여가는 시간, 이미 잘 알고 기대했던 이런 특성들 외에도 엘피의 매력은 너무나 많았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매번 감탄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이 음악을, 내가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 모든 바이닐 레코드에는 음악이 동심원을 그리며 말 그대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그냥 매끈한 원반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많은 동그란 길이 보이고,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그 모든 길은 구불구불한 골짜기로 되어 있다. 높고 낮고 크고 작은 음악 소리에 따라 골짜기의 모양도 달라진다. 그 모양에 따라 바늘이 흔들리고, 앰프는 현미경처럼 그 작은 진동을 큰 소리로 증폭시킨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들려오는 모든 순간 턴테이블의 바늘 끝은 정확히 그 순간의 소리가 새겨진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깊은 밤 산 속에서 무언가를 쫓는 표범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지형을 따라 흔들리며 달린다. 그 흔들림, 그 길의 모양이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원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바늘이, 이 환상적인 전체 여정 중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는 언제나 확실하게 보인다.
LP에 새겨진 선들이 사실은 음악의 진동이 새겨진 미세한 골짜기들이었고, 그 골짜기들을 따라 바늘이 달리면 음악이 증폭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인 사실들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음악이 재생되는지 궁금했는데 알게 되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바늘의 골짜기 여행이 더 애착이 간다.
2. 카세트의 추억
먼저 카세트의 생김새에 대한 예찬이다.언제 봐도 대단한 디자인이다. 손에 기분좋게 잡히는 절묘한 크기와 두께, 둥글게 마감된 네 모서리, 가운데 나 있는 작은 창문, 그 안에 커튼처럼 감겨 있는 반짝이는 흑갈색 테이프. 손가락 끝이 살짝 들어가는 두 개의 동그란 구멍 안쪽에는 앙증맞은 톱니가 여섯 개씩 달려 있다. 케이스를 열고 꺼내는 동안 안쪽의 부품들이 달그락 흔들릴 때, 플레이어에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갈 때, 찰칵 문을 닫을 때, 달칵 버튼을 눌러 재생하고 되감을 때… 모든 순간 모든 감각이 이 정도로 만족스럽게 설계된 물건이 또 있을까. 지금은 바이닐로 음악을 듣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물건 자체로 제일 좋아하는 건 평생 카세트테이프일 것이다.
카세트에 대해서 이보다 더 애착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른데, 카세트는 내구성이 떨어져서 오랫 동안 갖고 있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는 점에서 지은이처럼 찬양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내가 듣고 싶은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테이프에다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카세트 테이프도 꽤 많이 갖고 있었다. 이사 다니면서 하나둘 처분하다 보니 지금은 별로 없지만.....지은이도 나와 같은 추억을 얘기한다. 공테이프에 음악 녹음하기.
나는 공테이프를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을 직접 녹음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또래나 조금 더 나이 든 사람들은 비슷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디제이의 멘트가 노래의 전주와 후주에 섞이지 않기를, 광고 때문에 노래가 일찍 끝나지 않기를, 노래가 생각보다 길어서 남아 있는 공테이프의 수록 시간을 넘겨버리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그렇게 여러 곡이 쌓여 한 개의 테이프가 무사히 완성되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언제든 그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테이프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즐거웠다.
LP를 사도 카세트 테이프는 또 필요했다. 나의 음악, 나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것. 그래서 라디오를 들었다. 전영혁의 25시의 데이트, 황인용의 영팝스.... 특히 전영혁의 라디오 방송은 1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너무 졸려서 녹음만 누르고 잔 다음에, 다음 날 학교 갔다 와서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면서 좋은 음악들을 공테이프에 옮기면서 나의 리스트를 쌓아갔다. 라디오의 음악이 잘릴까? 멘트가 섞일까 아슬아슬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음악들을 소중히 담았다.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이었고, 시간을 들였던 시절이고, 기다리면서 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음악들에 대해서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편하지 않으니까..... 그 때 알게 된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이 Saint Just, City, PFM, Museo Rosenbach 등이다. 그 시절에 하는 학교와 음악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친구도 음악 듣는 친구들 뿐이었고.....
그리고 그 소중한 음악들을 나누기 위해서 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서 선물하기도 했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만들어서 선물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 그 아이를 보면 생각나는 노래들을 적절히 섞었다. 물론 받기도 했다. 세상 어떤 선물보다도 그것을 주고받는 게 좋았다. 믹스테이프 선물에는 받는 사람을 떠올리며 음악을 들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90분짜리 테이프를 꽉 채워 녹음하려면 90분 동안 나도 그 음악을 들어야 한다. 중간에 뭔가 잘못되면, 예를 들어 녹음 중에 시디가 튀거나 테이프가 씹히거나 하면 멈추고 뒤로 감아서 그 곡의 녹음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슬렁슬렁 문제집을 넘기며 앉아 있지만 정신의 대부분은 테이프에 가 있다. 내가 들으려고 만들 때도 그런데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라면… 이때는 문제집을 볼 수도 없다. 완성된 90분짜리 테이프를 쭉 들으면, 살짝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것을 만들던 90분 동안의 설렘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른다. 반대로 내가 선물 받은 테이프를 들을 때는 그 아이의 그 시간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 들어 있는 모든 노래들이 나에게는 평생 나를 향한 그 아이의 노래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재수할 때까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 친했던 친구들에게 카드하고 테이프를 선물했는데, 음악 리스트는 그 친구에 맞게 다르게 선곡했고, 대략 12월 초부터 녹음 작업을 해서 10개~12개 정도 만들었으니까 보름 이상은 걸렸던 것 같다. 중간중간에 DJ처럼 마이크를 잡고 멘트도 하고, 노래 소개도 하면서 녹음했다. 지은이의 말대로 그 테이프를 만들 때에는 그 시간 동안 고스란히 그 음악을 들어야 하고, 들으면서 테이프를 받고 음악을 들을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설레고, 기쁘고, 재미있고, 뿌듯했던 것 같다.(이 블로그 글을 쓰면서 듣는 음악은 Wishbone Ash의 Everybody Needs a Friend이다.)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다. 너무 오글거린다.
3. 지금은.
학창 시절 모았던 LP판은 500여 장이 조금 넘는데, 결혼할 때 공간이 없어서 갖고 오지 못해서 여전히 본가에 있다. 그리고 테이프들은 많이 없어졌지만 지금도 책장이나 서랍 속 어딘가에 그 때 만들었던, 혹은 그 때 들었던 테이프들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 집에 여유 공간이 생기면 LP도 갖고 오고, 턴테이블도 구입해서 다시 듣고 싶은 꿈이 있다. 아내는 싫어하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추억 속에 빠졌고, 유튜브에서 그 때의 음악들을 찾아서 핸드폰에 넣어놓고 듣고 있다. 차에서 그 음악을 아내에게 들려주었더니 "올드해"라고 말한다. 나의 추억은 올드하지만 그래도 좋다.'행간의 접속 > 에세이/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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