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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7] 노모 포비아: 디지털과 단절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25. 8. 26. 23:49
책이름: 노모 포비아
곁이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지은이: 만프레드 슈피처
옮긴이: 박종대
펴낸곳: 더난출판
펴낸때: 2020.03.(전자책)
제목인 '노모포비아'는 모바일 기기가 없을 때 느끼는 공포감'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이 없으면 거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공포증이 생긴 것 같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마트폰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주장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앞에 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자'라고 하면서 요약해주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 부분들만 발췌해서 요약해 보았다.
1장에서는 스마트폰의 폐해를 요약 정리해 놓았는데, 사실상 뒤에 이어서 나올 내용들을 미리 제시하고 있다.정리해보자. 스마트폰의 사용은 수백만 명을 조사한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 우리의 건강, 교육,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심지어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민주주의적 토대까지 위협한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감정과 의견뿐 아니라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진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깊게 확산되는 가짜뉴스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의견의 극단화는 비록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디지털 기업들의 사업 모델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지금껏 스마트폰에 대해선 기술 영향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유례없는 규모로 광고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시달리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논의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민주주의적 토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들의 영리 추구에 무비판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다.제2장에서는 스마트폰이 근시를 유발하고 그 폐해를 정리하고 있다.
정리해보자. 근시는 눈의 발달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멀리 보는 일이 너무 적어서 생긴다.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야외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고, 게다가 주로 디지털 미디어와 접촉하며 지낸다. 그 기기들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이 기기는 디지털 미디어들 가운데 가장 화면이 작기 때문에 눈에 가장 가까이 대고 봐야 한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이미 오래전에 전염병의 수준에 도달한 근시의 증가가 그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행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늦어도 30년 뒤에는 이 전염병이 대유행병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의 추세로는 그때쯤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근시에 걸릴 거라는 말이다.
제3장에서는 스마트폰은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옆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다.
정리해보자. 스마트폰은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침해한다. 정신병리학에서 ‘사고 장애’라 부르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에 의존적일수록 장애는 더 커진다. ‘이 물건’을 그냥 꺼두거나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놓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아예 다른 방에 갖다 놓는 것이 좋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 생겨난다.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타인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마트폰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어린 학생이건 최고 경영자건 할 것 없이!
공감한다. 스마트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고, 너무 멀리 둘 수도 없고......
제4장에서는 스마트폰이 부모와 자식 관계에 주는 악영향을 정리한다.전체적으로 이 연구는 디지털 미디어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여러 형태로 뚜렷이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디지털 미디어는 아이들에게 문제 행동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부모에게 스트레스를 일으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방해를 더욱 촉진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부모의 스마트폰 사용과 아이의 문제 행동 사이의 이런 악순환은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명확하게 확인됐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안 사줄 수도 없고, 딜레마다.
제5장은 문화 영역에서 자연 관련 단어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문화 영역에서 자연 관련 단어가 사라지는 현상은 자연에 대한 실제적인 거리감을 반영하고,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잠재적 이익 감소 및 환경 친화적 입장과 행동 방식의 촉진을 위한 가능성의 상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앞서 설명했듯이 자연 생활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미디어화로 인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두 번째 이유로 현실적 유행으로서의 문화와 우리를 규정하는 요소로서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악순환을 언급한다.자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도시화 때문이기도 한데, 도시화가 결국 디지털화이니까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제6장은 건강, 교육, 공감, 의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장과 달리 구체적인 예시를 들고 있어서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디지털 미디어가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건강과 교육 측면 말고도 두 가지 영역이 더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감과 의지 형성이 그것이다.
공감은 걸음마나 말하기처럼 사람들에게서 배운다. 수많은 개별적 경험으로 습득한다는 말이다. 사회적 행동은 남들과의 접촉을 통해 배운다. 특히 또래와의 교류로 가장 많이 배우고, 가끔 어른들의 가르침이나 감독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다만 디지털 미디어로는 공감능력을 배울 수 없다. 수년 전에 발표된 연구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여준다. 매일 디지털 미디어를 많이 소비하는 아이일수록 어른과 친구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제4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의지 형성도 습득되는 요소다. 얼핏 보기에 이 말은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의지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인데 이것을 어떻게 배운다는 말일까? 록 음악가이자 작가인 우도 린덴베르크(Udo Lindenberg)는 말한다. 우리는 걸음마와 말하기처럼 수많은 시도와 되풀이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우리는 반복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이어 그것을 실제로 함으로써 욕망,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배운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탑을 쌓고, 나무에 기어오르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아이들은 일단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이어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이룬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방금 언급한 사례들에서 아이들은 노래와 탑 쌓기, 나무 타기, 그림 그리기, 축구하기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런저런 것을 실행함으로써 그때마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음을 배운다. 스마트폰은 이런 의지 형성의 과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방해한다.정말 스마트폰에 빠져 있으면 의지와 욕망이 자기 안에서 나오지 않고 스마트폰에 의해 유도된 것들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의지와 욕망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결국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제7장에서는 스마트폰과 우울증에 대해 언급한다.스마트폰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세간의 주장과는 달리 이 연구 결과들은 정반대 상황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고, 지속적으로 우울하게 만들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을 높인다.
제8장에서는 싱글화와 스마트폰의 부정적 영향을 이야기한다.
싱글화는 개인에게든 사회에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트렌드에 대한 다양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와 새로운 고민들로 이 상황을 바꾸는 토대가 마련되길 희망한다. 전염병학과 환경 의학이 이전에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많은 이득을 안겨준 것처럼 오늘날의 신경정신학도 ‘사회적 뇌’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그중에서도 특히 스마트폰은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주기보다 오히려 갈라놓을 때가 더 많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파편화시킨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기이지만,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의 질이 끈끈하지 않다.
제9장에서는 유령진동의 경고를 이야기한다.스마트폰의 급격한 확산과 위험 및 부작용을 고려하면 유령 진동도 확대경으로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증후군은, 다시 말해 유령 진동의 병적 현상은 몇 년 전 페이스북 우울증이나 스마트폰 사고 장애, 또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의 디지털 치매 같은 심각한 장애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지금은 유령진동을 단순한 착각으로 생각해서 무심히 여기지만 심해지면 정말 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제10장은 포켓몬 고와 같은 문화 제작자의 책임감 필요하다고 말한다.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 이득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마음대로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직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좋지 않은 음식이건(음식 문화에서 이런 음식은 점점 입지를 넓혀 가고 있다), 좋지 않은 행동이건(아이들의 육체적 비활동성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아니면 좋지 않은 동영상 콘텐츠건(이제는 돈이 된다면 누구나 이런 콘텐츠를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퍼뜨린다) 간에 말이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늘 규범의 역할을 해왔다. 문화란 인간이 현재 경험하고 행동하는 것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건강해질 수 있다. 또한 교육을 촉진하고, 사회성을 높일 수 있다. 건강과 교육, 사회적 행동을 해치는 문화 상품, 특히 그것이 미래 세대와 관련된 것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제11장은 탈진실이라고 제목디 되어 있는데, 스마트폰과 관련된 것은 가짜뉴스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 책 전체 맥락에서 봤을 때 좀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제12장은 IT 기업들의 폭력적인 사업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제13장은 디지털화를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고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이 책은 문화 비평도 아니고 진보를 저지하려는(어차피 실패할) 시도도 아니다. 필자에게 중요한 건 오히려 다음 생각이다. 디지털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디지털화를 무비판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결코 인간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 어떤 혁신이든 그에 따른 바람직한 영향과 위험 및 부작용을 저울에 올려놓고 정확히 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부터 먼저 하고, 나중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따지겠다는 것은 일단 약부터 팔고 나중에 그게 환자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겠다는 것과 같다. 냉정하게 말하면 부작용에 대한 불안도 좋지 않다. 그런 불안감에 매몰된 환자는 애초에 약을 먹지 않아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 없는 작용은 없다. 그렇다면 이 두 측면, 즉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도 그렇다. 나도 언젠가부터 디지털이 대세가 될테니까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인데, 그렇다고 하나하나 면밀히 다 살펴보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고, 따져야 할 것들이 많아서 또 뒤쳐질 것 같다는 악순환이 생긴다. 정말 디지털과 단절해도 나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제14장은 공짜가 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언급한다.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지만,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사업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극단주의, 가짜뉴스 유포, 개인 정보 탐지, 정치적 조작을 체계적이고 자동적으로 강화한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사업 모델, 즉 ‘이 모든 게 공짜’라고 주장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제 우리는 이 모델을 계속 허용해야 할지, 허용하고 싶은지, 허용해도 괜찮은지 깊이 고민할 시점에 왔다. 진실과 자유, 사생활, 우리의 시간, 민주 사회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사업 모델은 바뀌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겉으론 공짜 같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공짜가 사실은 공짜가 아니다.
제15장은 현대인들의 지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게 스마트폰 때문이라거나 혹은 다른 무엇때문이라고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 이 장은 여기에 왜 들어왔지? 책 전체 맥락과 약간 먼 느낌이다.
읽으면서 멈칫멈칫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특히 디지털과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우리가 못 느껴서 그렇지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우리는 디지털의 폭풍, 디지털 폭력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행간의 접속 > 교육/청소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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