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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1] 소년을 읽다: 소년원에서 책 읽기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22. 7. 8. 20:01
책이름: 소년을 읽다
지은이: 서현숙
펴낸곳: 사계절
펴낸때: 2021.12.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소년원에 있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이야기이다. 소년원 아이들이라고 하면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와 있을테니 말도 잘 안 듣고, 폭력적이고, 버릇없고, 반항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텐데, 책을 읽어보면 그런 면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소년원의 국어 수업이니 일반 학교의 국어 수업처럼 내신이나 수능을 신경쓸 필요는 없어서 책을 가져와서 읽는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 처음에는 책을 건성으로 후딱 읽어서 같이 소리내어 읽었더니 서서히 책에 빠져든다. 재미있는 책을 선정하기도 했지만 갇혀 있는 상황에서 지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책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에 너무 빠져서 작가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이 초청한 작가에게 무례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하지만 아이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조심하려고 애썼고, 함부로 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최소한의 체면을 차리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작가를 모시고 와서 아이들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그 때의 느낌을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에는 농도가 있다. 어떤 시간은 묽은 채로 주르르 흘러,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이 없다. 어떤 시간은 기운이 깃들어 찐득하다. 짙고 끈끈하다. 그런 시간은 삶에 굵고 뜨거운 자국을,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 흔적을 남긴다. 좀처럼 잊지 못하게 마련이다. 오늘을 통과한 아이들의 영혼에는 어떤 자국이, 흔적이 그려졌으려나. 아마 전과 다른 무늬가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들려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국어 수업을 듣지 않는 다른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독서동아리도 조직하게 한다. 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과 같은 방을 쓰는 학생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읽고 싶으면 읽으라고 한다. 대부분 무료하기 때문에 읽는다. 그럼 저녁 식사 후 적당한 시간에 읽은 것에 대해서 간략히 얘기를 나누자고 한다. 발제도 필요없고, 대부분 돌아가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이유를 얘기하는 식이다. 더 할 말 있으면 더 하고..... 이런 식이면 다른 친구의 책에 흥미를 느껴서 자발적으로 돌려 읽고, 얘기를 나눈다. 그것을 할 때마다 간략하게 일지로 적으면 끝. 동아리 활동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아이들은 국어 수업을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들어오고 나간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면 나가고, 다른 자격증 실기를 위해 나가고.... 이렇게 들고나는데, 여름의 작가와 대화에는 현재 수업을 듣는 학생 이외에 이전에 들었다가 지금은 안 듣는 학생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현재 학생과 이전 학생 간의 서열 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소년원 안이기 때문에 직접 치고받는 서열 다툼은 아니고, 누가 더 버릇없고, 반항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센 척을 하기 위해 약한 애를 누르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그것을 작가님을 모셔둔 상태에서 한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긴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는 내내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고정관념은 뿌리가 깊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의 뿌리는 깊고 집요하다. 그 뿌리가 내 몸의 신경 어디쯤까지 닿아 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시를 잘 외울 때, 책을 잘 읽을 때, 나에게 정성 들인 편지를 건넬 때, 나의 마음은 많이 흔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흔들림은 감동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닌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데서 생긴 충격 말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편견과 마주쳤고, 그렇게 흔들려온 봄, 여름, 가울이었다.
아이들에 대해서 갖는 감정의 근원은 고정관념과의 비교를 통해서 생성된 것이다. 고정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감정은 별로 없다는 것. 독자인 나도 그렇다. 아이들을 이렇게 이끌고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상 깊다고 생각하는 것도 고정관념과의 비교를 통한 인상깊음이다. 고정관념이 없이 아이들을 본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수업, 기억, 추억을 간직하고 싶지 않아하고,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런 것을 남기면 소년원의 기억이 떠오를테니까. 그렇게 봤을 때 선생님과의 수업을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동시에 삭제하고 싶은 시간 속의 일부이기에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추천사에 문화학자 엄기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글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만들 글과 이야기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이들의 삶에 눈을 반짝이는 글과 말에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들이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사랑하는 많은 글과 이야기가 사실은 좁디좁은 세계의 한 줌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게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책을 우리 세계에 가두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 서현숙이 소년원에서 소년들과 책을 읽으며 한 일은 소년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책과 이야기를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로부터 책을 소외시킨 현상은 소년원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실존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소년원 아이들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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