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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3] 수능 해킹: 수능과 사교육의 민낯
    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25. 7. 26. 15:35

    책이름: 수능 해킹
    곁이름: 사교육의 기술자들
    지은이: 문호진, 단요
    펴낸곳: 창비
    펴낸때: 2024.06.

    수능과 사교육, 그리고 공교육의 문제를 분석하는 책이다. 지금의 수능이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목적을 정말로 잘 수행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너무 많이 빗나갔고, 거기다가 교육적이지도 못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미시적인 원인으로 사교육과 평가원으로 대표되는 정책 집단의 문제, 거시적인 원인으로는 경쟁 중심의 사회를 들고 있다.

    읽으면서 사교육과 수험생들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라고 할 정도로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느끼게 되었다. 시대인재라는 대치동 학원이 어떻게 성장하면서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는지, 인터넷 강의가 어떻게 서울과 비서울의 격차를 벌리게 되었는지, 수험생 커뮤니티가 수험생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사교육 업체의 하위 노동자들은 어떻게 소모되고 있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중심으로 기억할 만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수능에 대해서

    수능 국어 중 비문학 독서 영역의 문제들은 어렵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고등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을 정도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수능이 여러 해 시행되어 오면서 사교육 업계에서는 수능을 분석했고, 평가원은 이 분석에 변화로 대응했고, 사교육 업계는 다시 변화를 분석했고, 평가원은 다시 변화로 대응했고.... 이렇게 변화와 분석이 반복이 되다 보니 수능이 산으로 간 것이다.

    앞서 비문학 세트의 설계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반교육적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깊은 의미와 총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단어와 단어가 맺는 관계를 피상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를 권장하고 있으니까요. 명목상으로는 아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편 국어 비문학 파트로 예시를 들었
    을 뿐이지,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방식의 반교육성이 거듭 나타납니다. 수학도, 영어도, 과학탐구와 사회탐구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 점에서 수능은 반교육적인 시험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이 책에서는 퍼즐식 사고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퍼즐식 사고란 추리가 왜곡된 형태로서, 우리의 인지과정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온전한 전부는 아닌 정신 활동입니다. <중략> 추론의 목적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로 추리의 방법론만을 같고 닦기란 본질적으로 스도 쿠퍼즐 연습과 동등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목적 없는 추리, 형 식만이 존재하는 추리를 퍼즐식 사고라고 부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수능의 문제들의 유형을 분석한 후, 이 유형을 반복 훈련하여 시간 내에 풀어서 고득점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여 고득점을 맞으면 그게 정말 실력이고, 능력인가 의심스럽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을 사고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다른 논점이 발생합니다.  '공식을, 접근법을, 사고방식을 외워서 사고하는 것이 진짜 사고인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퍼즐식 사고와는 궤가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형식적인 차원일지라도 기호를 조작하는 데에는 주체적인 정신활동이 필요한 반면, 접근법 자체를 외울 경우 그조차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이것을 사고의 외주하라 부르겠습니다.

     

    이렇게 수능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을 평가원도 알지만 평가원은 국무조정실 산하에 있으면서, 교육부로부터 수능을 위탁받은 기관이기 때문에 수능을 개혁할 권한과 능력이 없다. 결국 정치권이 개혁을 해야 하는데, 5년짜리 권력기관이 무얼 할 수 있을까? 국가교육위원회가 있지만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평가원은 매년 수능이 끝나면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어려우면 불수능이라고 비난받는다. 물수능, 불수능에 대해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시험의 난도가 올라가는 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형식의 난해함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과 논리의 깊이 매문이지요. 그렇다면 현행 수능은 어떤 갈래에 속할까요. 2장과 3장에서 거듭 살폈듯이, 전자입니다. 평가원은 복잡한 퍼즐식 문항을 도구 삼아 점수 분포를 조절하고 있지요. 등급 커트라인에만 주목하면 '약한 불수능'과 적당한 난이도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퍼즐을 걷어내고 그 뒤편의 지식과 논리를 들여다보면 더없이 쉬운 수능이 된다는 겁니다. 즉, 지금의 수능은 '불수능'일지 몰라도 '어려운 수능'일 수는 없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언론은 입시 전문가의 입을 빌려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늘 얘기하지만 난이도만 해결되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떠드는 언론도 문제이다. 난이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수능의 반교육적 특성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삼고 있다. 그러니 평가원이 난이도 문제에만 대응하느라 힘을 다 빼고 있는 것이다.

    2. 사교육에 대해서 (시대인재를 중심으로)

    2000년대의 수능을 준비하는 방식과 2020년대의 수능을 준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수능이면 다 같은 수능이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느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사교육의 패권이 바뀌면서, 수능 콘텐츠 시장이 바뀌면서 달라지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수능 콘텐츠 시장은 꽤나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참고서와 문제집뿐이었고 개별 선택지도 적었으니까요. 예컨대 10년 전의 학생들이 수학 문제집을 산다 치면, 보통은 진학사의 '블랙라벨 시리즈'나 좋은책신사고의 '센 시리즈' 중에서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이전 세대라면 '수학의 정석'. 같은 참고서와 '자유자제수학','디딤돌 따로 수학' 등의 문제집을 기억하실 테고요. 당시의 문제집 시장은 제도권 교육출판사 위주로 짜인, 소품종 대량생산 시장이었던 셈입니다.
    지금은그 반대입니다. 개인 저자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콘텐츠의 형식과 종류가 크게 다양해졌지요. 자연스레 공부법도 달라졌습니다. 불친절하고 딱딱한 참고서를 씹어 삼켜야 하는 어려움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려움은 같을 수 없으니까요. 요컨대 과거의 수험생들은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해체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반면, 지금의 수험생들은 부위별로 나뉜 고기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골라 가져가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최상위권을 위한 참고서를 표방한 '숨마쿰라우데 시리즈'의 등장부터라고 한다. 오르비는 수험생 커뮤니티 자이트이다. 운영자가 3수를 통해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이후에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이에 뜻을 같이한 수능 고득점 수험생들이 합류하여 인강 강사 평가, 콘텐츠 평가, 공부 칼럼 등에 여러 수험생들이 공감하여 확장하게 되었고, 교육출판과 인터넷 강의, 과외 중개 등 영리 사이트로도 변화하게 되어, 스타 저자, 스타 강사를 배출하고, 입시 컨설팅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고, 초반에는 서버 비용도 없을 정도였지만, 커뮤니티의 정보를 바탕으로 책이나 문제집을 써서 수익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대학생이 된 예전 고득점 수험생들이 수능을 철저히 분석하여 기존 출판사와는 차별화된 실전 모의고사를 쓴 것이 대박을 터뜨리고, 그 이후로 여러 저자를 발굴하여 수능 콘텐츠를 제작해서 입시 출판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이어받은 학원이 대치동의 시대인재 학원이다.

     

    시대인재학원은 '단순 학원'이 아닌 '교육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대치동에 등장했고, 이런 기획의 중심에는 자체 실전모의고사 브랜드인 '서바이벌 모의고사'와 소속 출제팀이 있었습니다. 전문 저자를 육성,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또한 콘텐츠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강사는 강의만 하면 되는' 환경을 갖추겠다는 것이 시대인재학원의 포부였지요. 그런데 '강사는 강의만 하면 되는' 환경이란 정확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원이 자체 콘텐츠와 커리큘럼을 제공하므로 누가 강사로 오더라도 엇비슷한 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며  그만큼 강사 개개인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환경입니다.

     

    스타강사에 의존해서 학원이 강사에 끌려다니는것이 아니라 신규 진입하는 학원들도 콘텐츠를 무기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충분한 관리 역량을 갖추었다는 전제하에 콘텐츠에 주력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학원 모델의 상위호한 격입니다. '특출난 개인을 경쟁 학원에 빼앗겨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구조적으로 방지할 수 있거니와, 어떤 강사를 데려다놓더라도  최소한도의 강의 품질과 학원 특색이 유지되니까요. 또한 시장에 막 진입하는 시점의 콘텐츠는 '스타 강사를 영입하지 않더라도 대형 학원들과 싸워볼 만한' 발판으로 기능하고, 궤도에 오른 다음부터는 수익 증대의 핵심이 됩니다. 강의와 콘텐츠를 함께 판매하는 만큼 교재비에서도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강점은 시대인재학원의 매출 성장을 통해 여실히 증명됩니다.

     

    그러다 시대인재학원이 대치동의 패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발생하는데, 2014학년도 수능 제도의 변화이다. 수능 탐구 응시 과목이 4개 과목에서 2개 과목으로 축소된 것이다. 4개 과목 시절에는 과학 탐구의 1에서 잘 맞으면 되니까 2에서는 좀 못 봐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4개 과목이라고는 하지만 2개 과목 1,2를 하면 부담도 적다. 그런데, 2개 과목만 응시하라고 하니까 2과목에 자신없는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서 진짜 초고득점자들끼리만 남게 되었다. 거기에 2과목을 강의해주는 학원도 별로 없었다. 학원 입장에서는 수요가 적으니 쉽게 개설할 수가 없던 것이다. 그 자리를 시대인재학원이 비집고 들어갔고, 초고득점자 수험생들 대다수가 여기에 몰렸다.

     

    그런데 초고득점 수험생이 모이면 그 자체로 입시 결과가 보장됩니다. "어떤 학원에서 올해 의대를 몇명 보냈다더라" 식의 입소문이 예약된 셈이지요. 마침 실전모의고사 중심의 기존 수학 강의도 호평을 받던 차입니다. 강의가 좋고 입시 실적도 훌륭하다면. 게다가 그런 방식의 강의를 제공하는 곳이 하나뿐이라면 수험생은 자연스레 몰리기 마련입니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세를 불린 시대인재학원은 2017년에 재수종합반(2018학년도 수능 대비반)을 설치하고, 2020학년도 수능에서 단 2년 만에 강남대성학원을 실적으로 누르며 대치동의 패권을 거머쥡니다.

     

    3. 수능 콘텐츠에 대해서 (인터넷 강의를 중심으로)

     

    2020년대 콘텐츠 위주 학습이 대세가 된 시기에는 팔 수 있는 상품이 대폭 늘어났고, 그 많은 상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학원과 강사의 안내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서 사교육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그리고 학원과 강사, 수험생을 연결하는 중심에 수험생 커뮤니티가 자리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되면서 서울과 비서울의 격차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장 강의는 현장성과 동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장 강의에서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개인화할 수도 있다. 인강은 이런 부분에서 뒤쳐진다. 이런 사소한 차이들이 쌓여서 결국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거기다가 인터넷 강의는 지방을 죽인다. 인터넷 강의로 인해서 지방의 수능 학원들이 없어졌다. 수능 학원들이 내신 전문 학원으로 대체되었고, 지방에서 유통되던 수능이나 입시 정보가 경쟁력을 잃고 사라졌다. 결국 지방 일반고 학생들은 서울권 수험생들이 사교육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동안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모르고, 알더라도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거나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나고 자란 지역에서는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도움을 서울에서는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제공받는 상황입니다. 자신의 진로가 걸린 중대사 앞에서, 이런 경험을 한 지방 학생이 출신지를 금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물론 이들이 그러한 소외의 경험을 통해 서울과 비서울의 격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회구조에 주목한다면 좋겠습니다만, 인간의 마음은 대개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지요. 당장 자신이 부조리로 인한 피해를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수험생 커뮤니티의 여론은 지방 학생들의 위화감과 억울함을 분노로 바꾸어준다. 지방에 대한 혐오 콘텐츠에 반복 노출되고, 이를 내면화하면서 출신지를 미워하고, 수도권 집중을 절대적인 질서로, 각자도생을 당연한 원리로 여기에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지방 소멸을 가속화시키고, 한국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4. 사교육 내부의 노동

     

    교육출판상에서 교재 제작은 학위를 갖춘 전공자들에 의해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반면에 수능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고득점을 거둔 N수생과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프리랜서 신분으로 건당 계약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을 한다. 이들이 취미의 영역에 있을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제와 노동의 영역으로 오게 되면 불안정 노동의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또다른 노동의 사각지대에 '새끼 강사'라고 불리는 강사 조교들이 있다. 동영상 녹화, 문제 첨삭, 손풀이, 답변달기 등의 주어진 업무 외에 추가적으로 전달되는 업무까지 싹 다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급여는 과외 선생만 못하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강사의 각종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 검토 업무를 병행하면서 사교육비를 벌고 산업의 하부 구조를 지탱한다. 학업과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무급 초과노동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어차피 수능 볼 것이고, 실전모의고사 문제 검토하면서 공부도 하면 좋지 않냐고 하면 결국 하게 된다.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강사님이 부탁하는 건데 감사히 수행한다.

     

    한편 수험생들에게 각인되는 인상적인 콘텐츠를 만들면 스타 저자로 자리매김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훌륭한 문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또 부족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커진 상황이라면, 강사와 출제팀의 모든 행동이 평가와 선택의 대상이 됩니다. 고품질 콘텐츠는 기본이고, 추가적으로 주목을 이끌어낼 만한 퍼포먼스가 요구되지요. 좋은학습 칼럼을 쓰거나, 모의고사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해설을 올리거나, 문제 양을 넉넉하게 만들어주거나, 다른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음을 강조하거나, 댓글로 소통하는 모든 일이 수능 콘텐츠 시장의 생산자로 살아남기 위한 과업이 됩니다. 심지어 세련된 표지를 갖추거나 눈에 띄는 이름을 짓는 것까지도요. 그 모두가 '다른 콘텐츠가 아니라 이 공급자의 콘텐츠를 택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부단히 웅답하며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콘텐츠 생산에 소모된 채 신규 진입자에게 밀려 사라지고 성공해서 살아남은 사람도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양과 질적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 밑에 보조 저자들을 갈아넣어야 하고, 자신도 갈아넣어야 한다.

     

    수능 콘텐츠 산은 그 종사자의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필수적인 감각이 둔해질 공산이 큰 분야이고, 따라서 원활한 생산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젊음이 소모될 필요가 있는 분야입니다. 개개인의 악의나 착취적 의도가 결부되지 않더라도 구조로 인해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매순간 승리하는 주체가 있는데, 대형학원과 수험생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낡은 부품을 갈아끼우면서 생존해 나가고 있다.

     

    5. 수험생 커뮤니티에 대해

     

    수험생 커뮤니티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곳이 아니다.

     

    수험생 커뮤니티라는 신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공부의 문화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들의 규범은 사교육 종사자에 대한 선망과 인기 대학, 의대 선망을 대전제로 삼으며, 이들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둘 중 무엇이 선행하든 간에 천국과 구원을 믿는 사람들은 예언자도 믿으니까요. 또한 예언자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그 예언자가 설파하는 교리는 더욱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지요. 심지어 이 예언자들은 '과거 인기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미 구원받은 존재로 인식되기까지 하며 이는 다시 구원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언자, 즉 사교육 종사자를 중심축으로 자기완결성을 지닌 순환이 성립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교육 종사자들은 커뮤니티에 학습과 입시 뿐만 아니라 소소한 사생활도 공유하여 정서적 일체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수험생들에게 의대, N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팽창을 유도한다. 그 안에서 커뮤니티는 수능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고유한 등급을 부여하여 선망과 배척을 유도한다. 이러한 기제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거나 있더라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결국 대학교 고학년이 되면 수험생 커뮤니티를 떠나고 새로운 고3과 N수생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이들 대다수는 공부 이외의 삶의 방식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모두들 경쟁 압력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불안도 큽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공부 이외의 선택지를 모두 잊어버리며, 그럴수록 사교육 종사자를 믿고 따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에 따른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즉 '자격 없는' 존재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자 하지요. 최종적으로는 단순하고 말초적인 정동이, 불안과 분노를 핵심으로 삼는 문화가 수험생 커뮤니티를 지배하게 되고, 이것은 열망의 다른 일면이기도 합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마무리를 대신하여)

     

    지은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위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부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야 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단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이에 기반해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나가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학생들 스스로가 입시를 '한정된 자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대학 공부의 준비 단계이자 실질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평가, 경쟁 방식을 정상화함으로써 학생들이 "나는 실제로 중요한 내용을 배우고 있구나. 내가 노력해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학문적 이해도 그만큼 깊어지겠구나"라고 느낄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교육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인상적인 내용은 교사의 업무를 줄임으로써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서 교육 자원 모듈화를 언급한다.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표준화된 교육 자원들을 선택 개량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다. 교사의 역량이 집중될 필요가 없는 곳에 낭비를 하지 말자는 것도 포함된다. 

     

    진짜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서 경고를 한다. 

     

    인상비평과 함께 하는 환상: 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이 아니라 현실의 동역학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시 확대가 문제라는 환상: 당장 시행할 수 없는 목표를 주장하면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고 곪아간다.
    편향으로 인한 환상: 열정 있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무기력하고 타성에 젖은 교사들도 실제로 있다. 이들도 최소한의 대비가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기술 발전의 환상: 사회와 인간을 도외시하고 기술 발전에만 주목한다면 실패하게 되므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통섭이라는 환상: 융합,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과정 설계와 충분한 연수가 선행되어야 한다.

     

    위에 요약에는 쓰지 않았지만, N수생 문제, 대학들의 이기주의 문제도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500쪽에 달하는 책을 이틀 정도에 다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고 많은 내용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내가 몰랐던 사교육과 수험생 커뮤니티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우리 교육의 난맥상이 굉장히 자세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천과 행동인데 이 부분은 여전히 물음표이다. 한국 교육에 대한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으니까 폭넓게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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