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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9]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그리고 인간을 위한 기술행간의 접속/자연과학/환경 2025. 4. 21. 00:58
책이름: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
지은이: 김명진
펴낸곳: 궁리
펴낸때: 2019.11.인공지능이 세상을 다 바꾸고 있는 시대에 너무 빨리 변화가 이루어져서 10년 후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때일수록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을지 몰라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 살펴보는 기술사 책을 읽어 보았다. 너무 어렵지 않고, 적당히 이해할 만한 지식이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고, 기억할 만한 지식이나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1. 인쇄술
인쇄술이 도입되지 전에는 책도 귀했고, 종이도 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를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기억에 의지해야 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억법과 암기술이 고도로 발전했고(주로 연상 작용을 이용해 외우는 방법이 쓰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깜짝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당시에는 책으로 수백 쪽에 달하는 분량의 서사시를 줄줄 외우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지 안항ㅆ다. 심지어 1,000개의 단어를 딱 한 번만 듣고 바로 되풀이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기억에 의존하는 구술 문화에서는 공동체에서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들의 말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그들은 오래 살았고 다른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길고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디지털로 정보를 주고받는 현대에는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줄어서 뇌의 기능도 같이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변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인쇄소와 인쇄업자는 새롭고도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쇄소는 그저 책을 찍는 기술자들이 땀 흘려 일하는 장소가 아니라,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 교류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직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책을 구하려는 대학교수, 성직자, 천문학자, 의사 등 지식인들이 드나들었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자, 기술자, 미술가(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고 목판이나 동판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사이의 긴밀한 협동 작업이 이루어졌다. 인쇄업자는 아직 시장이 분명치 않은 첨단 기술 제품(인쇄된 책)을 만들어내는 사업가로서 시장 예측, 자금 마련, 생산 일정 관리, 광고와 판촉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인쇄업을 '최초의 자본주의적 벤처사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쇄술이 발전하면 책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지식이 널리 퍼지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인쇄소와 인쇄업자가 지식 산업의 정점에서 이를 이끌어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또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하나의 책에 대해서 여러 판본이 나오자 토론을 거쳐 어떤 판본이 가장 원본에 가까운지 표준판본을 정하게 되고, 이렇게 지식이 표준화되면서 이전 세대 학자들의 지식 기반 위에 새로운 지식을 쌓아올리는 식으로 학문이 발전한다는 지식의 누적성과 진보의 개념을 믿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책 속에 '고정된' 이전 사람들의 생각에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었고, 그와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독창적인 생각과 연구를 보호하기 위해 저자(author)라는 개념과 저작권(copyright)의 관념이 등장했다. 중세에는 그에 맞는 단어조차 없던 표절(plagiarism)이라는 개념이 생겨나 일종의 지적 범죄행위로 여겨지기 시작한 때도 이 즈음이다.
2. 산업혁명
산업혁명으로 가내수공업이 공장제 공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상인 제조업자들은 공장이라는 새로운 장소를 고안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규모 동력기계를 이용하려면 커다란 건물과 설비가 필요한데, 노동자들의 집마다 이것들을 서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 중 또 하나는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다.
선대제하에서는 상인들이 원재료를 제공하고 완제품을 받아갈 뿐, 그 사이에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불규칙한 노동 리듬 때문에 때로는 정해진 날짜까지 작업을 마치지 못하기도 했고, 사인이 제공한 원재료의 일부를 직공들이 빼돌려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상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었고, 작업 과정을 직접 감독할 수 있는 공장에 직공들을 모아놓고 일을 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된 노동 환경에서 기존의 직공들은 반발했고, 공장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이들의 자리를 새로운 노동력인 아동들로 채우게 되는데, 특히 구빈원에 맡겨진 고아들을 공장 노동자로 활용하게 된다.구빈원들은 경기 악화로 늘어난 부랑아들의 처리에 골머리르 앓고 있었다. 초기 공장의 관리자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고심하던 차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그래서 구빈원과 공장 사이의 계약에 따라 고아들을 수십 명에서 100여 명씩 한꺼번에 먼 시골의 공장으로 실어 나른 후, 여러 해 동안 감금한 채 숙식만 제공하면서 일을 시키는 이른바 구빈원 도제가 초기 공장 노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공장의 규율에 익숙해져서 공장제는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3. 제임스 와트
제임스 와트는 우리에게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실은 약간 빗겨나 있다. 증기 기관을 발명한 것도 아니고, 처음으로 활용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성과를 알리고 퍼뜨리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고, 때로는 방해하는 면모를 보이면서 자신의 것만을 지키려고 하는 측면도 있었다.
1770년대 볼턴과 와트는 새로운 특허에 입각한 발명을 사회에 안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혁신가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독점권을 지키려는 기술적 보수주의자로 탈바꿈했다. 두 사람은 증기기관 개량에 대한 발명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도입을 막으려 애썼고, 고압 증기기관이나 이를 이용한 철도 같은 새로운 혁신들은 와트의 특허가 만료된 후에야 실용화될 수 있었다.
4. 철도
철도의 발명과 보급은 공간을 축소하는 역할을 했는데, 특히 미국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철도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자금도 많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천문학적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업도 동반해서 성장하게 되었다.
철도회사의 자본금은 주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조달되었고, 이러한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뉴욕증권거래소가 1840년대부터 부상했다. 미국의 기업사가 앨프리드 챈들러는 철도회사를 최초의 대기업으로 칭하면서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철도 시대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를 보면 철도의 확산이 금융과 투자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확산되는 철도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철도의 운영 주체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1870년까지 미국에는 수백 개의 철도 회사들이 난립해 있었고, 이들 각각은 자체적으로 철로를 부설한 후 그 위에서 자기 회사 소유의 객차와 화차를 운행했다. 이 회사들은 다른 회사의 열차가 자기 회사 소유의 철도 위를 운행하는 것을 꺼려했다. 또한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전반적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각자 수지맞는다고 생각하는 노선에 철로를 부설해 사업에 나섰기 때문에 철도망의 성장이 체계적이지도 못했고 중복되는 노선들도 많았다.
그래서 지도상으로 철도가 연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회사들이 연결할 수 있게 해놓지 않아서 실제로 철도를 이용할 때에는 각기 다른 회사의 철도를 환승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거기다 회사들은 궤간이 달라서 하나로 통합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전후 재건 과정을 통해 표준궤로 전환하여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철도가 우리의 일상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표준시의 도입이다. 미국은 넓은 대륙이라서 동부와 서부 사이에 시차가 존재했고, 열차의 운행 시간표를 짜는 입장에서는 어디를 기준으로 열차의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을 표시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고, 이용자들도 지금 표시된 시간표가 자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열차 출발 지점의 시간표인 경우도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난국은 표준시를 도입하면서 타개되었다. 1883년 초 미국 철도 회사의 임원들은 몇몇 천문학자들이 주장해온 바를 받아들여 미국 전체를 대략 경도 15도를 기준으로 해서 4개의 시간권으로 나누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1883년 11월 18일 정오에 미국의 모든 철도 종사자들은 자신이 속한 시간권에 따라 시계를 다시 맞추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오를 두 번 맞았고,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시간을 미래로 건너뛰었다. 표준시 도입 후 불과 며칠 만에 미국의 학교, 법원, 지방정부의 70퍼센트가 이를 채택함으로써 철도 표준시의 도입은 철도 종사자만이 아닌 일반 미국인들에게도 광범하게 영향을 미치는 조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철도는 남북전쟁 이후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었다.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출발한 철로는 솔트레이크시티 위쪽에서 연결되어 완성되었는데, 특히 서부 쪽 철도 건설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5. 전신과 전화
전기의 발견으로 전신도 발전하게 되는데,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전신이 다른 수단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상업적인 이익을 높이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1846년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동부 연안 사람들은 기차, 말, 배를 합쳐 일주일 거리에 있던 전쟁터에서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고, 이에 따라 메시지의 전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전신 선로의 부설이 신속히 추진되었다. 선로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완성되었고, 신문들은 전쟁 관련 소식을 실어 판매 부수를 늘릴 수 있었다. 뒤이어 복권 운영자, 증권 브로커, 은행가, 사업가 등이 전신의 유용성을 '발견'했다. 그들은 전신을 통해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새 정보를 얻으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철도회사 관리자들은 철도를 따라 전신선을 부설하면 단선 철도를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전화의 발명도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주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적인 사용이 처음 전화가 나왔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화라는 매체를 이해하는 시각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완전히 바귀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요즘 우리가 전화를 주로 어떤 용도로 이요하는지를 잠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단. 오늘날 우리는 전화를 다양한 실용적 목적으로(음식 주문, 도난 신고, 자녀의 행방 확인 등) 활용하지만, 그럼에도 전화의 주된 용도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의 일상적 대호, 즉 특별한 목적없이 주고받는 '잡담'에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전화는 사교를 위한 매체인 셈이다. 그러나 전화가 도입된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전화를 가설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화회사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초기 전화회사들은 전화를 이전에 있던 전신 서비스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했고, 그런 점에서 가입자들이 전화를 주로 사업 용도로 사용할 거라고 기대했다. 이는 가정에 가설된 전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전화는 주로 가사 조력 수단(가족 간의 긴요한 용건 전달, 의사의 왕진 요청, 경찰 호출 등)으로 이용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전화 회사의 경영진들이 대부분 전신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서 전화의 이러한 사적 용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용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지만 이용자들이 늘면서 신규 가입자가 포화상태가 되자 새로운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사적인 이용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않았다. 간섭할 수도 없었고.....
6. 토마스 에디슨
우리는 에디슨을 전구와 각종 가전제품을 만든 발명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사실 전기의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서 고압선으로 전기를 보내고, 변압기에서 전압을 낮추고, 가정의 콘센트까지 전기가 들어오지만 에디슨이 처음 전구를 만들었던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없었다.
에디슨과 동료들은 전구에 빛을 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품과 요소를 발명하거나 새롭게 만들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발전기, 하나의 중앙 발전소에서 각 가정으로 균일한 전류를 보내는 배전 체계, 가정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 전구를 끼울 소켓, 전구를 만들 때 그 속에서 공기를 빼내는 진공 펌프 등이 그의 발명품 목록에 올랐다. 심지어 과전류가 흘러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퓨 즈나 각 가정에서 사용한 전력량을 측정해 요금을 부과하는 데 쓸 계량기까지 발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에디슨과 연구팀 사람들은 전구만이 아니라 전기와 관련된 시스템 전반에 걸쳐 2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했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다.
그야말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게 대단한 것 같다7. 테일러주의
테일러주의는 공장의 작업 과정 전체를 분석하여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제거하고 필요한 부분들로만 작업 과정을 구성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필요한 과정과 불필요한 과정을 구분하는 일을 노동자가 한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과정의 시간까지 미리 계획했는데, 작업 과정을 스톱워치를 들고 측정하여 평균값을 구하여 시간과 방법을 결정했다. 이렇게 정해진 과업의 양을 수행하지 못하면 급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노동자에 대한 불신과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성과를 내자 주변의 공장으로 퍼져 나갔다.
8. 포드주의
포드주의는 작업 공정을 세분화하고 표준화하여 숙련된 노동자만 할 수 있었던 자동자 조립 과정을 미숙련 노동자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대량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가격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며,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으로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공장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선순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대신 단점도 있었는데, 노동자들은 머리를 쓸 필요없이 기계처럼 단순한 일만 하게 되어 지루하고 고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9. 포스트 포드주의
포드주의의 문제점은 소품종을 대량생사하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하려고 하면 공장을 싹 바꿔야 하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토요타는 전용 기계를 줄이고 범용 기계를 도입하여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였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재고를 남기지 않으면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한을 강화하여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공정의 개선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어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한편 볼보에서는 팀 단위로 생산량을 부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은 팀에서 알아서 하게 한 후 결과도 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을 취하여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확인했고,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러한 생각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행간의 접속 > 자연과학/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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