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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이름처럼 유쾌한 건축사무소
    행간의 접속/건축 2025. 1. 7. 09:06

    책이름: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지은이: 푸하하하프렌즈

    펴낸곳: 미메시스

    펴낸때: 2023.10.

     

    푸하하하프렌즈라는 건축설계회사의 건축 이야기이다. 회사 이름이 보여주듯이 이 회사의 분위기는 유쾌하고 발랄할 것 같다. 글도 유쾌하고 재미있다. 이 책은 이 회사의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관점에서 건축 이야기를, 회사 이야기를, 동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형식도 일정하지 않다. 건축 과정의 힘든 과정을 쓴 글도 있고, 일기도 있고, 실수나 잘못을 하고 쓴 심할서(시말서)도 있고, 건축 현장의 체크리스트를 그대로 옮겨놓기도 하고, 건축 역사에 대한 글도 있고, 건축 이론에 대한 글도 있고, 인턴사원의 인턴기도 있고, 신입사원의 면접기도 있고, 회계 담당이 어떻게 스카우트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도면에 대한 재미있는 분류도 있고, 마지막에는 이 회사에서 자주 쓰는 용어를 풀어놓은 사전도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글들로 채워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건축을 하려면 관련 법규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법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지만 건축가가 디자인을 지키면서도 법규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법규 검토의 7계명이라고 붙여서 써놓았다.

    1. 무조건 법제처에서 검토하기: 인터넷 보지 말고, 공식적인 원칙을 보라는 말이다.
    2. 건축법을 중심으로 상위법부터 하위법으로 꼼꼼하게 정독하기: 중요한 것은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보라는 말이다.
    3. 법의 취지 이해하기: 법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4. 허가권자의 마음에서 다시 바라보기: 건축 주무관이 부담갖지 않을 정도의 책임감만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5. 빼먹은 것은 무조건 있다: 체크하고 체크하고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6.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수많은 건물이 지어졌는데, 선배님들이라고 모두 100퍼센트 완벽했을까? 그러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자채은 때려치워라. 해결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하다. 정신력이 제일 중요하다. 정신 차리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당장 옆의 동료는 바로 귀싸대기를 날려 제정신이 돌아오게 해야 한다. 방법은 무조건 있다! 아무리 해도 못찾겠다면 팔다리를 자를 각오를 한다. 몸뚱이는 지킬 수 있다.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내주는 것도 방법이다.
    7. 지레 움츠리지 말고 긍정의 마음 갖기: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용기를 갖고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6번 계명인데 가장 인상적이고 와닿기 때문이다. 위의 계명은 건축 법규의 검토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가져야 할 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턴의 기록도 있는데, 장난기 가득한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부르스 윌리스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모든 직원이 바라보는 사무실 벽 정면에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걸렸다. 사실 여기저기 정대만 그림도 걸려 있고 가족사진도 걸려 있고 옛 직원들 사진도 걸려 있지만 매일 아침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고개를 들면 브루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아침마다 속으로 <굿 모닝, 브루스!>하고 인사를 건네며 모두의 시선이 몰리는 벽 한가운데 이 사진이 걸려 있게 된 상황에 관해 생각한다.
    어쩌면 소장들은 뉴욕을 구한 존 매클레인을 바라보며 심장이 뛰던 그때 그 학생들처럼 여전히 건축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다니고 있는지도. 

     

    인턴의 기록에는 소장과 다른 직원과 함께 자신들이 지은 건물에 갔던 일도 있다. 그 건물을 짓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했고, 어떤 생각으로 지었는지 얘기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지은 건물이라지만 엄연히 주인이 따로 있고, 사용자의 생활에 불편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지은 건물을 방문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소장은 의뢰인에게 매번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의뢰인은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하고 말했지만 정말 언제든지 온다면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길 게 분명하므로, 소장은 1백 번 정도 생각하고, 열 번 정도 근처를 맴돌다 한 번씩 찾아올테지. 자기가 만든 작업물 앞에서 쿨해지지 못하는 그 모습들. 잘 있었니? 마음속으로 늘 안부를 품고 사는 애틋한 마음들. 나는 그 순간 그가 한없이 다정해 보였다. 소장님, 오늘 갔던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린 냉큼 환영받지 못했어요. 잡지에 나오고, 유명해져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나 봐요. 늘 지나가는 행인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으로 몰래몰래 건물 앞을 기웃거리게 되는 건가요. 그건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일까, 헤프게 쏟았던 마음에 대한 그리움일까. 어쩌면 회사에 걸려 있던 또 다른 액자가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누군가는 건축을 과정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하는 일이 명사가 아닌 동사라면, 건축은 끝없는 돌보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축에 대한 가치관을 끌어내는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건축가는 도면으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도면이 다 똑같은 줄 알았지만 거기에 건축가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묻어 있다. 어떤 건축가는 도면에 고양이 발자국까지 집어넣는다. 콘크리트 바닥을 고양이가 몰래 지나갔다고 그것까지 표현한 것이다. 이런 재치 있는 건축가와 일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도면 MBTI가 있단다. 인간의 성향을 네 가지 경향으로 나누는 것이다.

    1. 계획에 대한 성향
    -숲성 Forest: 숲을 구상하고 나무를 하나하나나 심는 성향. 
    -나무성 Tree: 먼저 큰 숲을 구상하기보다는 나무 하나하나를 그려나가면서 숲을 만드는 성향
    2. 균질함에 대한 척도
    -항상성 Hangsang: 도면집 전체에 걸쳐 균질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성향
    -기분성 Giboon: 프로젝트를 대표할 만한 중요한 도면, 또는 그릴 때 재밌는 도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성향
    3. 도면을 그리는 목적에 대한 생각
    -탐미성 Aesthetic: 가끔은 시공을 위해 도면을 그리기보단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 도면을 그리는 성향
    -실용성 Progmatic:  기본적으로 도면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성향
    4. 도면의 섬세한 표현
    -시크성 Chic: 재료 분리대와 같이 일반적인 디테일은 단순히 글자로 표혀하는 등 나중에 현장에서 협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성향
    -친절성 Kindness: 아주 단순한 디테일마저도 도면에 옮겨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

     

    만약 나라면 숲성, 항상성, 실용성, 친절성이 될 것 같다. 도면 보면 성격 나올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이 '심할서' 부분이다. 보통 업무에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 그 경위에 대해서 쓰는 서식인데, 여기서는 '심할서'라고 한다. 이유는 뒤에 용어 사전에 나온다. 실수의 과정들 속에서 솔직함과 유쾌함이 묻어나와서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심할서를 인용해 본다.

    직원들 등골 빼먹은 점
    이번에 본인은 2017년 11월 16일에 점심 식사비를 아끼겠다는 차원에서 디톡스 업체 홍보 무료 점심 제공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그 점심은 디톡스 시음회 품평에 그치지 않고 거의 방판 수준으로 귀를 홀리게 하는 방문 판매였습니다. 게다가 우리 직원들은 하나같이 귀가 얇아서 귀신에 홀린 듯이 신청서에 카드 번호를 적는 걸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순수한 의도였지만 직원들의 카드를 등쳐 먹는 점심 제공을 마련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후회감과 책임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하며, 공짜라고 무조건 일정을 잡는 행위는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웃기는 것도 있다.

    죽 쒀 서 개 준 심 할 서
    본인은 직원으로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성실히 근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2017년 4월경 여의나루 국제 공모전을 접수하는 데 있어서 대표자에 한양규 소장만을 기재하는 과오를 범하여, 서울시에서 제공되는 상장과 각종 매체를 통한 홍보물에 한양규 소장만의 개인적 작업으로 오해를 사게끔 했습니다. 이에 다른 소장님들과 위 공모전을 위해 노력한 직원들에게 피해를 줬고 대외적 회사 이미지에 심각한 차질을 주었습니다. 이에 시말서를 제출합니다. 차후 본 건을 계기로 과오의 재발이 없을 것임을 서약하며, 지금보다 더욱 성숙한 자세로 근무에 임하겠습니다.

     

    신입사원이 면접을 받은 이야기, 첫 출근하고 자기 책상을 만든 이야기는 낭만적이다.

    출근하고 처음 하게 된 건 내 책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직원들의 책상을 보니 모두 그들이 만든 책상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다소 부산스러운 느낌이 나던 것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나의 습관으로 디자인을 해볼 첫 기회였기엥 20만 원의 주어진 예산으로 책상을 만드는 임무는 낭만적이었다. 나는 서랍 속에 무엇을 넣어 놨는지 잘 잊어버리는 성격 탓에 수납함이 모두 보였으면 좋겠고, 상판의 재료로 유리를 떠올렸다. 모니터와 키보드를 두고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너비, 그리고 발에 땀이 많아 작업하며 발을 올려 둘 발판도 필요했다. 책상 옆에는 가방이나 수건, 긴 쇠 자를 걸어 둘 걸이도. 작업할 때 필요한 기능들을 나열하다보니 멋도 중요했다. 용접과 볼팅을 생각하니 예산도 부족하고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면 프레임은 기성 콤비락 모듈을 가지고 콤비락 같이 안 보이게 만들고, 상판이 얇았으면 해서, 유리 두께는 5T로 잡았다. 한승재 소장은 <아무래도 5T는 너무 얇지 않을까>하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유리를 보호할 비산 방지 필름까지 붙여야겠다. 커다란 유리 상판에 비산 방지 필름을 붙이고 처음으로 만든 내 책상에 앉았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가구도 만들 것이고, 그러므로 자기가 일할 책상도 자기에 맞게, 자기가 만든다. 그것도 출근 첫 날.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고,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발상이다. 나라면 책상은 넓게 만들고, 컴퓨터 본체는 밑에 둘 것이라서 선 연결이 용이한 형태로 할 것 같다. 발 받침도 만들고, 게시물을 붙일 수 있는 파티션도 만들고.....


    뒷 부분에는 이 회사에서 자주 쓰는 말의 의미를 풀어놓은 푸하하하 용어 사전이 있다. 일상적인 말이지만 이 회사에서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쓰이고 있다.

    귀여운 짓: 실리적이지 않으며,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아기자기한 작업. 창작자의 열정을 비하하는 의도가 담겨 있음.
    맛: 바둑에서 유래한 용어로, 간단한 수로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지칭하는 용어. 예) 이곳에 맛이 있ㄴ는데..... →이곳에 간단한 장치로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삼삼하다: 휘발성이 크고 자극적인 디자인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미건조하지만 좋음을 뜻함.
    심심하다: 휘발성이 크고 자극적인 디자인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으로 무미건조하나 나쁘지 않음을 뜻함.
    심할서: 시말서를 뜻합니다. 윤나라 매니저가 명절 전날 철거 사장님에게 입금해야 할 대금을 한양규 소장의 장인어른에게 송금한 실책을 범한 날, 윤나라 매니저는 시말서를 써야만 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윤나라 매니저도 <옘병! X만 한 사무실에서 시말서는 무슨 시말서여!>하고 소리를 질렀겠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이렇게라도 해서 수습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윤나라 매니저에겐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윤나라 매니저가 써온 시말서는 <심할서>였습니다. 「누나.... 아니지?」 「응? 뭐가?」 「아니, 누나. 심할서 이거 뭐여. 장난친 거지?」 마음 심, 할복할 할 자를 써서 몸이 죽지 못하니 대신 마음을 죽여 사죄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쓰레기/양아치/건달: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기백 있는, 용기 있고 무모한 등의 의미로 사용. 예) 와, 완전 쓰레기다→와,기백이 넘치는구나
    아쉽다: 기능적, 시각적 충족도는 적절해 보이나 기억에 남을 만하지 않다.
    알이 꽉 차다: 기능적, 시각적 충족도가 너무 높아 지나치나 그 노력을 높이 사줄 만함. 생선의 알주머니에서 비롯되었음. 예) 이 도면 알이 꽉 찼다.→이 도면은 기능과는 상관없이 노력이 충분해 보인다.
    야마 있다: 건물이 야마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있다는 뜻과 함께 보이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시각 중심의 건축관을 조롱하는 태도가 담겨 있음.

     

    이 책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사진이 흑백이고, 크기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혹시 인터넷에서 이미지가 있을까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있더라.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그래서 또 홈페이지를 들어가보았더니 그동안 이 회사가 작업한 모든 건축물의 아카이브가 있고, 거기에 과정과 사진들이 있었다. 그 페이지들을 몇 개 보았더니 책 내용과 동일한 내용들과 사진들이 나온다. 홈페이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책을 엮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알려주지 않은 내용들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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