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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9]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부.럽.다.
    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4. 9. 16. 21:44

    책이름: 제가. 살고. 싶은. 집은....
    곁이름: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지은이: 이일훈, 송승훈
    펴낸곳: 서해문집
    펴낸때: 2013.7.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송승훈 선생이 이일훈 건축가에게 자신이 살 집을 의뢰하기부터 완공할 때까지의 과정을 담은 글이다. 이전에 건축가 서현의 책에서 제주도의 세모 집에 대한 책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집을 짓는 과정을 쓴 책이라면 이 책은 건축주와 건축가가 함께 의견을 나누어 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 과정을 쓴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낸 이메일을 엮었고, 시공 과정은 송 선생이 정리했다. 이 둘 사이의 이메일을 보면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주 이상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관계는 건축가와 건축자의 관계로서도 이상적이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맨 처음에는 송 선생이 이 선생에게 주택을 의뢰한다. 의뢰를 받은 이 선생은 주택을 의뢰한다는 말에 바로 거절을 결심한다. 이유는 주택은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만으로도 바쁘고, 직원들만 고생시키면서 돈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절할 때 거절하더라도 사람의 말은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건축을 맡기로 결심한다. 송 선생의 표정이 맑았고, 말이 맑았고, 사람 자체가 맑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의 집이라면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집을 짓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집에 대한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축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집을 원하는지, 그 집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예산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확보한 땅은 어떠한 곳인지, 가족들은 몇 명이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등을 건축가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건축가가 이러한 요구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요구하는 바를 얘기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집들도 다녀 보고, 건축과 관련된 책도 읽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송 선생은 건축 관련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료를 찾고, 답사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고자 하였다. 그가 건축 답사를 하면서 쓴 글을 보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까지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은 이일훈 건축가가 지은 <가가불이>라는 건물에 대한 부분이다.

    책에서 사진으로 본 느낌보다 많이 작아서, 소박한 건물인데 사진이 그 소박함을 표현하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건물 한가운데 있는 빈 공간이 아담해서 예쁘고 편안했습니다. 사진에서는 꽤 크고 그럴듯해 보였는데 실제 보니 아늑하더군요. 위화감이나 이질감 없이 이방인이 다가설 만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 입에서 '아담한 건물이구나'라는 말이 나왔고, '복도가 아늑해, 천장이 낮고 계단 폭이 휑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이 뒤따르더군요. 사진을 볼 때는 알지 못했는데 직접 그 집에 가보니, 사람 몸이 느끼는 공간 크기로 설계되어 있더군요. 그런 크기는 오래된 옛집들에서 보았고, 최근에는 못 보아서 신기했습니다. 그 낮은 천장과 아담한 계단폭이,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 내가 사람이구나'하고 느끼게 했습니다.

     

    건축에서는 스케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어려운 말이 아닌 일상의 언어로 담백하게 건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송 선생이 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부분이 있다. 욕실은 현대의 시냇가, 부엌은 사람을 살리는 자리, 서재는 야트막한 언덕 나무 그늘 아래라고 말한다. 집의 공간을 1차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우리가 잊고 있던 근본적인 기능을 상기시켜서 집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다. 거기에다 빛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무엇보다 귀한 자연재료인 빛과 바람은 오랫동안 인류와 더불어 살림살이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쓰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빛에 대한 기획은 많은데, 바람에 대한 기획은 드뭅니다. 그 까닭이, 빛과 바람이 사람에게 감지되는 속도가 달라서라고 봅니다. 빛의 기획은 사람 눈에 바로 보여서 효과도 즉각적입니다. 그러나 바람에 대한 기획은 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있어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빠르게 즐거움을 얻는 문화가 막강해지는 시대 분위기와 바람 기획이 소외되는 데는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바람이에 대한 기획을 디살리는 일은 이런 현대 문화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송 선생이 이 선생의 강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이 선생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서 좀 길지미나 재인용해본다.

    -불편하게 살기: '편하게 살기'는 곧 '게으르게 살기'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면서 환경오염, 질병, 운동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는 '편하게 살기'라는 지형에서 나왔다. 편안한 집을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집을 찾아야 한다. 건강한 집은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이지 게으르게 살게 하는 집이 아니다.
    -밖에 살기: 안에 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건축기술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 그 후유증을 낳고 있다. 사람들은 아침에 집에서 나와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회사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일주일 내내 안에서만 살다가 자연을 잊고 살았구나 반성하면서 '차를 몰고' 교외로 간다. 요즘 친환경, 웰빙 자재가 유행하는데 막힌 공간에서 친환경, 웰빙 자재는 모두 '사기'다. ..... 팬티 바람으로 나갈 수 있는 외부공간이 집에 있어야 한다. 잘게 나눈 공간 사이에 외부 공간을 개입시켜서 '밖'에 살자. 우리에게는 외부를 인식하고 외부와 관계 맺을 수 있는 내부가 필요하다.
    -늘려 살기: '늘려 살기'는 '느리게 살기'와 다르다. 느리게 사는 것이 시간과 인간의 문제라면 늘려 사는 것은 공간과 인간의 문제다. ...... 짧은 동선이 합리적이라는 의식 아래 사람들은 움직임을 최대한 좁은 공간에서 해결하려 한다. 같은 면적의 공간을 사용할 때 넓게만 늘려진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이 함께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고 사유와 의식의 폭이 확장된다. 두 발 거리를 다섯 발 거리의 공간으로, 될 수 있는 한 늘려 사는 건축이 이 시디에 너무나 절실하다.

     

    이 선생이 송 선생에게 이 집의 핵심이 되는 '책의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구상은 1층에 살림 공간, 2층에 서재 공간을 배치합니다. 그 사이가 '책의 길'로 연결됩니다. 글로 표현되지 않는 재미있는 길입니다. 집의 가장 끝에 중요하고, 의미있고, 발길이 가장 많이 닿고, 가장 몰두하고 오래 머무는 공간을 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은 늘 주인의 손길이 닿는 셈이니까요. 루이스 칸이라던가요. 건축이란 대지에 내리는 축복이라는 말을 했지요. 건축물이 들어서서 그전보다 더 좋은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에구, 난 그동안 잘못한 것이 많다고 반성합니다.)

     

    '책의 길'은 1층에서 2층의 서재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서 2층의 서재 앞까지의 약간의 경사진 복도인데, 건축주의 요구를 온전히 받아안은 건축가만이 생각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집의 디자인에 대한 실질적인 것인데, 입면와 평면도, 모형, 자재, 예산, 건축 허가 등에 대한 과정들이 세세하게 나와 있다. 특히 디자인에서부터 도면을 거쳐 모형을 보고 있으면 집의 구조를 하나하나 상기하게 되고, 시공한 후 실제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읽으면 정말로 내가 집을 짓는 건축가, 건축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집을 가본 적도 없지만 몇 번을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중간 중간에 송 선생의 삶의 태도나 생각이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저는 늘 생각하고 삽니다. 꿈은 몸을 긴장시키는 무엇이고, 그러기에 꿈꾸기를 잊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삶은 달라지겠지요. 되는 만큼만 해주십시오. 저는 좋습니다.

     

    이 책 다 읽고 든 느낌은 부럽다.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내 뜻을 온전히 충족시켜주는 건축가를 만난 것이 부럽고, 건축가와 건축주가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아내에게 나중에 퇴직하고 난 후에 건축가에게 우리 집을 의뢰해서 집을 짓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화장실 청소도 안 하면서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자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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