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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5] 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 생존형 건축가의 목소리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4. 7. 15. 14:22
책이름: 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
지은이: 진보림, 이승환
펴낸곳: 눌와
펴낸때: 2020.07.
제목 그대로이다. 부부 건축가가 같은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한 일들, 생각한 것들을 적은 책이다.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은 없었고, 사무소를 개소하고 홍보 수단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운영했다. 초반에는 자신들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글을 위주로 블로그를 운영하려고 했으나 어떻게 하다보니 프로젝트 관련 글보다는 건축계의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서 비판이나 한탄하는 글들을 쓰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동료 건축가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출판사의 눈에도 띄어 건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준다는 기획으로 책을 내게 된 것이다.
부부가 건축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까 궁금할텐데, 남편은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서 설계하고, 3D 모델 돌리고, 이미지 만드는 일을 하고, 아내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클라이언트 만나고, 회의하고, 부당한 일에 맞서서 따지는 등의 일을 하는 것으로 대략적으로 분업을 한다. 여기에다 이들은 가정의 일들도 나눠야 하는데, 아내가 살림과 육아도 하게 되니 객관적으로 보면 아내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쳐 아이가 커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니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무소를 개소하고나서도 일이 없어서 울산의 공공도서관 공모전에 설계안을 출품한 것이 당선되어 처음으로 일을 맡게 되었다. 당시 진 소장은 공모 신청할 때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고, 당선 후 설계와 시공할 때는 출산해서 셋째를 키우면서 작업을 했는데, 그 장면이 인상적이다.
시상식 때, 역시 셋째 아이를 데리고 이번에는 승환 소장과 함께 울산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아기를 데려온 이 아줌마는 뭐지?'하는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저도 설계자입니다"하고 시상식장에 밀고 들어갔다. 아마도 그때 가만히 있었다면 기껏 울산까지 간 보람도 없이 시상식장 바깥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했을 것이다. 유모차에 탄 8개월짜리 아기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난 구청장님께 직접, 아기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나에겐 참으로 중요한 시작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일하는 엄마로서 공식적인 첫 미팅이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각종 회의에서도 셋째를 동반해서 일을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여성 공무원들이 있어서 이해해주고 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서울의 중학교 체육관인데, 역시 공모로 당선되어 진행했다고 한다. 진행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주무관들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 관행들에 분노하였고, 특히 재료를 건축가가 직접 선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나 설계안대로 시공하지 않고, 건축가와 협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수정하는 행태가 힘빠지게 했다고 한다. 교육청이 왜 이러는지에 대한 생각도 풀어놓았다.
처음엔 이렇게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하고 마음대로 할 거라면 대체 왜 전문가에게 설계를 맡기나 싶어서 화가 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방식이야말로 그동안 교육청이 바라는 구조였구나 싶다. 세금으로 짓는 교육 시설인데도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한다며 중간에서 자기네 마음대로 설계를 좌지우지하고 건축가는 도장만 찍게 만드는 시스템. 그동안 지어진 학교 건축이 후진 이유는 단순히 교도소보다 시공비가 적어서가 아니었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전문가를 배제하는 폐쇄적인 시스템이 진짜 이유였고, 비전문가들이 어수룩하게 선택한 재료로 짓다 보니 조잡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폐쇄성이 서서히 걷히고,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학교 건축에 들어오면서 교육청의 이런 업무 구조나 관행은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블로그 글이 올라온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격분하고, 교육청에서도 알게 되고, 교육청도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체육관이 완공되고 그 체육관을 사용한 학생이 고맙다는 편지를 쓰고, 자신도 건축가가 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학생과 친구들을 사무실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을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많은 주택들, 다가구 주택들, 건물들 보면 비슷비슷하면서 특색 없는데, 왜 그런가에 대한 얘기도 한다.
이는 건축주들이 설계비가 저렴한 소위 '허가방'에 설계를 의뢰해서 나타난 결과다. 허가방은 인허가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면과 행정 절차만을 처리해주는 건축사사무소로, 건축 허가를 받아주는 게 주요 업무라서 그렇게 불린다. 그런 곳에서는 한 건물만을 위해 처음부터 고심해서 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면을 살짝만 다듬어서 주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설계 서비스에 비해 비용도 기간도 절반 이하다. 알고 보면 비용 대비 설계의 수준 차이는 곱절 이상이 나는데도, 당장의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허가방 사무소의 설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현실이다. 건축주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 최소의 비용으로 건물만 올라갈 수 있게 하는 설계다.
읽으면서 건축가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계를 떠나지 않고 설계를 하는 건축가들은 정말 건축을 하고 싶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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