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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56] 작가의 시작: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
    행간의 접속/인문 2023. 12. 19. 10:36

    책이름: 작가의 시작

    지은이: 바버라 애버크롬비

    옮긴이: 박아람

    펴낸곳: 책읽는수요일

    펴낸때: 2016.03.

     

    작가가 언제나 글이 잘 써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고, 그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런 작가들의 고군분투에 위로와 조언을 주는 책이다. 꼭지가 한 쪽, 혹은 두 쪽 밖에 안 되는 짧은 조언들이고, 이게 365 개이다. 이 책은 쪽수는 없고, 조언들의 수가 대신 있다. 각 조언마다 위에는 지은이의 설명이 있고, 그 설명 아래에 비슷한 내용의 다른 작가의 어록들이 있는 형식이다.

     

    그 조언들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발췌해 본다.

    글을 쓸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을 지워버리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직 작가들은 불안감을 씻어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려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 랠프 키스

     

    작가는 완성체가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비결은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작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말이다. - 할런 앨리슨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조언이 또 있다.

    당신이 토끼라면 글쓰기는 아주 이상적인 직업이다. 하루 종일 자신의 굴 속에 틀어박힐 수 있는 구실이 생길 테니까. 그리고 글을 쓰면 문제를 해결할 필요 없이 그저 그것을 고통과 불안처럼 탐구할 수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사실, 괴로울수록 쓸 얘기는 많아진다. - 마크 실즈먼

     

    누가 보면 약올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괴로움에 대한 찬사는 신선하면서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은 스트립쇼에 버금갈 만큼 아주 개인적인 일이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기억, 상상, 환상이 만천하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당신의 발가벗은 글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공황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이용해 글을 개선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그러나 워크숍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누군가가 그저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이기적이고 퉁명스러운 논평을 내놓는다면 기회를 봐서 얼른 그곳을 떠나라. 자신의 기대치보다는 당신의 의도를 중심으로 논평을 해주는, 건설적이고 관대한 집단을 찾아가라. 등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갈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당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

     

    글을 내놓는 일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거기에다가 평가를 받는 일은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렇게 본다면 작가들의 용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작가가 느끼는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컴컴한 밤에 차를 모는 것과 같다. 전조등 불빛에만 의지해 나아가지만 결국 그렇게 끝가지 갈 수 있다." 이 말이 다른 작가들에게 수십 번 인용된 것은 우리 작가들 모두의 아픈 곳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글을 쓰며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우리가 달리는 길이 꾸준히 나아갈수록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에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전조등으로 모르는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의 답답함과 불안함, 이것이 작가의 느낌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작가들이 고양이에게 배울 점이라는 조언도 있다.

    1. 계속 집중한다.
    2.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3.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4. 독립적이다.
    5. 가만히 말 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고양이의 이런 면이 작가들에게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뽑아낼 수 있는 말들인 것 같다. 동시에 고양이가 어떤 습성이 있는지도 알면서....

     

    책 쓰는 것을 결혼과 데이트에 비유한 글이 재미있다.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아주 긴 결혼 생활과도 같다. 결혼 생활의 경우, 섹스와 농담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쓰레기를 내다놓는 일로 싸울 때도 있고 청구서가 쌓여갈 때도 있으며 식사 준비를 서로 미룰 때도 있다. 결혼 역시 잘 안 풀릴 때가 많다.
    시나 짧은 에세이를 쓰는 것은 결혼 생활보다는 데이트에 가깝다. 데이트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 않는다. 잘 안 풀리면 다른 상대를 고르면 된다. 책을 쓰는 일이 결혼 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쉽고 간단하게 잠시 거기에서 벗어나 시 한 편이나 에세이 한 편과 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나 에세이를 비하한 것이 아니다. 책 한 권 쓰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시나 에세이를 쓰는 것이 정말 바람을 피는 것처럼 부도덕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지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작가들이 초고를 쓰고 고쳐쓰기를 한다. 그 고쳐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거의' 맞는 단어와 '정확히' 맞는 단어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반딧불이와 번개만큼이나 서로 다른 것이다. -마크 트웨인

     

    거의 맞으면 그대로 두고 싶을 것 같은데 정확성을 추구해야 하니 힘들 것 같다. 

     

    완벽에 도달하는 순간은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할 게 남아 있지 않을 때이다. -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이 말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 다시 봐도 울림이 있다. 완벽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완벽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모든 것엔 틈이, 틈이 있답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죠.
    -레너드 코언

     

    완벽이 좋은 것 같고, 훌륭한 것 같은데, 틈이 있어면 빛이 들어온다는 말은 그 완벽을 뛰어넘는 숭고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글의 맨 뒤에 5분 글쓰기의 주제들이 52개 있다. 이 주제들로 에세이, 소설, 회고록 등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혹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길지만 옮겨 본다.

     

    1. 첫 문장을 써야 하는 두려움을 무엇에 비유하겠는가? 어떤 풍경이나 동물, 날씨, 음악, 그 밖에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을 상상해보아라.
    2. 당신의 첫 장이나 첫 에세이, 첫 단편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라(단, 보내지는 마라).
    3. 거절당한 경험에 대해 써라.
    4. 낙담한 경험에 대해 써라.
    5. 곤경에 처한 경험에 대해 써라.
    6.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허세를 부린 일에 대해 써라.
    7. 발가벗고 불편했던 경험에 대해 써라.
    8. 발가벗고 기분 좋았던 경험에 대해 써라.
    9. 최악의 실패에 대해 써라.
    10. 지금 키우고 있거나 과거에 키운 동물에 대해 써라. 혹은 동물을 키우지 않은 일에 대해 써라.
    11. 당신의 글 솜씨를 개선하는 방법들을 열거해라.
    12. 글을 쓰고 싶은 이유에 대해 써라.
    13.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여 완강하게 버틴 경험에 대해 써라.
    14. 고등학교의 멋진 아이들 집단에 대해 써라.
    15.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5분 안에 써라.
    16. 당신의 첫 기억에 대해 써라.
    17. 공공장소에 수첩을 들고 가서 염탐해라.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써라.
    18. 17번에서 쓴 것을 토대로 이야기의 도입부를 써라.
    19. 무언가에 대해 초보자라고 느낀 경험에 대해 써라.
    20. 예전에 한 거짓말에 대해 써라.
    21. 어떤 약속에 나가지 않은 경험에 대해 써라.
    22. 겁을 먹은 경험에 대해 써라.
    23. 결코 용서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을 용서한 일에 대해 써라.
    24. 손에 땀을 쥔 일에 대해 써라.
    25. 당신의 이름에 대해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써라.
    26. 자신이나 아는 사람이 진탕 먹고 마신 일에 대해 써라.
    27. 선물을 받고 좋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했던 일에 대해 써라.
    28. 무언가를 깨뜨리거나 망가뜨린 경험에 대해 써라.
    29. 벽에 부딪치니 경험에 대해 써라.
    30. 어릴 때 가장 좋아한 신발에 대해 써라.
    31. 지금 가장 좋아하는 신발에 대해 써라.
    32. "완벽"이라는 단어를 적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보아라.
    33. 자신과 가족만 나는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써라.
    34. 죄책감을 느낀 경험에 대해 써라.
    35. 수영을 배운 것 -혹은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 써라.
    36. 뗏목에 대해 써라. 비유적인 의미로도 괜찮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괜찮다.
    37. 열쇠 에 대해 써라. 비유적인 의미로도 괜찮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괜찮다.
    38. 인정을 받은 -혹은 받지 못한- 경ㅇ험에 대해 써라.
    39.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당신의 인생을 바꾼 선생님이나 멘토에 대해 써라.
    40. 당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열거해보아라.
    41. 40번에 열거한 단어들을 사용해 이야기를 시작해보아라.
    42. 임기응변이 필욯ㅆ던 경험에 대해 써라.
    43. 실패하지 않을 게 확실하다면 무엇을 해볼 것인지 써라.
    44. 당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의 주요 장애물이 무엇인지 써라.
    45. 당신이 아는 가장 위험한 장소에 대해 써라.
    46. 엎어진 경험에 대해 써라.
    47.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당신의 인생을 한 편의 동화처럼 써라.
    48. 절대 변하지 않는 네 가지에 대해 써라.
    49. 아버지의 손에 대해 써라.
    50.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일에 대해 써라.
    51. 행동을 개시한 경험에 대해 써라.
    52.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두세 가지에 대해 써라.

     

    읽으면서 작가의 불안, 두려움, 괴로움 등을 대충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을 겪고나서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런데 이 책 너무 내용이 나뉘어져 있어서 잘 읽히지는 않았다. 비슷한 내용들은 좀 장을 나누어서 편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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