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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2] 경계인의 시선: 섬세함의 방향성행간의 접속/인문 2023. 4. 23. 22:34
책이름: 경계인의 시선
지은이: 김민섭
펴낸곳: 인물과사상사
펴낸때: 2020.08. (전자책)
지은이가 자신의 경험과 여러 단체들과의 연구 활동, 그리고 여러 매체의 칼럼 등을 통해 접한 대학원생 이야기, 청년과 아재 이야기, 연대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는 내용이다. 이 내용들은 사실 이 책에서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도 하고 있어서 내용들이 또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읽어보니 반복되지는 않는다. 조금 더 발전되었거나 조금 더 깊이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대학원들의 이야기
대학원생들은 대학에서 연구 활동도 하지만 조교로서 행정 업무도 담당한다. 그래서 노동자로서의 성격이 분명히 있는데, 학생으로 규정되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건강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등을 받지 못해서 생계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는 임금이 아니라 근로장학금으로 받는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에 대한 반대도 있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의 비중이 커지면, 즉 연구자임을 부정하면 자신에게 무엇이 남느냐고 하면서 연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위만을 앞세워서 접근하면 곤란하고, 교수 행동 교정 프로그램, 학생 정신 감정 기관 설립, 대학원생 복지 문제 해결 등의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대학이 대학원생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행태를 대학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대학의 기업화'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도 않다. 제대로 된 기업은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는데 지금의 대학은 시장의 논리와 교육의 논리 중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하면서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개인이 대학을 상대하지 못하다가 노조가 대표 자격으로 대학을 상대하면 조금 더 변화의 가능성은 커진다.
2. 청년과 아재의 이야기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라고 말한다. 추억이나 기억이나 다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 아닌가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다르다고 말한다.
경계의 자리에서 마주한 균열을 '기억'하는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주변과 시대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추억'하는 이들은 시곗바늘을 멈추고 모든 것을 사유화하려 한다. '광장과 세계의 사유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사과할 줄 모르는 인간, 존경받을 수 없는 선배가 탄생한다. 학생들에게 "왜 여기에 앉아 있어?"라고 묻는 교수가, 후배들에게 "너희는 깨어 있지 않구나"라고 말하는 연구자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사과하는 정치인이, "야, 이거 아직도 고쳐진 게 없네"하고 조롱하는 정책 담당자가 되고 만다.
추억하는 이는 자신의 지난 과업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기억하는 이는 자신의 지난 과업을 객관화하여 다른 이들도 함께 공유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간다. 차이가 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면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몸에 쌓이는 언어'라는 말도 한다. 노동의 과정을 거치면 그의 몸에는 언어가 쌓이고 그 언어들을 툭툭 털어내듯 고백하면 소중한 기록이 된다고 한다. 그 언어가 소중한 이유는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는 단서가 되고, 서로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이해, 공감, 소통을 하게 된다.
3. 연대에 대한 이야기
사회 문제를 파헤치는 글이 있다. 그 글의 지은이는 그 문제에 너무 몰입하여 분노를 넘어서 증오한다. 사람들도 덩달아 증오하고 선동한다. 누군가 한 명 나쁜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죽일 듯이 달려들어서 이 사회를 깨끗하게 정화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무엇이 남는 것일까?
좋은 글은 분노를 억누르고 답답한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들이 분노하는 동시에 고민하게 만든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증오는 모든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모든 문제를 현상으로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격리시킨다. 분노사회는 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지만, 증오사회는 결국 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분노'와 '증오', 이 두 말도 비슷한 의미를 가졌지만 지은이는 그 미묘한 차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한다.
읽으면서 지은이가 정말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섬세한 차이를 건강한 방향으로 가리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글들에서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면, 이 책은 섬세함의 방향성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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