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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6]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 문장도 이상하다
    행간의 접속/인문 2024. 5. 17. 23:38

    책이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곁이름: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지은이: 김정선

    펴낸곳: 유유

    펴낸때: 2016.01.

     

    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 교정, 교열하는 전문가가 쓴 문장 쓰기에 대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잘못 쓴 문장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에 대한 줄기가 있고, 교정한 글의 저자와 이메일로 나눈 토론이 한 줄기를 이루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거기다가 일상 속에서의 느낌들, 교정을 하는 일 이외에 생활 속에서의 느낌들도 한 줄기를 이루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곁들여진다. 생활 속의 느낌들이 좀 뜬금 없기는 한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교정을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다른 줄기들하고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제일 먼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접미사 '-적', 조사 '-의',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방금 이 문장에서 의존 명사 '것'을 쓰고 있다. 이거 습관이다.) 그러면서 '-적'이나 '-의'와 같은 경우에는 빼고도 뜻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빼고서 깔끔하게 쓰는 것이 더 분명하다고 말한다.(이 문장에서도 '-와 같은 경우'를 썼는데, 이 말에 대한 지적도 뒤에 나온다.)

     

    의존 명사 '것'을 잘못 쓰는 경우의 예를 들고 있다.

     -그가 자신은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한 것은 겸손을 부리는 것과는 달랐다.

    이 문장은 '것'을 주어로 쓰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과 같이 쓸 것을 권유한다.

     -그는 단지 겸손을 부리느라 자신은 별로 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나도 위에 인정한 문장에서 쓴 것처럼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등과 같은 '것'을 주어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주어 '것'과 서술어를 호응시키려고 서술어 부분에서 문장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있다'를 많이 쓰는 경우도 지적한다.

     -회원들로부터 정기 모임 날짜를 당기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 문장에서는 요청한 주체인 '회원들'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주어를 '요청'으로 하여 요청으로 인한 부담감을 덜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 문장은 '회원들'을 주어로 분명하게 쓸 것을 권유한다.

     -회원들이 정기 모임 날짜를 당기라고 요청했다.

     

    '대해', '-에 대한'을 지적한 것도 있다. 이 말은 '대하다'라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지나치게 많은 뜻을 포함하는 것이 문제이다.

    가령 '미래에 대한 불안'은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않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미래에 맞서기가 불안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자유에 대한 갈망' 또한 자유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다는 것인지(그러니 지금 전혀 자유롭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보다 더 자유롭고 싶다는 것인지(그러니 지금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는 뜻인지) 그도 아니면 자유라는 개념 그러니까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자유를 깨달고자 한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이 말도 내가 많이 쓰는 말이다. 누군가에 이 말을 할 때 다 감으로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쓰지만 전달이 불분명할 수도 있고, 이 말을 쓰는 나조차도 정확하게 무엇을 쓰고 싶은지 잘 모르는 채로 깊게 생각하기 싫어서 이 말로 퉁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이 문장에서 '같다'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런 말은 해당하는 서술어를 찾아서 풀어쓰도록 권유한다.

     

    '-같은 경우', '-와 같다'를 지적한 것도 있다. '-같은 경우'라는 말은 동격을 나타내는 말인데, 동격을 길게 쓸 필요는 없으므로 빼도 무방하다. 또한 '-와 같다'는 잘 모르는 내용을 추측하는 경우에 써야 하는데, 분명한 사실도 자신 없는 태도로 쓰는 것은 어색하다. 그리고 '-에 의한', '-으로 인한'에 대한 지적도 있다.

    '의하다', '인하다' 모두 한자어를 품고 있다. 의자할 의依자와 연유 또는까닭을 뜻하는 인因자다. 한자어라서 문제가 될 건 없다. 다만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의하다'는 '따르다'로 바꿔 쓸 수 있고, '인하다'는 '때문이다' 또는 '비롯되다', '빚어지다' 따위로 바꿔 쓸 만하다.

     

    이 말들도 내가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 말들인데, 찔린다.

     

    부사격 조사 '-에'와 '-로'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창문 뒤에 새들이 모여들었다.
    창문 뒤로 새들이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아래 문장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창문 뒤에'는 '모여들었다'라는 동사의 움직임을 표현하기에 지나치게 정적이다. '창문 뒤로'라고 써야 '모여들었다'라는 술어를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창문 뒤에'라고 쓸 때는 '모여들었다'보다 '모여 있었다'가 더 어울려 보인다.

     

    뒤에 붙는 서술어의 미묘한 차이를 반영해서 조사를 쓰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을 하다'와 '-하다'의 미세한 의미 차이도 이야기한다.

    멋진 그림으로 장식을 했다.
    멋진 그림으로 장식했다.
    첫째 문장에서는 '하다'라는 동사에 '장식'이 목적어로 쓰인 반면 둘째 문장에서는 '장식하다'라는 동사가 쓰였다. 그러니 첫째 문장은 멋진 그림으로 다른 걸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장식을 했다는 뜻인 반면, 둘째 문장은 다름 아닌 멋진 그림으로 장식했다는 뜻이다.

     

    두 문장의 뜻이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 말을 정말 섬세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성을 의미하는 '할 수 있다'와 '될 수 있다'가 들어간 문장에서 반대의 의미까지 가능성을 사용하는 경우를 지적한다.

    '될 수 있다'와 '할 수 있다' 모두 가능성과 능력을 나타낼 때 쓰는데,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까지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색한 표현을 만들기도 한다. 가령 '할 수 있다'는 괜찮지만 '못할 수 있다'는 어딘지 어색하다. 같은 맥락에서 '알 수 있다'는 자연스럽지만 '모를 수 있다'는 어색하다.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상하지 않지만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어색하다. '그런 시도는 위험할 수 있다'도 어색하다.

    못할 수 있다.→못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어떻게 그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런 시도는 자칫 위험할 수 있다→그런 시도는 자칫 위험해지기 쉽다.

     

    나도 이런 문장 많이 쓰고,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가만히 보니 어색하고 고쳐쓴 문장이 자연스럽다. 정말 언어의 느낌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문장 쓰기의 기본 원칙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이 무슨 하나마나한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하는가 싶은데, 읽어보니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심오한 뜻이 있었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본다.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게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높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어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The man woh told me about the murder case that had happened the other day was found being dead this morning.
    일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준 그 남자가 오늘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의 영어 문장이 관계사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되감기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아갔다면, 한국어 문장은 계속 펼쳐졌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국어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한국어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 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혀지더라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영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의 차이를 통해서 한국어 문장의 특성을 알려주고, 이를 바탕으로 문장을 써야 이해하기 쉬운 좋은 문장이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문장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거나(왜냐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문장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어라는 점을 생각해야겠다. 

     

    이 책은 중간 중간에 저자와 오고간 메일이 들어있는데, 문장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다듬는 저자와 교정자의 생각들이 잘 드러나있다. 단지 뒤로 갈수록 너무 깊어져서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까지 간 것이 조금 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읽어보면 이 에피소드가 실제인지 아니면 지은이가 창작한 것인지 살짝 혼동을 주는 느낌이 있다.('있다'라는 말을 많이 써서 서술적으로 고쳤다.) 혼동을 주고 있어서 느낌이 묘하다.

     

    읽으면서 내 글을 반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읽은 내용을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 글이 그렇게 이상한지 몰랐는데, 읽고나니까 많은 문장들을 다듬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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