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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50] 어쩌다 파일럿: 기장은 그 자체로 멋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3. 10. 12. 17:13

    책이름: 어쩌다 파일럿

    곁이름: B77 캡틴 제이의 하늘 공부

    지은이: 정인웅

    펴낸곳: 루아크

    펴낸때: 2020.04.

     

    현직 항공기 기장이 쓴 비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읽고 퍼지고 해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력을 보면,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학보사 기자와 편집장을 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 공군 장교가 되어 공군 수송기 조종사가 되었고, 미국 비행 교육 과정도 이수했다. 이후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두바이에 있는 E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있다고 한다. 이력이 아주 화려하고 재미있다.

     

    1. 공군 조종사

     

    공군 조종사가 처음부터 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신체 검사를 할 때 우연히 공군 모병관의 설명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는데, 책 제목처럼 어쩌다 보니 비행기 조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 원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딱 그대로다. 공군에서의 경험은 젊을 때라서 힘들었던 경험들을 주로 얘기했는데, 안타까운 사고의 경험들에 대한 얘기들도 있었다.

     

    2. 민항기 부기장과 기장

     

    민항기 부기장을 하다 자격 평가를 받고 기장이 되는 과정의 이야기들이 많은데 비행기 기장이 되는 데에는 비행 능력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아우르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련되어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인용해본다.

     

    여기 두 유형의 기장이 있다. 한 사람은 너무 꼼꼼해서 늘 완벽을 추구한다. 작은 실수나 규정에서 벗어나는 행동이 그의 눈에 띄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져 부기장은 비행 내내 기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좌불안석하며 온 신경을 조작과 절차에 집중한다. 덕분에 비행은 늘 '안전하게' 끝난다.
    또다른 기장은 느긋한 사람이다. 안절부절못하지도, 자신만의 절차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부기장의 실수가 눈에 띄면 일단 조용히 지켜보다가 말없이 그 부분을 수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통해 부기장이 그 차이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같은 실수를 두 번 이상 반복하면 그때는 적당한 때를 기다려 부기장이 오해하지 않도록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준다. 브리핑할 때마다 기장은 "내가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믿지 말고 꼭 지적해주세요."라고 말해 부기장이 언제고 부담없이 조언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이들 역시 비행은 늘 안전하게 마친다.

     

    두 번째 기장은 부기장의 성장을 도우면서 낮은 자세로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기장과 부기장의 관계가 이런 관계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기장은 부기장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객실 승무원들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야 한다. 비행기와 관련한 모든 것이 기장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각하는 승무원을 나무라거나 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한 번은 늦게 온 사람한테 일부러 박수를 쳐주면서 자신도 늦은 적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기장의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들고 조직의 협업도 잘 이루어질 것 같다. 

     

    3. 회사의 문화

     

    두바이에 있는 E 항공사의 인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비행을 앞두고 늦잠을 자서 배정된 셔틀을 놓쳤다. 셔틀에 연락해서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다른 크루들이 타고 있어서 새로 배차하겠다고만 하고 떠났다. 할 수 없이 직접 차를 몰고 가겠다고 배차 부서에 연락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기장님, 지금 당황하셔서 직접 운전하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5분 내에 차량이 도착하지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본사에 도착하지 비행근무매니저에게 문제를 일으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순간 또 한 번 위안을 받았다.
    "기장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저도 수업에 늦어본 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오늘 늦지도 않으셨어요. 걱정 마시고 비행 안전히 다녀오세요."

     

    이제 맞는 것이다. 조직이 구성원을 대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그리고 직원용 대기 티켓을 사용하는 직원에 대한 허가권이 기장에게 있다. 이들을 태우면 연료 얼마가 더 소모되는지 계산이 되는데 이러한 판단을 기장에게 맡기는 것이다. 허가하지 않으면 이들은 다른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 약간 난처한 입장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이에 대해서 관여하거나 압력을 가하지는 않는다. 기장의 판단을 믿는다.

     

    이런 결정을 자연스럽게 내릴 수 있는 배경에는 '기장의 상식은 이미 검증된 것이며 회사와 기장의 가치판단에 견해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회사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명백한 회사 정책이나 규정의 잘못된 적용 또는 위반이 아닌 이상 작은 문제에 대해 회사가 일일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기장들은 스스로 결정하려 들지 않고 그 책임을 통제부서에 미루려 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기장으로 인정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판단을 신뢰하는 회사의 마음가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기장이 연료를 덜 소모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비행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새로 알았다.

     

    4. 비상 상황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다 보면 반드시 비상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 때의 기본적인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결론은 '아무 것도 하지 마'라는 것이다. 섣불리 이거저것 시도하다 보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비상을 선포하고 라디오에 비명을 질러대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자가용 조종사에게 관제사가 했다는 말은 이렇다.
    "손발 다 떼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기다려보세요."
    조언을 따른 젊은 조종사는 곧 항공기 컨트롤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비행기 조종 뿐만 아니라 일상의 비상 상황에서도, 우리의 인생에서도 유효한 말인 것 같다. 

     

    5. 조종사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에게

     

    지은이는 자신은 영문과를 나온 문과여서 과학이나 수학에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조종사가 되는 데에 필요한 과학이나 수학 지식은 고등학교 정도의 수준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얘기도 한다. 외항사 입사 과제로 비상 상황으로 회항해야 하는 시나리오가 주어졌을 때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위도 1도는 60노티컬마일이라는 지식을 바탕으로 과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내게 종종 연락해오는 꿈나무들은 지금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서 민항기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노라며 "좋은 조종사가 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미리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그 대답을 지금 드리겠다.
    현재 배우고 있는 교과목에 집중하고 잘 배워두시라. 수학도, 영어도, 과학고 모두 중요하다. 시험을 보고 나면 모조리 잊어버리는 지식이 아니라 여러분이 나중에 실제 비행에서 다시 사용할 지식으로 여기고 원리를 이해하는 공부를 해두라고 말하고 싶다.

     

    6. 읽으면서

     

    기장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행 조종 능력, 위기 대처 능력, 인간 관계 능력 등. 그밖에 책에는 쓰지 않은 다른 실제적인 것들도 있을 것 같다. 우리야 공항 가서 비행기 타고 내리면 그만이지만 그 비행을 위해서 이렇게 세심하고 꼼꼼하게 신경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기장은 제복이 멋있어서 멋있는 것이 아니라 기장이라서 멋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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