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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 책, 이게 뭐라고: 지켜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 사이에서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4. 1. 13. 14:14
책이름: 책, 이게 뭐라고
지은이: 장강명
펴낸곳: 아르테
펴낸때: 2020.09.
소설가 장강명이 북이십일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독서 팟캐스트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했는데, 그 진행을 맡게 된 과정과 진행하면서 겪고, 생각한 것들을 담은 책이다.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자신의 신작 소개를 위해서는 홍보를 할 필요가 있어서 출연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진행을 의뢰받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가 전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하지만 반복되고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자신은 '말하고 듣는 인간'이 아니라 '읽고 쓰는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팟캐스트나 SNS 등 말하고 듣는 매체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느끼면서 이런 세태에 자신을 어떻게 발 딛고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예의와 윤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읽고 쓰는 사람과 말하고 듣는 사람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대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찮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없는 일이 다른 시공간에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중략>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한 독서 토론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문서를 만들었다. 책 한 권을 다룰 때마다 시트를 두 개 만든다. 한 시트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저자와 책에 대한 기초 정보들을 담는다. 다른 시트에서는 책을 읽으며 느낀 점, 궁금한 점을 한 칸에 한 문단씩 적는다. 그리고 자신이 썼든 다른 사람이 썼든 그렇게 올라온 의견에 덧붙일 내용이 있으면 그 오른쪽 칸에 쓴다. 그와 상관없는 새로운 의견이라면 제일 아랫줄 왼쪽 칸에 세로 방향으로 적는다.
이 방법으로 정말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방법을 창안한 이유는 대본의 질문과 지은이의 의견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서 대본 속에 자신의 의견을 녹일 수 있으려면 이를 어딘가에 풀어야 하고, 그렇게 풀어낸 의견을 바탕으로 대본을 짜면 좋을 것 같아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 뿐만 아니라 스탭들의 의견도 같이 모으면 대본이 더 풍성해질 수 있어서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방법으로 대본을 쓰자 초대 작가들이 정말 좋은 질문을 보면서 책을 깊이 있게 읽어주셔서 고맙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이 방법은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독서토론을 할 때 사용해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는 책을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신간이어야 한다. 이건 애초에 프로그램을 만들 때부터의 기획 의도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출판계도 신간이 나오는 성수기(초여름)가 있고, 비수기(연말)가 있는데, 비수기에는 마땅한 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으로 방송 출연을 부담스러워하는 작가들의 책은 다루기 힘들다. 번역서도 다루기 힘들다. 외국 작가를 데려와도 통역을 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전달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번역가나 관련 분야 전문가를 대신 출연시켜도 한계가 있다. 전문 학술서나 실용서도 제외한다. 독자층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에세이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고충이 있다고 한다.
책을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지은이가 한 이야기도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나은 인간이 되고, 재미도 있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지은이는 우주의 기본 속성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을 쓴다는 일-아니 보다 엄밀히 표현해 누군가에 의해 책이 쓰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가끔 거창하고 황당한 생각도 든다. 그건 그냥 우주의 기본 속성 아닐까? 유기화합물 중 어떤 것들이 단세포생물이 되고, 수증기 분자가 얼어붙어 복잡한 육각형 패턴의 눈송이가 되듯이, 생각의 파편들이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면 저절로 책이 되려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곰팡이가 심오한 의도 없이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균사를 만들어내듯이 작가들은 '의미 기계'로서 책을 토해내는 것 아닐까......
표현이 너무 거창하긴 한데, 그냥 한마디로 하면 '그냥', '원래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와 같은 말이다. 목적을 갖고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그냥 하는 행위가 책을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꿈꾸는 아주 이상적인 책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비현실적이라서 재미있다.
내 상상 속 책 축제는 한겨울에 일중일 동안 펼쳐진다. 참가자들은 첫날 행사장에 들어와서 마지막 날까지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밖으로 나간 참가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며, 그해 축제는 포기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모은 참가자들에게는 소박하지만 멋진 숙소가 제공된다. 시설은 다 똑같다. 노약자와 가족을 위한 방이 조금 다를 뿐이다. 방을 배정할 때에는 지인들은 이웃하지 않게 두는 것이 원칙이다. <중략>
행사장은 작은 마을 규모인데 중심부에 책 축제 참가자들을 위한 호텔과 진행 용원을 위한 숙박시설, 사무국, 식당, 체육관 그리고 거대한 도서관이 있다. 모든 시설은 무료이며, 식당에서는 24시간 뷔페식을 먹을 수 있고, 뷔페가 싫은 사람을 위해 끼니마다 두 종류 메뉴로 배식도 한다. 해가 지면 맥주도 제공한다. <중략>
어디에서나 늘 좋은 음악이 흐르며, 진행 요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밴드의 공연도 곳곳에서 열린다. 그러나 마을 전체에 TV는 한 대도 없고, 영화관도 없다. 도서관도 장서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영상 자료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과 오디오북은 모자람 없이 갖추고 있다.
참가자들은 축제 첫날 행사장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 돈과 휴대전화와 컴퓨터 기기를 모두 진행요원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제비뽑기를 한다. 제비에는 책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찾아 읽고, 등장인물을 자기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해당 등장인물의 모습으로 분장해 그 인물의 관점으로 책의 내용을 해석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다.이를 위해서 주변 사람들도 토론도 하고, 조언도 구하고, 연애도 하고..... 정말 책과 독서만을 위한 책마을이다. 책을 읽고 인물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만 있는데,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다른 것들도 많으면 좋을 것 같다.
웹소설 작가들이 나왔을 때 웹소설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웹소설을 읽은 적 없는 나에게는 새로운 이야기였다.
"처음엔 제가 너무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했어요. 금기시되는 게 몇 개 있거든요. 예를 들어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해요. 그리고 분위기가 심각해져서 독자들한테 '고구마'를 주면 안 돼요. 또 남자 여자 주인공은 둘 다 아주 조신해야 해요."
"저는 웹소설의 문법을 모르는 채로 연재를 시작했거든요. 첫 번째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이 이복형제를 동시에 만났는데 여주인공이 너무 더럽다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이런 걸 되게 싫어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죠. 두 번째 작품에서는 제가 서브 남주인공을 죽였는데 이건 완전 금기예요. 로맨스 소설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저는 남성향 소설만 쓰고 남성향 플랫폼에 있으니까 남성 독자들의 니즈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남성향 웨봇설 플랫폼인) 문피아 소설에는 이런 금기가 있어요. 주인공이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됩니다.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걸 주인공이 미리 알고 있고 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그걸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안심하고 다음 화를 봅니다. 아, 얘는 실패하지 않아, 얘는 뭐든지 잘해, 하면서요.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한 명 나오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나와서 남자 주인공과 썸을 타거나 아니면 여자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걸 독자들이 원해요. 그냥 대부분의 남자들분들이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하고 꿈꾸는 바람을 작가가 글로 써주기를 원하는 거 같아요."웹소설이 남성향과 여성향으로 완벽히 나뉘어져 있고, 독자들의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기재로 작동하고, 작가들은 독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굳건한 멘탈로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하는 현실이 있다. 그러면서 웹소설 작가를 취재했을 때의 이야기도 한다.
웹소설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남성향 웹소설 독자들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이 활약하는데 옆에서 설치지 말라는 거다. 그냥 주인공을 짝사랑하기만 하라는 거다. 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이다. 완벽하고 무적이어야 할 우리의 남자 영웅이 한낱 여인한테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 '히전죽'이라는 웹소설 독자들 사이의 속어도 있다. '여성 캐릭터는 전체 이야기나 남자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히로인의 위치에 오르기 전에 죽입시다'라는 말을 줄인 거란다.
웹소설의 남녀 분화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 현실에서 분출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책 이야기 아니더라도 팟캐스트이다 보니가 블록,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나름 인지도 있고, 상위권 순위의 팟캐스트도 수익이 너무 적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이들 매체는 기본적으로 저예산 독립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만드는 콘텐츠를 사랑하는 개인이 돈에 대한 욕심보다 그저 그 일이 좋아서 꾸준히 시간을 바칠 때 제대로 굴러간다. 매체 소비자들 역시 콘텐츠의 품질에는 관대한 반면 운영자의 진심이나 태도 같은 문제에는 예민하다. 기업 논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환경이다. 자원은 없지만 재능과 열정이 있는 신인이 이름을 얻고 더 큰 무대로 올라서는 발판으로 삼기에 좋은 플랫폼이라고 본다.
그런데 하겠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재능과 열정이 있는 신인이 이름을 얻기가 너무 어렵다. 돈 벌기는 더 어렵고....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읽고 쓰는 인간이 경제적인 압박으로 말하고 듣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경제적 압박만 덜면 떠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말하고 듣는 세계에 대해서도 첨언한다.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 한 인격을 판매해야 하는 것 같다. 강연, 방송, 영업, 상담, 정치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술자나 연구자와는 다른 삶을 산다. 그들은 동시대의 타인들이 보기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말 좀 하는 지식인 셀럽'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면서 강연 시장이 커지는 것도 이야기한다. 아닌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강연자가 늘어난 것 같다. 말에 서툰 지식인들은 어쩌지?
고전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100년 전에 창작된 작품을 읽으면서 이게 왜 고전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기준으로 그 작품을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럼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그건 여전히 고전인가? 그 당시 사람들도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다 인정했나? 이런 생각을 작가는 현재의 작품을 읽는 미래의 독자를 두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책 중에서는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될까'라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2120년대의 독자들이 2020년대의 소설을 어떻게 평가할지 상상하면 조금 재미있고 꽤 무섭다.
지금 우리가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작품을 그들도 훌륭하다고 선정할까? 아니면 우리 시대에는 전혀 이름을 알리지 못한 불운한 작가의 작품이 그 자리에 오를까?
미래인의 선택은 어느 정도나 우리 예측을 뛰어넘을까? 2020년대 가장 훌륭한 한국 소설이 제대로 된 비평이라고는 하나도 얻지 못하고 인기조차 높지 않았던 어떤 웹소설 작품일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2120년이 오기 전에 아예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향가나 가사문학처럼 생명력이 끝나는 건 아닐까? 그리고 2120년대 사람들은 게임 시나리오를 서사 예술의 핵심 장르라고 보는 당대 인식에 따라, 2020년대 가장 뛰어난 작품도 게임 시나리오 중에서 찾는 건 아닐까?정답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100년 전의 작품에 대해 생각했던 것처럼 100년 후의 독자들이 현재의 작품에 대해서 똑같이 생각하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유튜브 시대의 독서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고민도 있다. 독서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책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보고, 책에 가까이 오도록 하는 것인데, 독자들은 책은 안 보고, 팟캐스트 듣고, 유튜브 보는 것으로 멈추는 것 같으니 이게 고민이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책, 이게 뭐라고?!' 채널도 카메라를 들이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가 하나 더 있다. 출판이 완전히 팬덤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꽤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나는 문화 산업 전체, 아니 소비재 산업 전체가 지금 팬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대중음악이 아이돌 산업이 되었고, 뮤지컬이 스타 배우의 팬들에게 의존하게 됐고, 이제는 휴대전화도 그렇다. 사실 출판사들도 이미 그런 기운을 느끼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인데. 내게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인데.그리고 시즌3는 유튜브로 가게 되면서 지은이는 시즌2까지만 진행하고 하차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출판 지형과 문화 지형, 결국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지켜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곧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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