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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6] 눈감지 마라: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나는 소설
    행간의 접속/문학 2022. 12. 6. 15:49

    책이름: 눈감지 마라

    지은이: 이기호

    펴낸곳: 마음산책

    펴낸때: 2022.09.

     

    아주 짧은 이야기들로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 소설이다. 전진만과 박정용 지방대 졸업한 청년들의 이야기인데, 하나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다음에 그 사건에 대해서 다시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사건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가령 진만이 교통사고를 목격했고, 진술 부탁을 받고 그러겠다고 했다는 얘기로 에피소드가 끝나지만 그 다음에 실제로 진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그래서 단편적인 일상의 기록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게 오히려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마지막에 진만이 실종되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마지막 괘적을 정용이 찾아다니는 에피소드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 언급된다.

     

    처음에는 찌질한 인생들의 남루한 일상, 혹은 독특한 캐릭터들의 싸이코 같은 일탈기인 줄 알았는데, 중반 이후로 갈수록 우리 시대 지방 청년들의 답답한 몸부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몇 개 뽑아보았다.

     

    1. 모교 교수님의 정년 퇴임식

    취업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정용에게 선배가 모교 교수님 정년퇴임식에 오라고 한다. 가기 싫었지만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는 말과 밥이라도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석한다. 예상대로 따분했고, 교수님과도 별 친분이 없어서 자리가 불편했다. 그리고 담배라도 필 겸 주차장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는데 그 교수도 나와서 담배를 같이 피자고 한다. 그러면서 정용의 이름을 얘기하면서 알아본다. 그리고 말한다.

    "한심하지, 이런 자리?"
    "나이 들면 이런 자리 아니면 젊은 사람들을 잘 못 만나."
    "내가 죽기 전에 자네들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나? 그 생각하면서 오래 말했네."
    "와줘서 고맙네. 늙은이들 말 귀담아듣지 말고, 우리 서로 얼굴만 기억함세."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퇴임한 교수의 솔직한 심정과 약간의 쿨함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이렇게 쿨할 수 있을까?

     

    2. 심리학과 교수에 대한 반론

    정용이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신경이 날카로워지자 진만이 유튜브에서 본 심리학과 교수의 얘기를 전한다. '화는 그때 그때 풀어야 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병이 될 수 있고 ....' 등등. 그러자 정용이 이불을 차고 일어나서 말한다.

    "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 하니?"
    "그 새끼 교수 맞아? 네가 그 새끼 유튜브에 들어가서 댓글 좀 달아. 똑똑히 알고 지껄이라고."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고!"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가난과 피곤에 대한 정용의 울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다.

     

    3. 체불 임금 받는 진만

    진만은 출장 뷔테 아르바이트로 일했는데 사장이 사라지고 임금은 체불되었다. 사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항상 잘 챙겨주고, 남의 돈을 떼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고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장으로부터 한 달 뒤 메일이 왔다. 밀린 임금 꼭 마련해서 준다고. 그러나 8개월이 넘도록 입금되지 않았다. 그러다 또 메일이 왔다. 내용은 자신에게 돈을 줄 사람에게 얘기했으니까 그 사람한테 받으라고... 그는 돈가스 전문점을 하다 망한 사람이었다. 결국 진만은 그를 찾아간다. 정용과 함께. 그에게 돈을 받으면 정용에게 10만원을 바로 갚으려고....그의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데, 밤 9시쯤, 택배차에서 조끼를 입고 아이와 함께 내리는 사람을 보고 진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임을 직감하고, 말을 붙인다. 김사장이 찾아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그는 한숨을 쉬며 ATM기에서 돈을 뽑아준다. 모자란 돈은 계좌로 붙여주겠다고 하지만, 진만은 모자라지 않고 남는다고 하면서 거슬러 준다. 그리고 돌아선다. .

    진만은 생각했다.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없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도 없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그들이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진만은 돌아서서 아이에게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고 뒤돌아 뛰어오는 장면에서 진만의 연대 의식이 느껴진다. 그래도 함께 살아야 한다.

     

    4. 부모를 대신하는 정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용은 매일 10시 15분에 컵밥을 먹으면서 공부를 하고, 다 먹으면 물티슈로 정리하고 나갈 때에는 인사도 잘 하는 6학년 남자 아이를 접한다. 정용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작은 사탕을 내밀기도 하면서 어떤 감정을 표현하였지만 가정에 대해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 아이가 자신의 졸업식에 부모 대신에 단상에 올라가줄 수 있느냐고 부탁한다. 정용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에 자부심을 느꼈고, 졸업식에 참석했고, 무사히 부모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나오면서 짜장면이라도 먹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아이는 거절하면서 말한다.

    "형,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아빠가 많이 넣지는 못했대요."
    아이는 그러면서 다시 한번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편지 봉투에는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정용은 그 봉투를 든 채 잠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아빠가 오늗도 병원에 출근했거든요. 엄마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지라 평일엔....."

    아이는 자신이 생각한 부모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보다 더 넉넉한 환경의 아이였다.  정용은 이 때 수치심과는 또 다른 무섬증을 느꼈다고 되어 있는데, 빈부의 격차를 무섭게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경비 일 하시는 진만 아버지의 불안

    진만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한다. 그 아파트에 새로 입주자 대표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공약으로 경비 인력 축소를 들고 나왔고, 이를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동 대표 중 두 명이 이에 반대를 하면서 우리가 갑질을 할 수는 없다고 했고, 결국 인력 축소안은 보류되었다. 진만 아버지는 경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잘됐는데..... 나도 그 두 분이 참 고마운데..... 어제 말이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재활용장 옆에 커다란 책장을 버리겠다고 내놨거든..... 그건 따로 돈을 내고 수거해야 할 물품이어서, 그게 1만 2원 원인데, 내가 참 그분이 고마운 건 알겠는데, 말을 안 하고 그냥 가시길래 따로 말을 했거든. 이게 1만 2천 원을 내야 한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그 사십대 남자가, 나를 한번 쓱 훑어보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는 거야. 마치 기분 나쁜 말을 들은 사람처럼......"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때부터 내가 이렇게 불안한 거야. 내가....... 내가 잘못한 거니? 그냥 내가 1만 2천 원을 내는 게 맞는 거니?"
    아버지의 질문에 진만은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가만히 휴대폰만 들고 서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 건지 쉽게 판단할 순 없었지만, 아아, 그냥 진만은 그 모든 게 까닭 없이 서글프고 수치스러웠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진만의 아버지는 잘못한 게 아니다. 그는 당연히 1만 2천원을 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힘이 있는 사람의 무언의 눈짓이 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잘한 것도 잘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불안하게 만들고.... 이 역시 현실이다.

     

    6. 치킨 30만원 어치를 혼자 먹는 이유

    진만이 면허도 없는데,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사고로 죽었다. 정용은 그 치킨 집에 가서 사장에게 항의하려고, 얘기나 들으려고 했지만 치킨 집은 너무 바빠서 말을 건넬 수가 없다. 그냥 나오기는 뭐해서 치킨을 시켜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고개 숙이고 먹기만 했다. 그리고 사장을 불렀다.

    "저기요."
    정용이 사장을 불렀다. 그는 정용이 앉은 테이블 앞에 섰다.
    "치킨 30만 원어치만 해줘요."
    정용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 배달시킬 곳이 있으니신가요?"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여기서 다 먹고 갈 거예요."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사장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주방에서도 누군가 나와 정용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배달시키는 게 싫거든요. 여기서....... 씨발..... 다 먹고 갈게요."
    정용은 또 다른 치킨 조각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그는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다. 직접 말하지 못하는 울분이 그대로 느껴져서 먹먹한 장면이다.

     

    7. 마음 속 이야기를 내뱉지 못하는 장면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음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뱉지 못하는 장면이 많다. 속시원히 쏟아내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들이 느껴진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는 것은 힘있는 사람들의 몫인건가.

     

    일상에 대한 소소한 관찰로 시작했지만 삶과 현실에 대한 진중한 무게감이 울림을 만들어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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