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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7] 책과 우연들: 21세기에 어울리는 작가의 책 이야기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2. 12. 8. 15:41
책이름: 책과 우연들
지은이: 김초엽
펴낸곳: 열림원
펴낸때: 2022.09.
SF 소설가 김초엽의 책에 대한 책이다. 소설가로서 책을 어떻게 보고 있고, 책과 관련된 지형에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는지, 책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 등을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SF 소설가라는 장르 문학을 창작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대학원 석사를 마칠 때 즈음에 공모전에 두 작품이나 당선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자, 1년만 작가 생활을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는데, 서평도 쓰고, 논픽션도 쓰고, 칼럼도 쓰고, 단편들도 쓰고, 책도 내면서 작가로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는 작가로 대접받는 것이 어색하고 작가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작가라는 이름표를 떼지 않기 위해, 작가로서 당당히 서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말하자면 초보 작가의 날 것 같은 분투기 같은 것인데, 이런 내용들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SF 작가로서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하고, 또다른 아이디어를 거기에 덧붙이고 하는 과정들도 보여주면서 항상 과학과 인간과 이야기를 엮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바닥 났을 때 어떻게 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사회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지? 국가 체제는? 지리적으로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일까? 이런 사건이 근미래에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말이 되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이런 사회가 생겨나지? 이 기술을 관리하는 주체는? 인물의 직업은?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평소에 무슨 일을 하지? (검색만 하다가 구글의 늪에 빠진다.) 음, 내가 뭘 알아보고 있었더라. 너무 막막해서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야기도 상상이 안 되고...... 아니, 잠깐......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아직 이 글을 쓸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SF 소설을 읽으면 독자들이 그 세계를 상상하는데, 작가는 그 세계를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 신의 위치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 한다. 그것도 톱니바퀴처럼 짜임을 다 맞춰서.... 뭐가 하나 구멍이 나거나 맞지 않으면 독자들의 의심을 받고, 이야기의 격을 떨어진다. 그러니 엄청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막막할 때에는 뭐라도 머리 속에 넣는다고 한다. 마구마구.... 그러다보면 이렇게 저렇게 출구가 보이고, 풀려나간다고 하니 좀 신기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여러 매체, 여러 통로를 통해서 피드백을 받는데, 이 피드백에 대해서 그냥 반응하지 않고, 기준을 세워서 반응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어떤 기준을 잡느냐는 창작자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몇 년간 고민하며 이런 기준을 세웠다. '단점을 보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일 순위로 두지는 말자.'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면 새겨들을 만하다. 다음 작품을 쓸 때 그 점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 같다. 다만 그것이 최우선순위가 되면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작품은 단점이 없는 작품이 아니라 단점을 압도하는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도 그랬다. 결함 없는 완벽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단점 정도는 그냥 눈감아 넘기고 싶은 매력 때문에 그 작품을 좋아했다.
기준을 갖는게 중요한데, 그것을 잘 갖춘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독자들의 오독으로 작품의 의미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또다른 의미를 발견하여 작품이 더 풍성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끔 나는 언어를 경유하지 않고 순수한 사고 자체를 서로 전달하는 외계 생명체들을 상상한다.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명백백하게 전달되는 세계에도 책과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존재들에게 책은 따분한 돌려 말하기이자 늘여 쓰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언어를 매개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나는 이 따분한 늘여 쓰기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실패에서 시작되는 가능성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온전한 의미를 전달하는 일에 실패하고 독자가 작가의 온전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책은 원래 의도보다도 더 확장된 존재가 된다.
이것은 결국 언어의 한계에 의한 것인데 이 한계가 가능성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역설.... 좋다.
과학을 너무 좋아해서 문학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이 SF 소설가가 되는 모습이 참 21세기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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