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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7]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선택 갈등의 최정점행간의 접속/자연과학/환경 2022. 9. 30. 14:26
책이름: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곁이름: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지은이: 제이콥 M. 애펠
옮긴이: 김정아
펴낸곳: 한빛비즈
펴낸때: 2021.02의학 윤리를 연구하는 지은이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이 윤리적으로 갈등할 만한 사안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어느 쪽이 맞는지 답을 주지는 않고, 어느 쪽을 판단할지에 대한 근거나 정보, 경우의 수 등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이 조금 더 해당 문제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의학 윤리의 사례들 중에서 생각해 볼만한 것들을 몇 가지 뽑아보았다.
1. 현장 의사의 고민
-공익을 위해 과거의 비윤리적 실험을 용인해도 될까?: 과거에는 비윤리적인 실험, 즉 환자들에게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실험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한 사람이 굉장히 권위있는 연구자이다. 나의 논문을 쓰는 데에는 그것을 밝히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의 기준으로는 그 실험은 비윤리적이지만, 당시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경우이다. 나라면 밝힐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연구자의 몫이다. 양심있는 사람이라면 인정할 것이고, 양심이 없으면 잡아떼겠지. 그렇게 되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할 수도 있는 것이 좀 걸리겠다. 어쩔까? 하지 말까? 잘 모르겠다.
2.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범인의 다린에 증거가?: 상점에 무장강도가 들었고, 이를 막기 위해 상인은 무장강도의 다리에 총을 쏘고 죽었다. 총상을 입은 용의자는 병원에 왔지만, 총알을 제거하여 상인의 총알과 대조하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을 알아차리고, 수술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만성통증에 절름발이가 되지만 수술을 하면 정상이 될 수 있다. 거기다 범행을 입증할 증거는 이 총알이 유일하다. 경찰은 의사에게 환자의 동의없이 수술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의사는 경찰의 그 명령에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할까? 나라면 수술을 할 것 같다. 이건 음주운전을 밝히기 위해서 채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증거를 위해서 의료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동일하니까 말이다. 그런 식으로 범인의 부동의에 힘을 실어주면 법질서가 유지될 리가 없고, 수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범인의 이익과 공공의 손해를 비교해보았을 때 공공의 손해가 너무 크다.
-개발도상국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험적인 연구를 진행해도 될까?: 선진국에서는 승인받을 수 없는 실험을 개발도상국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이다. 개발도상국의 환자들은 아예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인데, 이 실험에 참여하면 이미 검증된 치려도 해주고, 실험이 운좋게 좋은 효과를 낸다면 경과가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실험은 해도 될까? 나는 안 된다고 본다. 사람들 다 똑같다. 그렇게 누군가를 위험에 던져넣고 얻은 결과는 또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한다. 누군가를 위험에 던져넣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연구와 실험을 해야 한다. 연구의 발전은 느리게 가겠지만 그게 옳은 길이다. 빠른 길만 찾아간다면 윤리라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3. 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환자 한 명에게 얼마나 많은 치료비를 써야 할까?: 치료비가 많이 드는 희귀병에 걸린 환자가 병원비를 자비로 부담할 형편은 되지 않지만 병원의 자선치료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자선치료의 예산이 거의 바닥이 났고, 다른 수백명의 자선 치료비를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은 계속 자선치료를 해야 할까? 이건 정말 모르겠다. 이 환자에게 네가 지원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많이 지원할 수 있으니 죽으라고 하면 그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 그렇다고 많은 환자를 지원하지 않을 수도 없고, 자선치료 예산을 밖에서 좀더 많이 기부를 받는 방법은 없을까?
-생존율이 낮은 환자의 치료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될까?: 7개월 후에 태어날 아이를 가진 남성 환자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신약을 쓴다면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살 확률이 10%인 병에 걸렸다. 당연히 돈은 없고, 거기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 5년 생존율이 5% 미만인 환자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법도 있다. 다만 긴급심의위원회에서 특수상황일 때에는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특수상황으로 인정하고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위원회는 지원을 승인해야 할까? 혜택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예산의 합리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예외적인 특수상황이냐는 것인데, 쉽지 않다. 내가 환자라면 그래서 지원을 받는다면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희망을 안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냥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정도를 특수상황으로 인정하면 또다른 특수상황은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 이것도 문제가 될 것 같다. 이건 정말 모르겠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해야 할까?: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창궐로 긴급하게 인공호흡기의 수요가 늘어났다. 이 전염병으로 인한 중증환자들에게 인공호흡기가 필요하고, 인공호흡기만 있으면 이들을 살릴 수 있다. 문제는 인공호흡기의 수량이 제한적인 상태이다. 해당 지역에는 인공호흡기 없으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만성질환자들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공호흡기를 이 만성질환자들로부터 떼는 것이 윤리적일까? 나는 반대한다. 만성질환자들이 먼저 쓰던 인공호흡기는 만성질환자들의 것이다. 중증환자들은 다른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 중증환자들보다 만성질환자들이 더 약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만성질환자들의 것을 징발해 간다면 그것은 만성질환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여러 조치들도 같은 이유로 철회될 수 있다고 본다.
4.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사형수에게 심장을 이식받을 자격이 있을까?: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진행 중인 죄수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심장병이 생기고, 심장 이식만이 목숨을 살릴 수 있다. 보통 2심에서는 형량이 줄 확률도 50% 정도 된다. 사형을 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죄수는 심장을 이식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반대한다. 죄수들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인권이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들도 받기 쉽지 않은 혜택을 죄수들이 받는다면 일반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클 것 같다.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는 것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쟤랑 평생 달라붙어 살기는 싫은데요?: 머리는 둘이지만 몸은 붙어있는 결합쌍둥이가 있다. 불편한 것은 둘째 문제이고, 가장 큰 문제는 둘이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아서 딱 붙어있는 것이 견디기 어렵다. 분리수술을 할 경우 사망할 경우는 각각 15%씩, 둘 중 하나가 죽을 확률이 30%인데, 한 명은 수술에 찬성하고, 다른 한 명은 반대한다. 판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정말 모르겠다. 한 명은 죽을 확률 15%를 무릅쓰고라도 수술을 받아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고, 다른 한 명은 굳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운명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정말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지은이는 여기에다 두 사람이 생존확률이 다르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묻는다. 수술하겠다는 한 명이 생존율이 높고, 안 하겠다는 한 명이 더 낮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생존율 몇 %와 같은 수치로 판단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존율은 수술 전의 상황이고, 수술을 시작하면 100%, 아니면 0%이니까.....
미국 작가라서 미국의 제도와 연관되는 내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상황들은 우리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또한 너무 특수한 얘기라서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의학 윤리의 문제 자체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건 한 건들 속에서의 판단들은 희소성과는 무관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흔하지 않다고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들과 판사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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