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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7] 열두 발자국: 과학자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서행간의 접속/자연과학/환경 2021. 7. 11. 22:07
책이름: 열두 발자국
곁이름: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지은이: 정재승
펴낸곳: 어크로스
펴낸때: 2018.07.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가 했던 여러 강연들 중 12개를 뽑아서 묶은 책이다.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얘기하고 있다. 강연을 묶은 것이라서 말하는 투로 씌어졌고, 그래서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지은이의 주된 연구 분야가 뇌과학이고, 그 중에서도 의사결정과 관련되는 것이라서 이와 관련되는 내용이 많이 있었다.
지은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좋은 의사결정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의 일반적인 의사결정과 비교하니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는 대개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신이 들 때 의사결정을 하고, 신중하게 결정한 이상 한번 결정하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우리가 하는 전형적인 의사결정 패턴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신중하게 결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신중하게 결정했으니까.....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중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점이 다른 것이다. 나만 해도 한번 결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들이 다 정해졌는데, 다시 바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생각을 바꿔봐야겠다.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져서 의사결정을 조정하거나 바꾸는 것을 잘 못하게 되는데, 나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믿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경우를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이 열린 어르신들이 존경받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나도 그렇게 열린 생각을 갖고 늙어야 할텐데.....
학생들을 많이 만나니까 학생들의 고민 상담도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지도 기호와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 주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을 알려주고, 길찾기를 열심히 훈련해서 세상에 내보내는데, 학생들에게 지도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면저 해야 하는 일은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지도를 그리려면 방황하고, 실패하고, 물어보면서 지도를 그려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남들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지도를 그린 다음에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탐험이라고 말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해석이다. 교육의 문제를 명쾌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얘기를 또 하나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 뭘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고민하는 사람은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하는 것이 별로 없고, 좋아하는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 기회가,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젊은이들의 결핍을 허용해서 '심심한데 뭐할까?' 생각하게 해서 스스로 방황해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도 역시 교육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후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선택했을 때 벌어질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런 시뮬레이션 능력을 통해 다음에 유사한 선택 상황이 왔을 때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다시 되돌아보거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후회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후회없는 삶이 좋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단순히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보다 좀더 복잡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약사를 예를 들면 처방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약을 조제하고 포장하는 것은 인공지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약국은 인공지능 기계를 도입하고 약사를 소수만 고용을 할 것이다. 그러면 약사들은 약국을 다른 관점으로 정의해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맞춤형 서비스라든지, 데이터 기반 고객관리라든지.... 아니면 약국이 전에는 하지 않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여 역할을 바꾸면서 진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약사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의 변화를 통해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것들의 수명이 얼마나 갈지는 또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두려운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갖고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편리함과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주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계산값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결과 값에만 의존하면 우리는 왜 그런지도 모르면서 그 결정에 따라야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지만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뇌의 균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한다. 디지털 문명 속에서 인간은 몸은 움직이지 않고 뇌에 너무 많은 자극을 주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뇌가 이를 해석하고 결정하면 다시 몸이 세상에 적용하는 일상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날로그의 반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는데 아주 의외이다.
과학의 대중화라는 명목하에 과학을 쉽고 재미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며, 그 어려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누구나 다 과학을 잘하기는 힘들다'는 걸 모두가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힘겨운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존중하고 격려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학자로서 여러분과 과학에 대해 대화하려는 이유는 과학의 대중화 때문이 아닙니다. 과학은 무척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어려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니 놀랐다.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연구하는 다른 과학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이 드러나는 것 같다.
과학에 대한 입문 교양서들을 나름 꽤 읽었다고 생각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완벽한 오산이었다. 이 글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생각할 것들이 더 많이 있어서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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